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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씨Luce Jan 08. 2021

가로수 길

따쓰함을 그리며, 세상의 힘든 이를 위로한다

오늘 나는 공방으로 휴가를 왔다. 그런데 공방의 보일러가 가동을 멈춰서 얼어 죽을 듯했다. 10분에 1도씩 실내온도가 내려갔다. 오늘 전주는 영하 17도이고 외부 체감온도는 영하 23도라고 한다. 지금 막 보일러를 고쳐서 마음의 안정을 찾고 따스한 시절을 소환해 보려 한다.


지난해 봄, 가로수 길의 수채화 그림과 몇 년 동안 정성을 들여 키우고 있는 올리브나무


가로수란 길가 양쪽으로 나란히 서 있는 나무들을 말한다. 그러니 가로수 하면 '길'이 연상되는 것은 자명하다. 가을의 가로수 길을 떠 올리자면, 신사동과 전북대 농과대학의 가로수 길이다. 신사동 가로수길은 졸업 한 나의 제자와 와인을 마시던 올망졸망 분위기 좋은 와인카페가 떠 오른다. 전북대 농과대학은 너무 많은 추억이 있는 곳이라 한 마디로 집약시키기는 어렵다. 삶의 희로애락이 깃든 곳이다. 나의 청춘이 가득한 곳이자 아이들 자랄 때 함께 걷던 길이다. 지금도 가을이면 낙엽 밟으러 간다.


전북대학교 농과대학 가로수 길

대부분 나는 봄이면 가로수 길에서 얼굴을 내밀고 사진을 찍는다. 들뜬 마음이 된다. 봄의 초입에는 연두색 새싹으로 희망을 알리는 메타세콰이어 가로수길을 간다.

'담양 메타세콰이어' 가는 길에 만난 도로의 메타세콰이어 가로수 길

그리고 이어지는  분홍의 향연과 함께 우리나라 곳곳의 가로수 길이란 길을 다 걸어보고 싶어 진다. 구례로 가는 길목, 전주의 어린이 공원에서 꺾어지는 벚꽃길, 전주천 가로수 길, 그리고 송광사 가로수길 등 무한대이다.

구례 가는 길 어느 마을. 색연필그림
전주 시내 송천동 가로수 길

그런데 벚꽃이 질 무렵에 피는 꽃이 있다. 하얀 이팝나무다. 전주의 팔복 예술 공장 옆 이팝나무 가로수 길은 오래전 철길이었다. 여전히 옆으로 나란히 난 철길로 어쩌다가 한 번씩 화물이 운반된다. 버려진 철길 하나는 그대로 남아 방문객이 찾는다. 오랜 세월 애환이 서린 그곳에 이제 꿈과 희망에 달뜬 남녀가, 행복한 웃음을 짓는 가족이,  따뜻한 정을 나누는 친구들이 찾는다.


전주 팔복동 예술 공장 옆 이팝나무 철길


가로수 아래쪽에는 분홍과 흰색의 작약이 방긋 미소를 짓고 나를 바라본다.

작약 꽃말은 '수줍음'이라는데 수줍어하지 않고 화사하다. 지난봄의 작약 사진을 보다 보니 공방의 화분의 꽃이 내게 말을 건다.

나도 봐줘~


강추위에도 페튜니아(패츄니아) 꽃 한 송이가 피어나더니 이제 또 한송이가 고개를 내밀었다. 패튜니아 꽃말은 '당신과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해진다'란다. 그 옆에는 아주 앙증맞게 제라늄이 꽃봉오리를 만들었다. 분홍 제라늄 꽃말은 '그대가 있어 행복합니다'라고 한다. 나도 너희가 있어 마음이 편안해지고 행복하다고 꽃들에게 말해준다.


애지중지 햇볕 주고, 물 주고, 공기도 줬더니만 오늘 이런 상황에도 꽃을 보인 것이다. 꽃도 정성으로 돌봐야 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어린 왕자의 장미처럼......

 

소박하지만 사랑스러운 꽃송이들.

오늘 동파 등으로 인한 보일러 문제가 전국적으로 너무 많이 발생해서 보일러 기사님들은 종일 이리저리 뛰어다니신다고 하신다. 서울 나의 친구네 집은 아파트인데도 온수가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 아파트는 아주 멀쩡해서 다행이다. 추운데 공방 보일러를 고치기 위해 와 주신 기사님의 신발을 봤다. 춥게 보이는 검정 구두라서 여쭤보니 회사 신발 규정이란다. 영하 23도에도 규정화인 보온성 없는 신발을 신고 여기저기 다니고 계신 기사님이 안쓰러웠다.


외부의 공방 보일러실 앞에 따뜻한 부추를 신고 서 있는데 오분 지나니까 발가락이 얼었다. 그만큼 강추위다. 기사님 말씀이 13년 동안 기사로 일해 오셨는데 이런 추위는 처음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옷도 얇다. 규정된 옷인 듯하다. 나에게 들어가 계시라 하신다. 나는 추위도 나누면 좀 나아질 것 같다고 하면서 옆에서 따듯한 물이라도 드시라고 드린 후 계속 서 있는다. 이렇게 와 주셔서 너무 감지덕지다.


일을 마친 기사님에게 밥이라도 사 드시라고 주머니에 더 넣어드린다. 규칙상 안된다고 하시지만 내 정이다. 점심도 못 드시고 돌아다니고 계신다. 마음이 조금 짠하다. 내가 아무런 의도 없이 드리는 것이니 제발 가져가셔서 얼른 식사부터 하시라고 말씀드렸다. 사실 나의 딸 생각이 나서 더 그런다.


회사에서 중요한 업무를 맡는 나의 딸이 실수 한번 하면 회사에 엄청난 손실이 오기 때문에 늘 긴장 속에서 지낸다고 한다. 직장을 다니는 이들 모두 자기 직장의 애로사항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도 다른 이들이 훨씬 힘들어 보인다. 그리고 20대와 30대의 그들을 보면 다 딸 같아서 안쓰럽다. 언젠가 딸이 직장에서 울먹이면서 전화가 왔다. 회사 계단 로비에 앉아서 울고 있었다.


엄마, 이제 60이신 가장에게 회사에서 잘린 것을 통보했어. 엄청 걱정하면서 반박하시면 말씀드릴 자료를 준비했는데 그분이 그러냐고, 잘 알겠다고
하시면서 조용히 끊으셨어.

인정 많은 나의 딸은 얼마나 많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후에 전화를 드렸을까. 그 말을 전해야 했던 딸이 안쓰러워서 내 마음이 아팠다. 매일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직장, 그런 직장에 나가는 모든 이들을 위해 위로와 격려와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따뜻한 가정을 일궈나가는 주부들에게도 격려와 응원을 드린다. 주부란 퇴근이 없는 직장이기 때문이다. 며칠 후면 강추위도 누그러질 것이다. 얼음이 녹아내릴 것이다. 아직도 얼음 아래로는 물이 흐르고 있고 그 안에는 물고기가 살아 움직일 것이다. 물고기가 얼어 죽지 않기를 바란다.


이제 곧 봄이 오겠지. 새싹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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