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씨Luce Jan 25. 2021

감자, 김동인

삶의 비결

인상 깊은 구절


이것이야말로 삶의 비결이 아닐까. 뿐만 아니라 이 일이 있은 뒤부터 그는 처음으로 한 개 사람으로 된 것 같은 자신까지 얻었다.


복녀란 이름을 가진 한 여인의 짧은 인생 이야기이다. 열다섯에 동네 홀아비에게 팔십 원에 팔려간 복녀가 도덕적 기품을 잃고 세상에 물들어 가는 과정이 군더더기 없이 설명되어 있다. 감자 도둑질을 하던 복녀는 감자 밭주인 왕서방의 눈에 들게 된다. 송충이를 따서 삼십이 전씩의 품삯을 받던 그녀는 '일 안 하고 품삯을 많이 받는 인부'가 된다. 처음엔 얼굴이 빨개져서 감독을 따라갔던 복녀는 나중에는 중국인 부자 왕서방에게 받은 돈을 자랑스럽게 남편에게 보일 정도로 처세에 능하게 된다. 왕서방이 돈 백 원에 새색시를 사게 되자, 질투심에 낫으로 왕서방을 해하려 하지만 되려 왕서방에게 죽임을 당한다.  왕서방에게 십 원짜리 지폐 석 장을 받은 복녀 남편, 십원 짜리 두 장을 받은 한방의사 그리고 왕서방은 복녀가 뇌일혈로 죽었다고 꾸민다. 복녀의 시체는 공동묘지로 실려간다. 이름 복녀는 복이 많은 여자를 의미한다. 그러나 그녀는 이름의 의미와 이질적인 삶으로 생을 마감했다.


김동인의 감자는  "한국 현대 소설사에서 최초의 자연주의 작품 중의 하나로 꼽히며,  자연주의는 환경에 지배되는 인간의 삶을 자연 과학적 관찰과 분석을 통해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송승환)


복녀가 하는 행동들은 그녀의 사회적 상황에서 이상할 것도 없다. 인상 깊은 구절로 '이것이야말로 삶의 비결이 아닐까'를 맨 위에 언급한 이유는 그녀의 선택이 그것밖에 없었음을 나타내는 문장이기 때문이다.


주변 인물들을 살펴보면 남편은 재산을 탕진하고 남은 돈 전부를 털어 아내를 산다. 송충이를 따는 노역을 할 때 감독을 따라가는 그녀의 뒤에서 여인들은 복녀를 부러워한다. 왕서방이 집에 오면 남편은 왕서방과 복녀를 위해 자리를 내준다. 복녀의 몸은 그저 하나의 물건과 마찬가지의 개념이 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육체는 하나의 물질 개념이 되고, 교환가치가 있을 때만 상품성이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복녀는 마지막까지 상품성을 지닌다. 시체인 상태에서도 교환가치를 지니게 되기 때문이다.  


작가 김동인은 "후처 소생으로 유아독존적 성격이었으며, 방탕한 생활에 빠져 지낸 사람으로 평생 어머니 이외에는 여인을 가까이하지 않았다 "(송승환)


김동인의 삶은 풍족한 물질생활이었지만 정서는 피폐했고 여성을 혐오했다. 이는 김동인의 작품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가난이 곧 타락으로 가는 길처럼 묘사되는 것이 바로 그 점이다. 복녀가 육체를 매개로 교환한 돈을 남편에게 자랑스레 내미는 부분에서 조지 오웰의 1984의 쥬리아가 윈스톤 스미스에게 내미는 초콜릿이 생각난다. 자기보다 20년이나 많고 돈으로 자신을 산 남편을 위해 오히려 자신의 몸을 대가로 돈을 벌어 남편을 먹여 살린다는 점에서 여성의 강하고 모진 생명력이 느껴진다. <감자>는 아이러니하게, 도덕성을 잃고 타락한 여인을 객관적으로 묘사하면서 그 여인에 의지해 살아가는 남자의 허약함과 단순함의 모순을 드러내고 있다.


'도덕성을 잃었다'는 표현은 특정 사회집단의 이데아를 지칭할 뿐이다. 시대적 상황에서 한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없었음을 고려할 때, 복녀가 타락한 여인이라 규정짓기는 당연히 무리라고 본다. 여성을 폄하하고 혐오했던 작가의 글이자, 그 상황에서 여성이 한낱 상품에 지나지 않았음을 강조하는 바이다.


여성을 성 상품화하는 가치관이 바뀌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사회적 이데올로기라는 것도 한 개개인의 사고의 전환을 통해 변화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복녀의 삶은 결코 잠시도 행복한 것이 아니었고 삐뚤어진 사회 속 단면이기 때문이다. 복녀가 잠시 자신이 우쭐하게 여겨졌다는 문장은 삐뚤어진 시선으로 여성을 바라본 작가의 대사라는 점을 잊지 않아야 한다.






덧글)


소설을 읽다 보면 어이없고 허무한 한 여성의 삶을 느낍니다. 여성을 하나의 상품으로밖에 여기지 않았던 조선시대의 가치관이 떠 올랐습니다. 그 가치관이 개화기까지 이어졌다는 것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잘못된 일이 반복되어 일어나고 있습니다.


국정 교과서에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2014 교육과정)


"조선시대 여성은 아이를 낳는 도구에 불과했다." 이후 2015 개편 교육과정에는 그리 강하게 언급되지는 않았습니다.


열심히 일한 후 짬을 내어 떠나는 여행, 책과 영화, 글쓰기 등이 저의 삶의 비결입니다.


참으로 다행입니다. 이렇게 누릴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누는 일은 정서를 풍부하게 한다고 여깁니다.


제 생각에 책은 간접 경험의 세계입니다. 이를 풍족하게 내 것으로 만드는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책을 읽고 아무런 행위를 하지 않는다.

2. 책을 읽은 후 무엇인가 끄적인다.

3. 책을 읽은 후 끄적이고 다른 이와 책의 내용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

4.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눈 후, 심오하게 비평을 써 본 후 생각을 정리한다. (가치관의 성숙 단계)


이런 과정을 해 낸다면 내적으로 성숙할 것이고 글의 내용도 잘 기억되리라 여깁니다. 저 역시 잊지 않기 위해 오늘도 끄적입니다. 저의 두뇌가 녹슬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5. 행동하는 지성인이 된다 를 추가하고 싶습니다.


어려운 일이지만 노력은 해 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다이어트 불변의 법칙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