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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씨Luce Jan 07. 2021

오늘 눈 덮인 한옥마을, 오목대, 벽화마을

눈 온날의 휴가란

어젯밤부터 갑자기 엄청나게 바람이 불면서 굵은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올 겨울 들어 벌써 세 번째 눈이다. 음력으로 세월을 부여잡자니 아직 2021이 밝지 않았다.


이렇게 폭설이 내렸을 때, 다음날 휴가란 생각만 해도 흥분이 된다. 마음 편하게 발 뻗고 잠자리에 들 수 있다.

역시 30센티는 족히 되게 눈이 내렸다. 그렇다면 사진을 찍어볼까 하고 나선다. 차에 둔 카메라를 보니 배터리가 없다. 결국 핸드폰 하나 달랑 의지해 보기로 한다.


눈 맞은 빨간 스쿠터가 예쁘다. 나의 스쿠터는 아니다. 나는 스쿠터를 타지 못한다. 헬멧 사이로 긴 머리가 살짝 바람에 흩날리면서 스쿠터를 타고 지나가는 여자가 멋있다. 나는 자전거도 어른이 되어 배웠다. 오토바이를 잘 타는 이들이 부럽다.

눈 덮인 한옥마을 풍경이 궁금하니 걸어보기로 한다. 천주교 교구관이 나왔다. 벌써 출입구의 눈을 잘 치웠다.


아이들이 4살에서 5살쯤 되었을 때는 남편이 운전하면 우리는 창밖에 보이는 까치집을 세었다. 누가 몇 개 찾는가 내기를 했다. 더 많이 찾으면 이기는 것이다. 아이는 순진하게도 보인 것만 세었다. 그렇게 세면서 숫자 익히기를 가르쳤다. 아이는 엄마의 속셈은 모르고 마냥 신이 났었다.

천주교 교구관을 따라 좀 더 걸으면 자만 벽화마을 올라가는 계단이 나온다.


언덕길이 많아서 미끄럽고 위험하다. 그만 내려갈까 망설인다. 그런데 오목대로 향하는 육교가 있다.


다리를 따라 걸으니 계단이 나온다.

 바로 올라가 본다. 눈이 아주 많이 쌓여 장화 안으로 눈이 들어가려 한다. 그런데 남자 어른의 발자국이 성큼성큼 나 있다. 아마도 사진을 찍기 위해 이른 아침에 올랐거나 한옥마을 장관을 보려고 오른 듯하다. 그 발자국을 따라 걸어 보려 노력한다.


여름에 저 위에서 맨날로 걸어 다니다가 기둥에 등 대고 앉아 책을 읽곤 하는 곳이다. 당연히 추위 속에 아무도 없다.


한옥마을이 보이는 쪽으로 다가가 본다.

다른 방향으로 내려가 보기로 한다. 슬슬 후회가 되기 시작한다. 사람도 없고 춥고 발이 얼려고 한다. 애당초 여기까지 올라올 마음 하나 없었다. 뭐에 홀린 듯 걷다가 올라오게 된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앞에 눈이 부신 장면이 펼쳐진다.


장관이다. 카메라가 있었다면 정말 인생 샷을 찍었을 텐데 아쉽기만 하다. 그래도 내 눈에 열심히 담아 본다.


실컷 한옥의 지붕들을 감상하고 내려오니 여기저기서 수작업으로 제설을 하고 계신다.


지난해부터 나무에 예쁘게 수공예를 해 놓았다. 이걸 찍고 있는데 저만치서 할머니와 손주가 걸어온다. 유치원 차가 안 와서 할머니께서 손수 유치원에 데려다주시러 나오셨다고 한다.


여기에 네가 처음으로 발자국 만들어 봐

할머니와 손자의 모습이 사랑스럽다. 사진 찍는 나에게 손까지 흔들어 주라고 하신다.


멀어지는 뒷모습도 정겨워서 한참 바라보았다.


그리고 갑자기 너무 추웠다. 그래서 문을 연 곳을 두리번거렸는데 오픈하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다. 다행히 '길거리야'만 문을 열었다. 베테랑 칼국수가 아직 오픈 전이다.


커피와 바게트를 산다. 따뜻한 커피 한 모금 마시니 훈훈해진다. 커피를 마시며 들으니 담장 너머가 요란하다. 키 작은 나는 커피를 내려놓은 후, 까치발을 딛고 딛고 운동장을 찍어본다. 눈싸움도 하고 눈사람도 만드는 중이다. 한옥마을 중심부에 위치한 중앙 초등학교다.


길거리아 바게트는 겉바속촉이다. 바싹하면서 안이 촉촉해서 정말 맛있다. 바게트와 커피 합해서 6,500원이다.

문어와 치킨을 합한 치즈 꼬지가 인기 만점인데 아직 오픈 전이다. 한옥 마을에 길거리 음식점을 없애야 하느니 마느니로 한동안 공방전을 펼쳤었다. 나는...... 어느 편에 서야 할지 잘 모르겠다.  

인적이 드문 한옥마을이 참으로 생소하다. 귀엽고 깨끗하며 인상적인 이탈리아 돈가스 집이 들어섰다. 이 집에 진즉부터 들르고 싶었는데 마침 오픈을 했다. 사장님 부부가 함께 계셨다.


전주 시내의 베네치아 레스토랑을 오랫동안 운영하신 사장님이 이 곳에 집을 짓고 돈가스 집을 오픈하셨단다.

특히 소스가 수제 소스다. 일반적인 조미료보다는 건강한 느낌이다. 바싹하면서 끊어질 듯 이어지는 맛있는 치즈가 고급스럽다. 춥고 운동을 많이 한 탓에 음식이 잘 들어간다.


이 집은 1층 바닥 면적이 9.9평으로 3층 건물이다.


삼층에 비밀이 있다. 일반인들에게 오픈을 하지 않는 공간이라는데 정말 아름다웠다. 살짝 한 가지만 말하자면 침대가 놓인 공간에 천창이 있고, 창 밖이 보이는 거품 욕조에서 영화를 보도록 프로젝터가 있다. 게다가 거실에서 밖으로 나가면 인조잔디와 더불어 하늘이 뻥 뚫린 특별 공간, 루프탑이 있다.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은 나는 돈가스보다 집 구경에 신이 났다. 주인장에게 여쭤보지 못해서 사진은 올리지 않도록 한다.


그런데 나의 작업실도 정말 예쁘다. 일반에게 공개하지 않는 특별 공간이다. 그러니 다들 자신의 특별 공간은 소중히 지켜주고 싶다.


빨간 우편함이 예뻐서 사진을 찍으니, 우편함에 다람쥐가 살림을 차렸다고 사장님이 말씀하신다.


바로 요 녀석이다. 정말 다람쥐가 들어온 줄 알았다.

우리는 함께 웃었다. 여기서 우리란 여 주인장과 나다.


방울 산타들도 추워서 떨고 있다. 눈아~ 그만 내려줘~, 올 해는 실컷 본 것 같다.


https://youtu.be/JfyrtkjMyZ0​

폭설 내린 한옥마을 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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