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기쁨
<감자 껍질 파이 북클럽>은 영어 원제목(The Guenrnsey Literary and Potato Peel Pie)을 그대로 번역한 영화다. 나는 책을 구입하기 좋아한다. 읽어야 하는데 읽지도 않고 모셔두고 나를 기다리는 책을 보기를 좋아하니 은근히 고문을 즐기는 사람 같다. 영화를 본 후에 책을 원서로 구입해 놓고 책장에 고이 간직한 상태다.
영화는 두 명의 여자 주인공이 존재한다. 한 사람은 전반적인 스토리를 엮어가는 페르소나인 작가 쥴리엣 애쉬튼이다. 앤 브론테의 평전을 썼다. 다른 한 사람은 사람들의 기억에 존재하는 인물이다. 섬의 일반인의 가십에 오르내리는 사람이자 북클럽 회원들의 마음의 중심인물이기도 하다. 그녀의 이름은 엘리자베스다. 그리고 여주인공 쥴리엣을 건지 섬으로 이끄는 남자 주인공이 있다. 그는 건지 섬에서 농장을 운영하는 도시 아담스이다. (도시는 발음상 돌시에 가깝다.)
맨 처음 영화의 시작은 건지 섬이 독일군에 점령당한 시점이다. 마을 사람들은 독일군 몰래 키운 돼지 한 마리를 비밀리에 나눠 먹게 된다.
오랜만에 여러 사람이 즐겁게 웃을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된 이들은 파티가 끝난 후 흥에 겨워 떠들며 각자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길을 나선다. 그러나 독일군 병사들에게 딱 걸리고 만다.
너희들 뭐 하는 거야?
하고 독일군이 묻자 일행은 순간 얼어붙게 된다. 이때 엘리자베스가 말한다.
우리는 독서모임을 하고 집에 가는 길이에요.
독서 모임의 이름을 순간적으로 만들어야 했다. 우체국장 에번 램지가 파티에 들고 왔던 '감자 껍질 파이'가 떠 오른다. 그래서 만들어진 이름은 '감자 껍질 파이 북클럽'이다.
전쟁 전 그들은 그저 알고만 지내던 사이였다. 게다가 책 읽기를 즐기던 사람들도 아니었다. 그러나 독일군 병사가 감시하기 때문에 실제로 책을 한 권씩 들고 독서모임을 시작했다. 시작은 자발적 독서모임이 아니었지만 그 후 사람들은 독서 모임을 이어간다.
서로에 대해서 관심이 없던 사람들이 만든 '금요 문학회'는 전쟁이 끝난 후에도 지속된다. 전쟁은 이들을 오히려 결속시킨다. 특히 부조리한 상황에서 가장 용기 있게 행동했던 엘리자베스가 가장 인상 깊게 남는다.
모두 굶주렸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무엇에 진짜 굶주렸는지를 알게 된다.
그것은 바로 사람들과의 소통 '유대감'이다.
독서모임에서 가장 자유로운 영혼이자 따뜻한 인물이었으며 인간애로 가득했던 엘리자베스는 행방이 묘연하다. 영화의 스포가 되기 때문에 더 이상 언급을 피한다.
한낱 독자에 그치지 않고 작가에게 편지를 보낸 도시 아담스의 행동은 적극적인 삶의 자세라고 본다.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돼지 한 마리를 몰래 키우고 그것을 나누는 모리스 부인의 넉넉함도 아름답다. 진과 각종 치료제를 만들어 가져온 이솔라 프리비가 이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진 한잔 얻어먹고 싶다. 모두들 그 진을 마신 후 몸을 살짝 떠는 대목에서 나도 모르게 함께 "크~"하는 소리를 내게 된다.
아무것도 먹을 것이 남아 있지 않은 마을에서 파티를 위해 빈 손이 아닌 '감자 껍질로 만든 파이'를 구워 온 우체국장 에번 램지 아저씨가 생각난다. 만약 그가 옆에 있다면 "그래요. 그렇지요. 그런데 너무 서두르지는 마세요."라고 조용히 웃으며 말해 줄 것 같다.
매력 넘치는 미모의 작가 쥴리엣, 부와 명성이 내 손안에 있다 해도 마음속 깊은 공허가 있음을 깨닫는다. 어떤 두레박을 잡느냐에 따라 우물 밖 세상이 달라지는 것이다. 우리네 어른들이 말씀하신 여자 팔자 뒤웅박 신세가 생각난다.
그러나 그녀는 우물 밖으로 나와 상대를 선택한다.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로부터 느끼는 공허함을 깨우치고 자신의 삶을 선택하게 된다.
이 영화를 추천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책은 우리 삶을 변화시키는 아주 중요한 연결 고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영화는 잘 보여준다.
둘째, 책을 나 혼자 읽고 마는 것이 아니라 독서모임을 통해 내용을 나누고 소통을 한다면 더욱 삶이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것, 내 고통이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하는 영화다.
여기에 한 가지를 보태기로 한다. 영상미다. 아름다운 건지 섬을 보면서 배우들의 역할에 몰입하다 보면 금세 영화가 끝나며 여운이 남아 건지 섬을 검색하고 여행을 꿈꾸게 된다.
영화는 현재 넷플릭스에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