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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씨Luce Dec 28. 2020

내 병아리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엄마 품을 떠난 병아리들

어느 날 초등학교에서 돌아온 큰 딸아이가 나에게 호주머니에 든 것을 펼쳤다.

엄마, 병아리 키우자


호주머니에서 아기 병아리 두 마리가 삐약 거리고 있었다. 어린이날이면 초등학교 앞에서 병아리를 한 마리에 500원에 팔거나, 한 마리를 덤으로 얹어 주기도 한 시절이 있었다. 또는 학습지를 미끼로 무료로 주기도 했다. 요즘은 동물 보호단체에서 반대하기도 하는 등 예전 같지 않다.

딸아이가 기뻐서 안고 온 병아리, 나 역시 난감했다. 아파트에서 어떻게 키울까 고민이었다. 생물을 키우는 것이 부담스러운 이유는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그것을 치워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이었다. 가져온 병아리를 주체할 수 없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노란 병아리를 보자마자 죽음을 떠 올린 이유가 있었다. 신혼초, 어항에 금붕어를 키웠다. 어느 날 죽은 금붕어를 떠 내면서 벌벌 떨었다. 또 있다. 학생들이 잉꼬부부처럼 살라고 준 새장의 잉꼬새가 어느 날 죽었다. 그때의 공포심이 생물을 키우기 두렵게 만들었다.

그러나 엄마는 강하다. 큰아이가 유치원 다닐 때 개구리 알을 떠서 널따란 그릇에 키웠다. 올챙이가 되고, 뒷다리가 쑥, 앞다리가 쑥 자랐다. 어느 날, 개구리가 되어 조그맣고 넓은 그릇을 뛰쳐나가 베란다에서 폴짝거렸다. 다리가 나오면 땅을 밟을 수 있도록 동산을 만들어 줘야 하는데 물만 있으니 힘들었던 것 같았다. 올챙이가 개구리 되는 과정을 아이에게 체험하는 유치원 프로그램이었다. 그리고 또 있다. 개미를 잡아 개미집에 넣어 관찰했다. 일련의 관찰 프로그램 중, 개구리 한 마리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르지만 나머지는 자연에 돌려주었다. 개미들도 방사시켰다. 그 두 사건을 제외하고는 생물을 집에서 키워 본 적이 없었다.


아이가 꿈에 부풀어 들고 온 생물을 천하의 부모가 어찌하겠는가. 박스를 만들어 시시때때로 모이를 주면서 정성으로 키웠다. 병아리는 아주 잘 자라 주었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심지어 어린날 내가 돌봤던 시골 마당의 병아리들이 생각났다. 저녁이면 모이를 주고 모두 모이면 살포시 대나무로 엮은 덮개로 덮어주면 고이 잠들던 삐약이들이 그리워질 지경이었다.

그런데 어깻죽지가 자라기 시작하고 예쁜 노란색이 빠지면서 점점 닭의 모습이 되어갔다. 어느 날, 박스에서 뛰쳐나온 애들이 온 베란다를 걸어 다니는 것이었다. 그 후 일주일이 지나자 베란다 빨래걸이까지 푸드덕하고 날아올랐다. 동료의 시골집에서는 닭이 아주 높은 나뭇가지에 올라 내려오지 않아서 애를 먹었다고 했다. 결국 119를 부르는 소동이 벌어졌다고 들었다.

아니, 누가 조류 아니랄까 봐

귀여운 병아리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닭똥냄새가 진동했다. 너무 날아다니니 베란다가 깃털로 지저분했다. 잡아서 상자에 넣어봤자 헛수고였다. 아파트에서 도저히 키울 수가 없었다. 아이들은 병아리의 예쁜 모습이 사라지고 푸드덕거리기 시작하자, 무섭다고 도망치면서 모이도 주지 않게 되었다. 벼슬 솟은 수탉은 아니었지만 아이들은 푸드덕 거림이 무서웠나 보았다.


나 역시 어린 시절 수탉에 관한 일화는 성장한 닭의 모습에 대해 좋지 않은 기억을 소환시켰다. 그래서 친정 시골집 닭장으로 이사를 시켰다. 그런데 어느 날 아빠께서 한 마리만 남았다고 하셨다. 밤사이 삵이 다녀간 것 같다는 말씀을 덧붙이셨다. 삵은 닭의 피를 단 한 방울도 남기지 않는다고 하셨다. 얼른 저 남은 닭을 어떻게 해야 할 것 같다고 하셨다. 그 말씀은 몹시 의미심장하게 들렸다.

아빠, 제가 병아리에서 닭까지 키운 거니까 귀엽게 그냥 돌봐주세요.

그러던 그 해 여름, 우리 가족은 엄마 아빠와 일박이일 여행을 가게 되었다. 엄마가 찜통에 무엇을 들고 오셨다. 뭐냐고 여쭤보니 삼계탕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엄마, 설마 그건 아니죠?" 여쭤보니, 아니라 하셨다. 후에 아빠께서 나에게만 말씀해 주셨는데, 바로 그 닭이라고 하셨다.

으아악! 아빠! 애들에게는 말씀하시지
말아 주세요!

물론 아이들의 할아버지이자 나의 아빠는 아이들에게 절대 비밀을 지키셨다.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어 수영하고 싶어 하는 아이들에게도 거의 먹이지는 않았다. 나는 처음부터 수상쩍어서 아예 손을 대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나의 아빠의 잘못은 아니다. 내가 더 이상 키울 수 없어, 면피하고자 아빠에게 드렸으니 말이다.


참 이상한 일이다. 나는 채식주의자가 아니다. 어차피 치킨은 요즘 일상으로 먹는데, 내가 키운 '닭이 된 병아리'는 먹는 것이 아닌 것으로 여겨졌다. 닭이지만 여전히 병아리의 모습이 오버랩되어 보인 특별한 닭이었기 때문이다. 그 후로 절대 병아리를 키우지 않는다. 아이고, 불쌍한 것들...... 병아리가 그 모습을 유지했다면, 잡아 먹히지도 않았을 것이다. 살자고 푸드덕거렸더니, 오히려 잡아먹혔다.


우주의 이치에 따라 시간은 흐른다. 영원히 아기일 수도 영원한 젊음도 없는 것이다. 오늘 나는 아주 조금 나이가 들었을까. 한 해가 가고 있다. 어제와 오늘이 그게 그것인 듯 하지만 며칠 후면 한 해가 끝난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 하지만 내일 일은 알 수 없다. 에미의 눈에는 나의 아이들이 항시 병아리로 보인다. 약육강식의 정글 같은 직장생활과 취업준비로 지친 나의 두 병아리가 아른거린다.

병아리들이 그저 오늘 지금 이 시간 행복했으면 좋겠다. 마음만은 병아리인 나는 내 병아리들을 날갯죽지로 모으는 엄마 닭이다. 엄마 품으로 오렴, 언제든지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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