우주의 기운을 받아야 예약할 수 있는 캠핑장

포트코브 해상 주립공원 캠핑장 #2 (2022. 04. 15)

by 그래도 캠핑

2017년에 은행에서 또 돈을 빌려 RV를 살 때만 해도 이제 사시사철 일 년 열두 달 내내 캠핑을 다닐 수 있을 줄 알았다. RV가 제공하는 날씨에 대한 전천후 대응 능력이나 편안한 취침 자리 같은 건 차치하고라도, 아내나 나나 본전을 뽑는데 매우 진지한 성격들이라서 왠지 RV의 능력을 최대한 활용하지 않으면 돈을 낭비하는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2018년 2월에 눈길을 헤쳐 가면서 매닝 주립공원 (E.C. Manning Provincial Park)에 캠핑을 갔다 오느라 염화칼슘 때문에 트레일러 하체 프레임이 녹이 슬어가는 걸 발견한 다음부터는, 무턱대고 겨울 캠핑을 또 시도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리고 겨울 캠핑이 가능한 캠핑장이라 할지라도 겨울에는 샤워시설이나 수세식 화장실을 폐쇄해 두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RV처럼 화장실 / 샤워실을 갖추고 있지 않다면 겨울 캠핑 동안에는 비바람과 추위를 뚫고 걸어가서 어쩔 수 없이 재래식 화장실의 얼어붙은 시트에 엉덩이를 대는 수밖에 없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최대한 화장실을 덜 가기 위해 의도적으로 물을 덜 마시게 되고, 또 저조한 수분 섭취가 진한 숙취나 소화불량을 만들기도 했다. 뭐... 말은 길었지만 RV가 있더라도 겨울 캠핑을 가는 건 녹녹지 않다는 얘기.


이러저러한 이유로, 몇 해 전부터 우리에게 캠핑이란 4월 (부활절 연휴)에 시작해서 10월 (추수감사절 연휴)에 마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되었다. RV라는 것이 합판이나 파이버글라스로 얼기설기 만들어낸 움직이는 집 같은 것이어서, 일 년 정도 이곳저곳으로 덜컹거리면서 끌고 다니다 보면 제법 여기저기 손 볼 곳이 발견된다. 실링이 벌어져 창 틈으로 비가 새는 건 물론이고, 캠프 사이트에 세팅을 마치고 문을 열어보면 출처를 알 수 없는 나사들이 한두 개씩 꼭 발견되기도 한다. 매년 정수기 필터를 교체해 주거나 에어컨 필터를 청소해줘야 하는 것도 당연하다. 이렇게 일반 가정집 정비 같은 걸 마치면, 타이어 공기압이니 브레이크 체크 같은 차량 정비에 속하는 일도 해줘야 한다. 그리고, 비록 얄팍한 주머니 사정 때문에라도 내 시간과 몸을 써가면서 자가 정비를 하지만 4월 첫 캠핑을 꿈꾸면서 겨울 내내 차근차근하게 되는 것이다.


BC 주립공원 캠핑장의 절반 정도는 4월 연휴에 맞춰 개장을 하고 (혹은 캠핑 예약을 받기 시작하고), 절반 정도는 5월 연휴 (빅토리아 데이)에 맞춰 개장을 한다. 아무래도 첩첩산중에 설치된 캠핑장이 많다 보니까 5월이 되어서야 캠핑할 만한 기온이 되는 곳도 많기 때문이다. 보통 광역 밴쿠버에 사는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캠핑장이라고 하면 스쿼미시 근교에 있는 '포트코브 주립공원 (Porteau Cove Provincial Park)'을 꼽는데, 해변을 따라 몇 안 되는 사이트들이 주욱 늘어서 있고, 비교적 따뜻하며, 전기도 들어와서 그런지 그 인기가 가히 슈퍼스타 급이라 캠핑날 4개월 전 예약 사이트가 열리는 시간이 되면 거짓말 안 보태고 0.01초 만에 예약이 끝나버린다. 때문에 인터넷도 느리고 컴퓨터도 느리고 손도 느린 우리들이 이곳을 쉽게 예약하기는 당연히 힘들었다. 보통 추위가 아직 가시지 않은 4월이나 추위가 시작되는 9월 정도에, 재수 좋으면 일 년에 한 번 정도 갈 수 있었고, 그 외엔 대부분 계속 헛발질만 해야 했었다. 이곳만 노리다가 사이트가 다운되면 1-2초 차이로 다른 곳도 예약을 못하는 경우가 번번이 생겨서, 아예 여름철 연휴 캠핑 때는 포트코브를 포기하고 다른 캠핑장 예약에 집중하는 경우도 있다.


코로나 19 기간 동안 날이면 날마다 바뀌던 주립공원 캠핑장 예약 정책은 2022년에도 여전히 안정적이지 못했는데, 어쩌다 보니 봄철 캠핑의 두 가지 하이라이트 (부활절과 빅토리아 데이) 예약을 한꺼번에 처리하게 되어서 얼마나 각축전을 벌이게 될지 눈에 불 보듯 뻔하였다. 그리고, 3월 21일 결전의 날. 회사에서 지급한 폰까지 모두 4개의 각기 다른 통신사 서비스에 6가지 단말기를 연결해서 예약 사이트에 접속 로그인을 해 두었다. 예약을 7시부터 받는다고 했으니, 한 40분 먼저 로그인을 한 다음 괜찮은 사이트들을 눈으로 찜해두고 있었다. 하지만, 6시 30분이 되자, 쿠궁, 새 예약 사이트에 몰려있던 모든 접속들이 튕겨져 대기실 사이트로 자동적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그것도 30분 후 예약이 공식적으로 시작이 되면 그때 예약 순번이 무작위로 나눠진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얼마나 먼저 미리 접속을 해두었든, 얼마나 초고속의 인터넷 서비스를 가지고 있든 간에 상관없이, 대기실에 들어가 기다리고 있다 보면 예약 순번이 무작위로 주어진다는 뜻이었다.


7시가 되고, 6대의 단말기를 가지고 미리 준비했지만 대부분의 순위가 2 만번대였고 최소 45분은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기적적으로 아내가 쓰는 휴대폰 접속이 1,200번대의 순위로 5분 정도 대기시간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아주 운 좋게도, ‘포트코브 주립공원 (Porteau Cove Provincial Park)’의, 그것도 가장 전망이 좋은 37번 사이트를 부활절 연휴 기간 동안 예약할 수 있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우리와 친하게 지내고 캠핑도 같이 다니고 했던 지인의 가족도 부활절 연휴 캠핑 예약에 성공했고, 그것도 바로 옆 36번 사이트를 잡았다는 것이다. 이 날 BC 주정부에서는 17,000여 사이트, 총 97% 캠핑 예약이 첫 3시간 안에 완료되었다고 밝혔다. 우린 마치 일 년 치 운을 모두 써버린 기분이었지만, 그래도 혹시나 남은 행운이 있을까 해서 그날 바로 로또를 사러 가기도 했다. 결과는 꽝.


한 달도 채 안 남은 캠핑날을 손꼽아 기다리는데 이번에는 날씨가 도와주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4월의 밴쿠버 낮 기온은 비 내리는 5월에 비해 따뜻한 경우가 많아서, 4월 초부터 벚꽃이 피기 시작한 후 4월 말에 비가 내리면서 벚꽃이 떨어지고 변덕스러운 5월의 추위를 맞게 되는데, 올해는 어쩐 일인지 3월 말부터 벚꽃이 피기 시작하더니 4월 초에 이미 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느닷없는 추위도 한 몫해서 4월 중순 새벽 날씨가 영하로 떨어지는 경우도 생기고 우박이 떨어지기도 했으며, 캠핑 날 밤 포트코브의 일기예보는 영하 4도까지 떨어진다고 했다. 밴쿠버에서 캠핑을 처음 시작할 때 혹독한 추위를 경험할 만큼 했어서 그런지, 캠핑장으로 사람들을 초청하기 저으기 염려되기도 했지만, 그래도 기왕 행운에 행운이 겹쳐서 잡은 캠프 사이트여서 무조건 가기로 결심했다. 캠핑장으로 이동 중에 산길에서 눈이 내린다는 예보를 보고 타이어체인을 캠핑 짐에 넣었을 때는 쓴웃음이 나왔다. 4월 캠핑에 타이어체인을 챙기게 되다니... 이게 다 뭔 일인지.


언제나 그렇지만, 캠핑도 그렇고 여행도 그렇고, 막바지까지 약간의 걱정과 약간의 흥분이 여러 갈래로 서로 부딪히게 된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마음이 피곤해지면서 "아... 몰라... 걍 집에서 쉴래..." 하는 귀차니스트의 기본자세를 갖게 되기도 하지만, 막상 집 밖에 나와서 해변가에 멍하니 앉아있다 보면, "참... 좋구나....." 싶다. 밴쿠버의 일기예보 역시 무척 보수적인 편이어서, 하루 중 60% 이상이 날이 좋고 비 올 확률이 40% 보다 낮다고 하더라도 일단은 비 예보를 때리기 때문에, 일단은 밖으로 나와봐야 내가 이 날씨를 견딜 수 있는지 아닌지를 알게 되는 것이다.


해변을 따라서 길다란 37번 사이트는 여전히 좋았다. 어디에 앉아 있더라도 낮에는 잔잔한 바닷물결이 반짝이는 모습을 볼 수 있고 밤에는 별들이 쏟아지는 풍경을 만끽한다. 단점이 있다면, 해변과 바짝 맞닿아 있다 보니까 자갈밭 해변을 걷다가 지친 사람들이 올라와서 불쑥불쑥 사이트를 가로질러 다닌다는 것. 그리고, 수세식 화장실까지 거리가 제법 된다는 것 - 화장실 3번 갔다 왔더니 6,000보를 걸었다는 기록이 나왔다.



포트코브 주립공원 (Porteau Cove Provincial Park)은 공원 자체가 아름다운 해변을 따라 만들어져 있다 보니까 일단 캠핑장에 자리 잡고 나면 딱히 다른 곳으로 갈 생각이 들지 않는다. 공원 내에 산책로가 매우 짧은 것은 흠이라면 흠이지만, 그래도 일단 바다를 멍하니 쳐다보면서 맥주를 마시다 보면 더 바랄 게 없다는 생각도 들게 된다. 토요일 새벽에 엄청난 바람이 불어 트레일러 앞으로 길게 설치한 어닝 (Awning 차양)이 다 뜯어져 날아가기 일보직전이었던 것 빼고는, 날씨에 대해 제법 걱정했음에도 물구하고 무척이나 편하게 쉬고 온 캠핑이었다. 일요일 새벽에 달빛이 바닷물 위로 길게 늘어지면서 고호의 그림 한 장면처럼 서서히 달이 지는 걸 보고 있자니 "아.. 내가 정말 아름다운 동네에 사는구나..."라는 감탄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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