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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씨Luce Dec 12. 2020

글과 목소리, 소통의 도구가 되다

나의 식탁, 삶의 허기를 채운 요리

브런치 , <꽃 피고 지고 다시 피는>은 어린 시절의 추억과 현재의 요리 일화를 담은 브런치 북이다. 가족의 사랑과 잊힌 과거의 요리 일화를  올린 소중한 시간이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memories-of



지난 몇 년간, 돌아가신 아빠에 대한 아픔을 잊기도 전에 아프신 엄마를 돌봐야 했다. 오빠네는 엄마를 모신다. 멀리 있는 여동생은 엄마와 여행을 다니거나 가끔 집으로 모셔서 요리를 해 드린다. 또한 매일 전화해서 트롯가수 이야기며, 노래를 들려드린다. 가까이 사는 여동생은 엄마의 목욕과 필요할 때 자동차 운전을 해 드리며, 의사가 된 남동생은 엄마의 건강에 관한 모든 것에 노력을 기울인다. 딸로서는 맏이인 나는 직장에 다녀서 엄마에게 항상 죄송하며, 마음만 앞선다. 그런데도 엄마는 사람들에게 큰딸 자랑을 하신다. 엄마의 자랑의 주요 골자는 항상 이렇다.

우리 큰딸은 어릴 때부터 똑똑해서 혼자 잘했고, 재주가 많아서 못하는 것도 없다니까. 선생이고......


선생이 그리 자랑할 일인가. 엄마께서 평생 교직에 계셨기에 딸 하나가 엄마의 대를 이은 것이 자랑스러우신가 보다. 그렇게 즐겁게 말씀하시다가 그만 또 우신다.

내가 그때 돈이 없어서 서울로 못 보냈어. 미대를 보냈어야 하는데.


그게 또 우실 일인가. 엄마는 내가 서울의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운 듯하시다. 거기까지 반복되었던 스토리가 몇 년 전부터 '미대'가 추가되었다. 엄마의 기억은 심히 왜곡되어 있으시다. 대학에 진학할 당시까지만 해도 이과생인 나는 그림의 세계를 알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홀로 되신 엄마는 참으로 외로워 보이신다.

혼자 밥 먹기가 싫다

엄마가 가장 싫어하시는 것은 혼자 드시는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에 눈물이 많으시다. 모두 직장생활을 하기 때문에 낮엔 혼자 계셔야 한다. 평생을 소통하며 살아온 분이신데 복지관도 나가시기 힘든 상태다.


엄마를 만나고 돌아오는 나의 뒤통수에는 엄마의 눈물이 낙인으로 남아, 다시 뵈러 갈 때까지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그간, 추억의 요리 글을 쓰면서 다시 볼 수 없는 할머니와 아빠가 많이 떠 올랐다. 때로는 그리움이 밀물처럼 내려앉아 복받치는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기도 했다. 엄마에게 전화를 할 때면, 그렇지 않아도 잘 우시는 엄마에게 들키지 않으려 노력했다. 엄마를 부를 수 있어서 좋다는 생각은 아빠가 세상을 하직하신 이후 인식한 감정이다.

엄마, 엄마~!

직장에 다니셨던 엄마 대신에, 집안일을 하셨던 할머니와 농부셨던 아버지는 나의 기억에 자주 등장하게 되었다. 돌아보니 브런치 북 총 20화 중, 엄마에 관한 글은 <노란 주전자의 다슬기>, <밥이 뭐길래>, <추억의 영화와 짜장면>, 그리고 나의 딸이 할머니에 대해 쓴 <할머니의 김치 비밀> 총 네 글에 등장하신다.  그중 엄마가 총체적 주인공이 되신 경우는 <노란 주전자의 다슬기>다.

https://brunch.co.kr/@campo/4


엄마는 아빠와 평생 손을 꼭 잡고 다니셨다. 아니, 아빠 손에 잡혀서 다니셨다. 아빠는 돌아가시던 그 순간도 엄마의 손을 꼭 잡고 쓰러지셨다. 평소에 엄마가 늘 하신 말씀이 있으셨다.

나는 너희 아버지 없으면 자유다 자유야. 실컷 돌아다니고, 내 입맛에 맞는 것으로만 먹고 탁구도 밤늦게까지 칠 거다.

자동차가 있던 시절부터 아빠는 엄마의 교직생활이 끝나시는 날까지 하루도 빼지 않고, 학교 앞에 차를 대시고 기다리셨다. 그래서 엄마는 운전을 배우실 엄두도 내지 못하셨다.


다른 일들로 엄마의 속을 많이 상하게 하셨지만, 말년에 엄마와 아빠는 복지관에 잉꼬부부라고 소문이 났다. 복지관 어르신들이 엄마에게 아빠가 그렇게 좋아서 늘 손을 잡고 다니고, 얼굴 가까이에 대면서 이야기를 하냐고 놀리시면 엄마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손을 안 잡으면 넘어질까 걱정되고, 귀가 한쪽이 잘 안 들리니까 얼굴에 바짝 대고 말해야 하니까 그런 거여


아빠의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엄마의 기력은 급속히 약해지셨다. 아빠가 돌아가시기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탁구를 매일 종일 치셔도 지치지 않으셨고, 복지관 대표로 부산까지 나가실 정도셨다. 그러나 병세가 악화되셔서 중환자실에 들어가셨고, 우리는 이대로 또 마지막이구나 싶어서 친지들을 다 불러 모았다.


그런데 기적적으로 살아나셨다. 그나마 지금은 조금 걸으실 수 있고, 통화가 가능하시다. 그런데 엄마의 눈은 노화가 너무 많이 진행되셔서 현재 그냥 보이는 정도라고 한다. 눈이 좋아지실 일 없이 계속 나빠지기만 하신다는데, 수술도 불가능하다고 한다. 책을 읽지 못하신다. 적어도 <노란 주전자의 다슬기>만큼은 녹음을 해서 엄마께서 듣고 싶으실 때 반복해서 들으실 수 있도록 나의 목소리로 녹음을 했다. 마음에 흡족하지는 않지만 나의 엄마에게 들려드리는 것이니 그걸로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엄마를 만나면 정작 녹음을 저장해 드리거나, 글을 읽어드릴 사이 없이 다른 이야기만 하다 집에 온다. 늘 집에 오면 아차 싶다. 건망증이 엄마보다 심해지고 있다. 전화로 들려드리기에는 불편한 점이 있다.


<나의 식탁, 삶의 허기를 채운 요리>는 주로 추억의 요리 글이기 때문인지 40대에서 50대가 가장 많이 읽고 있다. 음성으로 만들어진다면 눈이 불편한 이들과도 추억을 나눌 수 있을 것이다. 40세가 넘으면 벌써 노안이 시작되는 경우도 많다. 라디오는 볼 수 없고, 읽을 수 없는 이를 위로하는 역할을 한다. 책을 좋아하는 나도 언젠가 음성에 의지할 날이 올 것이다.


독서모임에서 만난 30대의 한 친구가 추천한 '책을 읽어주는 팟캐스트'를 외울 정도로 들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참으로 고마운 시스템이다. 잠자리에 누워 책을 읽어주는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다.


세대 간 소통이 되는 글을 나누고 싶다. 영상 매체가 발달한 오늘날, 젊은이들 역시 나름의 이유로 음악이나 라디오를 듣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이들도 나의 요리 일화를 통해 조금 윗세대의 감성이나 음식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통로가 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갖는다.


몇 주 전, 장래 성우가 되고 싶어 하는 나의 학생과 글을 녹음해 보았다. 수업 중 발표를 해야만 하는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그 아이의 목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매우 내성적인 아이라서 학교 생활 중에 거의 입을 다물고 지낸다. 단순히 내성적인 것이 아니라 온 학교에서 다 알 정도로 세상과 담을 쌓고 지낸다.

한마디로 '접근 불허'인 아이다. 1학년 때 그 반 아이들이 축제 때 부를 노래 연습을 하는데, 그 아이만 혼자 책상에 엎드려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하필 노래가 임재범의 '비상'이었다.

https://youtu.be/5LxGzSFnucE

임재범 <비상>

노래가 마치 그 아이 심정을 대변하는 것은 아닐까 혼자 생각해봤다.


그렇게 신경이 쓰이던 아이였기에 수업 중 발표한 것을 친구들 앞에서 칭찬했다. 며칠 후 불러서 장래희망을 물었다. 평소 같으면 말을 하지 않거나 공격적 어투가 나올 텐데, 그때 그 아이가 처음으로 입을 열고 '성우가 되고 싶다'라고 말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작은 희망의 씨앗을 발견했다. 학생과 글 읽는 유튜브를 만들어 볼까 생각했다. 녹음은 잘 되었다. 하지만 아이가 쑥스러움이 많아서 나의 글 두 편을 녹음한 후, 사용은 하지 않기로 했다. 아주 곱고 또랑또랑한 목소리의 소유자다.


아이에게 혼자 지내는 시간에 책을 많이 읽고, 특히 소리 내어 읽어보라고 권유했다. 목소리가 낭랑하고 주어진 글을 틀리지 않고 한 번에 읽어내는 능력이 대단하니, 글 읽기 자원봉사 같은 것을 해본다면 자아 성취감이 생길 것이라 조언과 격려를 했다. 미래에 멋진 성우가 되기를 응원한다. 나의 글을 읽던 그 아이가 "선생님 댁이 과수원을 했어요?"하고 질문도 하는 등,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참 나누었다. 글과 목소리가 소통의 도구가 되었다.


브런치 북 <나의 식탁, 삶의 허기를 채운 요리>가 곱고 예쁜 목소리로 새롭게 탄생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환상적인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리 되지 못한다면, 글을 좀 더 다듬은 후, 다른 방법을 동원해서 글들을 녹음할 계획이다.


세상의 단 하나 단어, 언제 불러도 마음 아리며 따스해지는 단어인 엄마를 또 불러본다.


엄마~! 엄마, 곧 읽어 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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