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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씨Luce Jul 21. 2020

노란 주전자의 다슬기

엄마와 함께

다슬기 수제비를 먹을 때면 다슬기의 푸른 갈색과  노란 주전자가 오버랩된다. 그리고 엄마와의 추억이 떠 오른다.


노란 주전자는 요즘엔 막걸리 집에서나 주로 사용하는데 예전엔 흔하게 물 주전자로 사용되었던 것 같다. 나의 초등학교 교실에는 늘 노란 주전자가 있었다. 나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 학교 수업이 끝나면 같은 학교 선생님이시던 엄마 교실로 쪼르르 달려가서 가방을 툭 던져놓고 운동장에서 엄마의 학교 일과가 끝나기를 기다리며 친구들과 놀았다. 다슬기가 많이 나오는 여름날엔 엄마와 함께 노란 주전자를 들고 학교 앞 개울에서 다슬기를 주전자에 가득 잡았다.


솔직히 고백하면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나에게는 친구들이 거의 없었다. 다들 수업이 끝나면 집에 가거나 주로 축구를 하기 위해 남는 남자애들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마 그때부터 개미랑 물고기 같은 자연과 친하게 지내게 된 것 같다. 나중에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개미]를 읽었을 때 완전히 몰입했던 이유 중 하나가 어린 시절 개미와 놀던 내 생각이 나서였다. 어른이 되어 학교에서 집까지 그 거리를 길 찾기로 검색하니 성인 걸음으로 30분 걸린다고 나온다.

엄마와 걷던 수로


더구나 공중에 뜬 긴 좁은 수로를 따라 걷는 길을 혼자 하교 하기란 무리였던 것 같다. 그 긴 수로의 아래에 시냇물이 흘렀다.


수로는 어린 내가 느끼기에는 지상으로부터 아파트 칠층 정도 되었는데 어른이 되어 보니 겨우 1.5미터 정도 된다. 등 하교 길에 좁은 수로 위를 걸을 때면 언제나 떨면서,  나는 이쪽, 엄마는 저쪽에서 손을 펼쳐 잡고 걷거나 엄마가 업어 걷던 기억이 난다.  


방과 후 나는 운동장에서 친구와 놀다 친구마저 가 버리면 개미가 집 찾는 것을 따라가거나 심심하면 엄마 교실에 가서 그림을 그린다며 칠판이나 연습장에 낙서를 하고 놀았다.

수로의 아래 시냇물


나는 주로 엄마에게 떼를 많이 부렸다고 한다. 변명을 하자면, 내가 떼를 부리면 시간이 빨리 가서 엄마의 퇴근시간이 당겨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요즘 세상엔 있을 수 없는 일이겠지만 그때는 학생 숫자도 적은 데다 워낙 시골 학교라서 그나마 엄마와 그런저런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나의 엄마는 참으로 힘드셨을 것이다.

엄마와 함께 다슬기 잡기


천방지축 어린 나는 엄마의 일과가 얼른 끝나기만을 기다리다가 엄마가 “ 그래, 이제 가자, 가!” 하시면 엄마에게 대롱대롱 매달려 노란 주전자를 들고 학교 앞 시냇가로 향했다.  


고무신발을 벗어 물속에 가만히 담그고 있다가 번쩍 들면 그 속에 물고기가 한두 마리는 있었다. "어이구! 너한테 잡히는 애들도 있구나!" 하고 엄마가 웃으시면 나는 더 신이 나서 신발을 담그고 조용히 물고기를 건질 때를 기다리곤 했다.


그때는 환경이 오염되지 않아 물이 맑고 물고기도 많았다. 물고기를 잡아서 모래로 만든 물 웅덩이에 가둬 놓았다가 집에 올 때면 "잘 가~~! 내일 또 보자~!" 하면서 풀어줬다.


물가에만 가면 언제나 첨벙 대면서 뛰어다니던 나는 다슬기가 많이 나오는 때를 맞이하면 제법 진지하게 고개를 수면 가까이 대고 가만가만 돌들을 뒤집고 다녔다. 다슬기가 더우니까 그런지 돌 아래에 딱 달라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가 아주 작은 다슬기는 놓아줘야 더 큰 것이 된다고 하셨기 때문에 주로 큰 것들을 잡았는데 다슬기를 잡다 보면 하늘거리는 물살로 인해 하도 시냇물 바닥을 노려봐서 눈이 아프기도 했다.


그런데도 엄마와 함께 하나하나 잡은 것이 어느 사이 노란 주전자를 가득 채우게 되면 여름 긴 낮의 태양도 벌써 기울어 어둑해져 있었다.


그렇게 잡은 다슬기를 모아들고 집에 오면 된장과 마늘을 푼 물에 다슬기를 삶아 여덟 식구가 둘러앉아서 다슬기를 먹었다. 바늘로 콕 찍어 알갱이가 잡히면 다슬기 껍질을 돌리면서 쏙 빼준다. 그러면 오동통한 알갱이가 쭈욱 따라 나오게 되는데 고소한 맛이 일품이었다.


또는 다슬기의 꼭지 부분을 조금 자른 후 앞부분에 입을 대고 쪽쪽 빨면 다슬기 몸통 알갱이가 입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우리들은 헤실거리면서 여기서 쭉 저기서 쪽 빨거나 쉽게 나오지 않는 것은 바늘 돌리기 수법으로 해서 금세 각자의 앞에는 다슬기 껍질이 수북이 쌓였다.


다슬기를 까먹고 조금 남긴 것으로는 다슬기 수제비를 만들어 먹기도 했지만 우리들이 거의 다 까먹어버려서 다슬기 수제비는 먹을 기회가 그리 많지 않았다. 때로는 다슬기 칼국수를 만들어 먹었는데,  밀가루 반죽을 해서 밀대로 쭉쭉 펴야 할 때면 우리들은 서로 밀대로 밀려고 다퉜다. 그러다가 너무 밀어서 구멍이 뚫리기라도 하면 엄마에게 혼이 나도 끼드득거리고 얼른 뭉쳐서 다시 만들었다.

전주 '옥경이네 다슬기탕'에서


엊그제,  다슬기를 잡다가 인명사고가 난다는 기사를 접했다.  

여름철 '다슬기 익사사고' 해마다 발생한다. 다슬기를 잡는데 몰두하다 보면 미끄러지거나 갑자기 물이 깊어지는 곳에서 몸의 중심을 잃어 위험에 빠질 수 있다.


다행히 내가 엄마와 다슬기를 잡던 곳은 강이 아닌 시냇물이었기 때문에 아무런 염려도 없이 신나게 놀 수 있었던 것 같다.  여름에 다슬기 생각이 날 때면, 다슬기 수제비로 유명한 맛집을 가거나 재래시장에 가서 다슬기 한 홉을 사서 집에서 끓여 까먹는다.  잡는 것이 힘들기 때문인지 제법 비싸다.


인터넷에 검색하니 섬진강 자연산 생다슬기 1kg, 깐 다슬기 300g 가격이 21,000원 정도다. 다슬기와 노란 주전자를 떠 올리면서 글을 쓰다 보니 입 안에 군침이 돈다. 구경도 할 겸 재래시장에 가서 다슬기 한 바가지 살지, 인터넷으로 구매를 할지, 맛집을 찾아갈지 한참 망설인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다슬기에 스며드는 맛있는 시어머님의 재래된장이 있어 다행이다.  다슬기를 사서 집에서 다슬기 까먹는 재미가 솔솔 하다. 맛도 고소하며 국물을 이용한 여러 요리를 할 수 있는 기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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