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주전자의 다슬기

엄마와 함께

by 루씨

국민학교 저학년 시절 교실에는 늘 노란 주전자가 있었다. 겨울에는 난로 위에 올려 물을 데우고, 다른 계절에는 정부 지원 사업 우유 급식용이 되기도 했다. 나는 방과 후 아이들이 대부분 가 버린 학교에 혼자 남기 일쑤였다. 같은 학교 선생님이시던 엄마와 집에 함께 가기 위해서다. 운동장에서 엄마의 학교 일과가 끝나기를 기다리며 놀았다. 여름날이 좋았다. 다슬기가 많이 나오는 푸르른 계절엔 엄마와 함께 노란 주전자를 들고 학교 앞 개울에서 다슬기를 주전자에 가득 잡을 수 있었다.


엄마와 걷던 수로



국민학교 저학년 시절 나에게는 친구들이 거의 없었다. 다들 수업이 끝나면 집에 가거나 운동을 하기 위해 남는 남자애들은 나를 끼워주지 않았다. 나는 개미랑 물고기 같은 자연과 함께 지냈다. 학교에서 집까지 꽤 먼 거리라서 엄마의 퇴근을 기다리며 개미가 집 찾는 것을 따라갔다. 이래저래 혼자놀이가 지칠 무렵이면 엄마 교실에 가서 풍금을 둥당거리기도 하고 칠판에 낙서를 하고 놀았다.


천방지축 어린 나는 엄마의 일과가 얼른 끝나기만을 기다리다가 엄마가 “ 그래, 이제 가자, 가!” 하시면 엄마에게 대롱대롱 매달려 노란 주전자를 들고 학교 앞 시냇가로 향했다.


고무신을 벗어 물속에 가만히 담그고 있다가 번쩍 들면 그 속에 물고기가 한두 마리는 있었다. "어이구! 너한테 잡히는 애들도 있구나!" 하고 엄마가 웃으시면 나는 더 신이 나서 신발을 담그고 조용히 물고기를 건질 때를 기다리곤 했다.


물이 맑고 물고기도 많았다. 물고기를 잡아서 모래로 만든 물 웅덩이에 가둬 놓았다가 집에 올 때면 "잘 가~~! 내일 또 보자~!" 하면서 풀어줬다.


물가에만 가면 언제나 첨벙 거리며 뛰어다녔다. 그러나 다슬기가 많이 나오는 때를 맞이하면 제법 진지하게 고개를 수면 가까이 대고 가만가만 돌들을 뒤집고 다녔다. 다슬기가 더우니까 그런지 돌 아래에 딱 달라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가 아주 작은 다슬기는 놓아줘야 더 큰 것이 된다고 하셨기 때문에 주로 큰 것들을 잡았는데 다슬기를 잡다 보면 하늘거리는 물살로 인해 하도 시냇물 바닥을 노려봐서 눈이 아프고 어지러웠다.


그런데도 엄마와 함께 하나하나 잡은 것이 어느 사이 노란 주전자를 가득 채우게 되면 여름 긴 낮의 태양도 벌써 기울어 어둑해져 있었다.


그렇게 잡은 다슬기를 모아들고 집에 오면 된장과 마늘을 푼 물에 다슬기를 삶아 여덟 식구가 둘러앉아서 다슬기를 먹었다. 바늘로 콕 찍어 알갱이가 잡히면 다슬기 껍질을 돌리면서 쏙 빼준다. 그러면 오동통한 알갱이가 쭈욱 따라 나오게 되는데 고소한 맛이 일품이었다.

바늘이나 이쑤시개로 빼내기 어려울 때는 다슬기의 꼭지 부분을 조금 자른 후 앞부분에 입을 대고 쪽쪽 빨면 다슬기 몸통 알갱이가 입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우리들은 헤실거리면서 여기서 쭉 저기서 쪽 빨거나 쉽게 나오지 않는 것은 바늘 돌리기 수법으로 해서 금세 각자의 앞에는 다슬기 껍질이 수북이 쌓였다.


다슬기를 까먹고 조금 남긴 것으로는 다슬기 수제비를 만들어 먹기도 했다. 다슬기 칼국수를 만들 때는 밀가루 반죽을 밀대로 쭉쭉 펴야 한다. 그러다가 너무 밀어서 구멍이 뚫리기라도 하면 서로 자기 것이 잘했다면서 우쭐거렸다.





* 엄마와 걷던 공중에 뜬 길고 좁은 수로는 현재도 있다. 좁은 수로 위를 따라 걷는 길을 혼자 하교하기란 무리였을 것이다. 그 긴 수로의 아래에 시냇물이 흘렀다. 등 하교 길에 좁은 수로 위를 걸을 때면 언제나 떨면서, 나는 이쪽, 엄마는 저쪽에서 손을 펼쳐 잡고 걷거나 엄마 등에 업어 걷던 기억이 난다. 엄마 등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라 여겼던 시절이었다.

* 지금도 다슬기 수제비를 먹을 때면 다슬기의 푸른 갈색과 노란 주전자가 오버랩된다. 예전에는 수영장 대신 개울이나 저수지에서 헤엄치며 놀았다. 수영을 제대로 배우지 않아 깊어진 곳을 인식하지 못해서 헤엄치다가 인명 사고가 나기도 했다. 다슬기 잡는다고 집중하다가 물살이 센 곳에서 빠져나오지 못해서 휩쓸려 사망하기도 했다.


최근에도 다슬기를 잡다가 인명사고가 난다는 기사를 접했다. 여름철 '다슬기 익사사고'는 해마다 발생한다. 다슬기를 잡는데 몰두하다 보면 미끄러지거나 갑자기 물이 깊어지는 곳에서 몸의 중심을 잃어 위험에 빠질 수 있다.


다행히 내가 엄마와 다슬기를 잡던 곳은 강이 아닌 시냇물이었기 때문에 아무런 염려도 없이 신나게 놀 수 있었던 것 같다. 여름에 다슬기 생각이 날 때면, 다슬기 수제비로 유명한 맛집을 가거나 재래시장에 가서 다슬기 한 홉을 사서 집에서 끓여 까먹는다. 잡는 것이 힘들기 때문인지 제법 비싸다. 재래시장에 가서 다슬기 한 바가지 살지, 인터넷으로 구매를 할지, 맛집을 찾아갈지 한참 망설인다.


시어머님의 재래된장을 조금 넣고 끓여본다. 맛도 고소하며 국물을 이용한 여러 요리를 할 수 있는 기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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