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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씨Luce Jan 01. 2021

언어, 인간의 무의식을 표현하다

인간을 욕망으로 이끄는 응시(대상-a)에 대해

프로이트는 꿈에 인간의 무의식이 나타난다고 했다. 라캉에 이르러 꿈의 무의식은 언어의 무의식으로 체계화된다. 라캉은 인간의 언어에 무의식이 나타난다고 했다.


자크 라캉은 상대의 언어를 자신의 욕망대로 해석하는 것을 응시라고 언급했다. 즉, 우리가 '본다'는 행위를 통해 각자의 욕망의 응시가 나타난다.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체계는 은유와 환유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언어를 통해 자신의 욕망을 표현한다고 한다. 라캉이 "인간의 무의식이 언어처럼 구조되어 있다"(욕망 이론 19)고 주장한 이유는 프로이트의 꿈의 작용이 언어에 적용된다고 분석했기 때문이다. 라캉에 의하면 시선과 응시의 분열은 그렇지 않아도 어렵기만 한 이해관계를 수수께끼로 만들며, 인간을 상대의 절대적 응시에 의존하게 한다. 그리고 인간은 끝없이 그 수수께끼를 향해 가고 또 가는 존재처럼 보인다.


'나'라는 존재는 내가 태어나기 이전에 이미 있었던 사회적 담론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결국 '나'는 속수무책으로 내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있어왔던 담론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위치에 놓이게 되는 수동적 타자가 된다. 이때 이름은 사회 속 '나'를 표현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마치'나'는 하나의 타자가 된 듯이, '나'라는 주체가 언어를 습득하기도 전에 '나'를 지칭하는 이름이 만들어지고 별명이 만들어진다. 내가 언어를 습득한 후에는, '나'는 다른 이를 부러워하기도 하고 '나'의 다른 이름 즉, 별명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한편 다른 이들이 '나'를 지칭하는 다른 이름을 만들기도 한다.


라캉은 인간이 무엇인가를 행동으로 옮길 때, 자신의 욕망이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인간의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다.


라캉의 타자에 대해서 이해해야 라캉의 욕망 이론에 좀 더 쉽게 접근이 될 것 같다.


라캉은 세미나를 통해 타자에 대해서 설명했다. 라캉의 타자에는 대문자 타자와 소문자 타자가 있다. 대문자 타자는 대타자(the Phallus, 대문자 A, 대문자 Other, Father 또는 카드놀이의 dummy)이자 기표 중의 기표로 보았다. 대문자 타자는 인간이 속한 그 사회의 모두에게 영향을 준다. 이에 반해 소문자 타자(소타자, 대상 a, 소문자 other, 거울 이미지 또는 Mother)는 개인에게만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보았다(Tyson 28).


라캉 이론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타자는 시니피앙, 즉 기표다. 소쉬르의 기표는 귀로 들을 수 있는, 소리로 의미를 전달하는 말이다. 즉 청각과 관련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라캉의 언어는 몸짓(바디랭귀지), 말(소리), 문자(텍스트, 편지, 책)를 포함한다고 볼 수 있다.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라캉의 기표는 소문자 타자와 대문자 타자가 있다. 기표(시니피앙)는 소문자 타자(대상-a)로 현존한다. 사실은 대문자 타자를 지향하면서 현실적이고, 실존적인 소문자 타자를 원한다. 소문자 타자는 손에 잡히는 어떤 것이기 때문이다. 대문자 타자는 한마디로 만져질 수 없는 알지 못하는 이상이다. 처음에는 욕구에 의해 발현되고 이들이 모여 소문자 타자를 요구한다. 요구가 욕망이 되는 순간이 라캉이 말하는 대문자 타자가 나타나는 순간이다. 라캉이 언어를 그대로 쓰자면, "대문자 타자는 요구에 의해 나타나는 진정한 욕망의 기표다." 그러나 막상 그것을 쟁취한 순간 주체는 그것이 자신이 그토록 욕망했던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바로 '결여(구멍)'가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또 다른 대상-a인 소문자 타자를 요구하게 되고 대문자 타자를 욕망하게 된다. 라캉 이론으로 보자면 이러한 반복이 우리 인생이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괴테의 영원회귀가 떠 오르게 된다. 그러나 우리를 타나토스(죽음본능)가 아닌 삶의 에너지로 이끄는 것이 바로 소문자 타자인 대상-a다.


아주 쉬운 예를 들어 보도록 한다. 이것은 나의 경험담과 관련된 예시일 뿐이다.


스타벅스에서 한동안 쿠폰을 모으면 선물을 증정했다. 여기서 '쿠폰을 모아야지'라고 생각하는 것이 욕구(need)다. 쿠폰+쿠폰+쿠폰+쿠폰+쿠폰+쿠폰+쿠폰+쿠폰+쿠폰+쿠폰(10장이라고 가정한다) 이 열 장의 쿠폰을 모으는 것이 요구(demand)다. 그럼 이제 선물을 받게 된다. '선물을 받아서 주변에 자랑을 하는 것'이 바로 소문자 타자인 대상-a이다.


거창한 예를 들면 자신이 속한 사회의 애향심이나 애국심을 유발하는 것은 대문자 타자이다. 그를 위해 어떤 '운동이나 조직을 운영'하고 열심히 활동하게 하는 것이 소문자 타자이다. 소문자 타자는 이렇게 대문자 타자를 지향하면서 마치 소문자 타자를 얻으면 대문자 타자를 갖게 되는 것처럼 여겨지게 하는 것이다.


브런치를 예를 들어 본다. 브런치 활동을 열심히 하면서 글을 쓰면 뭔가 이루어질  같다.  뭔가 이루어질  같은 것은 종이책을 발간하는 작가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대문자 타자다. 그러나 그것은 대문자 타자로 이끄는 소문자 타자인 것이다. 쓰라린 사실이지만 라캉 이론으로 보면 그렇다. 열심히 매일 글을 쓰고, 기회가 되면 응모하고 이런 행위 자체들이 소문자 타자다.


응모로 이루어지는 종이책의 의미는 막대하다. 우선 브런치 메인을 열 때마다 화면에 뜨기 때문에 자존감이 상승될 것이다. 더구나 돈 안 들이고 홍보가 이루어진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명예와 부를 얻을 기회가 된다.


그러나 응모에 붙고 종이책 발간이 이루어졌다고 해도 나는 또 다른 대타자를 만들어내게 되어 있다. 그것이 라캉이 언급한 우리 삶이기 때문이다.


즉, 대문자 타자는 현존하지 않기 때문에 다시 결여를 메우기 위해 다른 활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아직  손에 들어온 것이 없으니 적절한 예시는 아닌 듯하다. 그러나 이렇게 라캉 이론을 공부하다 보면 응모에 떨어져도 그리 크게 실망하지 않게 된다.


나를 욕망으로 이끄는 소문자 타자 또한 소중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대문자 타자는 그 사회에 큰 영향을 주는 어떤 이상이라 할 수 있다. 소문자 타자는 개개인에게 영향을 주고받는 것이다. 아마도 그래서 대상- a는 황금수라고 하지 않았을까 싶다.


내가 욕망하는 것이 내 욕망인지 타자의 욕망인지 생각해 본다. 나는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고 있는 것이란 사실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어떠한 사람도 그 집단내에서 응시에 초연할 수도, 대문자 타자를 무시할 수도, 욕망하지 않을 수도 없을 것이다. 신이라면 모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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