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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씨Luce Feb 13. 2021

황태구이와 쌍화차의 정읍

그냥 여행 계좌를 만듭시다

우리 셋은 원래 그리 자주 만나는 사이가 아니었다. 남자 사람 하나는 운전을 잘하며 과묵하다. 취미로 사진을 찍고 시를 짓는다. 여자 사람 하나는 노래를 좋아하고 가족이 멀리 떨어져 있어 내가 하소연 거리가 있으면 잘 들어준다.

우리 셋의 공통점 중 하나는 배우자들이 모두 바쁘거나 멀리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이가 들만큼 들어서 인상 쓰고 다투거나 좋다고 정분날 일이 없는 것이다. 나이는 차이가 있으나 친구로 여긴다. 물론 남자 사람은 조금 선배시니 친구로 여기기는 무리다. 그래도 오랫동안 알아온 사이들이라서 함께 길 떠나기 좋다.


우리는 맛과 멋을 찾아 떠나는 틈새 여행을 좋아한다. 틈새 여행이란 갑자기 만나 오후에 떠난다거나 간단히 일일 여행을 가는 것이다.


남자 사람 지인은 거의 말이 없다. 나는 사모님을 익히 잘 안다. "예전에는 사모님이랑 자주 여행을 가셨잖아요. 요즘도 그러시죠?"하고 내가 물었다.

그분이 답했다. "주말이 다가오면 미리 놀러 갈 곳을 여기저기 검색도 하고 알아봐요. 저번 주말에도 역시 아침에 일어나 준비를 하던 중이었지요. 그런데 화장실에서 훌쩍 거리는 소리가 나서 깜짝 놀라 가 봤어요."


"왜 그래 여보? 어디 아파?"

"아니, 나 너무 힘들어서 그래요."

"왜, 어디 아파서?"

"나 당신 따라 주말마다 여행 다니기 힘들어요."


그 후로는 아침에 분위기를 보고, 쉬고 싶은지 살핀다고 한다. 두 분은 오손도손 주말에는 항상 함께 하신다. 우리들은 그분의 이야기를 듣고 어찌 웃었는지 모른다. 말씀에 억양이 별로 없으니 더 웃음이 나왔다.

한솥밥을 먹으며 몇십 년을 함께 산다 해도 상대의 마음을 알기란 참으로 어렵다. 때로 우리는 상대를 생각한다고 더 힘들게 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사모님께서 그 말씀을 꺼내기까지 얼마나 힘드셨을까 싶다. 또 남편 입장에서도 어처구니없는 생각이 조금 들었다고 한다. 나들이를 좋아하는 줄 알고 주말이 되기 전에 매번 여기저기 알아보느라 힘들었고, 두 분이서 하도 여기저기 돌아다녀서 사모님이 좋아할 만한 곳이 어딨을지 찾는 것도 점점 힘들어지셨다고 한다.


서로 조금 마음의 짐을 덜어 놓은 셈이 되셨을까?

서로 시간이 맞아 우리 셋이 정읍에 황태구이를 먹으러 갔다. 오늘 화두가 자꾸 남자 사람 지인에게 쏠리는 경향이 있는 이유는 그분이 소개하는 정읍 먹방 코스이기 때문이다.


이후 글에서 남자 사람 지인을 'A 에이스'로 언급하기로 한다. 우리 셋이 만날 때 에이스 역할을 하신다. 운전대를 늘 잡으시기 때문이며, 좋은 곳을 많이 알고 계시는 정보원이시다. 여자 사람 친구는 '마리아'라는 세례명으로 부른다. 가톨릭 신자다.


황태구이 집을 찾아가는데 정읍 사람이 아니면 모를 듯한 곳이었다.


"이런 곳을 어떻게 아세요?"

"정읍사는 친구가 알려줬어요."


우선 상에 반찬이 가지런히 놓였다. 그다음 황태 콩나물국이 나왔다. 한 모금 들이켜니 얼큰하고 개운해서 맛있었다. 술 마신 다음 날 해장국으로 먹으러 많이 온다고 한다. '자양 식당'이라는 이 곳은 전라북도 맛집 책에도 나온다.

"술 한잔 하실래요? 막걸리 시켜줄까요?"

"아니요, 저 이제 술 그만 마실래요."

"아니, 그 말이 언제까지 가나 두고 볼랍니다."


드디어 황태구이가 나왔다. 탄성이 절로 나왔다. 두툼하니 맛있게 생겼다.


전주에도 신시가지와 아중리에 황태구이집이 있다. 그런데 이 곳의 것이 더 맛있게 느껴진다. 전주 아중리의 황태구이도 다시 맛보러 가 봐야겠다. 기억이라는 것이 항시 변하기 때문이다.



우리 여자 둘이 환호성을 지르며 황태를 뜯는데 A가 한마디 했다. 자주 만나는 친구들이 있는데, 이런 곳 오자고 하면 "전주에는 없냐 뭐하러 거기까지 가냐." 하면서 툴툴거린단다. 우리들은 이리 환호성을 외치니, A가 우리들과 어울릴만하다. 길가에 풀꽃에도 감동하는 우리들이니......



황태구이를 다 먹고 나니, 마리아가 정읍에 쌍화차가 유명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면서 좋은 곳을 소개해 달라고 A에게 말했다.


그래서 가게 된 곳은 <녹원>이란 찻집이다. 쌍화차 거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황태구이집에서 아주 근거리에 있어서 걸어서 가도 된다. A의 말씀이 정읍 쌍화차 거리의 쌍화차를 모두 맛보았는데 이 찻집의 맛이 제일이라고 하신다.

도심 속에 전통찻집이 아기자기한 화단과 더불어 아름답게 있다. 입구의 아이비가 20년이 넘었다는데, 엄동설한에도 굳건히 버티고 있다.

내부에 들어서자마자 강한 쌍화차의 냄새, 마스크를 쓰고 있음에도 아주 진하다. 황토로 지은 집이다. 그냥 앉아 있기만 해도 무슨 건강원에 들어온 느낌이다.

황토로 지은 집이라서 외부의 아이비가 벽틈새로 들어왔다. 그것을 찍지 못해 아쉽다. 그런데 황토 커튼을 보니 태국에 다시 가고 싶은 생각과 함께  태국의 마사지 샵이 생각났다.  


먼저 호박 씨앗이 맛보기로 나온다.

와~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맛이 진하다. 안에 알밤과 은행, 구기자가 있어서 건져먹는다. 구기자 한 개 숟가락에 담는다.

잠시 후 구운 떡과 조청이 나왔다. 그리고 솔잎 스무디도 곁들이로 나왔다. 연둣빛이 솔잎 스무디다. 후식으로 먹으라고 나온 것이다.


온과 냉으로 다스리는 희한한 비법이다. 뜨겁게 달군 돌그릇 쌍화차에 디저트로 솔잎 스무디라니.


원래 솔잎 향이 강해서 차는 마시지 못했는데, 스무디는 정말 맛있어서 모두 홀짝홀짝 다 퍼 먹는다. 마시고 나서 카페 구경에 나선다.


우리 셋이 한박스씩 구매. ^^
예전에는 나무베개인 목침이나 베개의 옆에 예쁘게 수를 놓았다고 한다.

실내에 있는 매화 화분의 꽃이 진짜인지 가까이에서 봤다. 백매화는 어느 사이 피어났다가 지고 홍매화가 반긴다.

맨 왼쪽의 것이 보이차 엿인데 사탕처럼 오물거리니 맛있다. 수제 강정도 한 봉지씩 구매했다. 모두 각 1만 원씩이다.

찻집 이름 녹원.

전주로 돌아오는 길에 A가 길을 잘못 들어 남원 방향으로 꺾었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우리 상관 편백나무 잠시 들릅시다.


잠시 들른 그곳은 길이 너무 질퍽거리고 신발이 준비가 안되어 조금만 갔다 돌아온다.


가끔은 삶에 조금은 힘든 이들의 뒷모습을 보면 아버지가 생각난다. 반전이지만 우리 아버지는 한 번도 우리들에게 쓸쓸하신 뒷모습을 보이시지 않으셨다. 항상 열정적으로 살다 가셨다.


물론 사진의 A는 이십 대에 같은 직장에서 아내를 만나 지금까지 오롯이 아내를 사랑하며 지내고 있다. 이번 주말은 또 어떻게 아내를 즐겁게 해 줄까를 고민하는 멋진 분이다. “저번에 알려준 곳 아내랑 갔는데, 덕분에 점수 잘 받았어요.” 그렇게 우리는 좋은 장소의 정보를 교환한다.


산을 지키는 곰처럼 그 자리에서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해 내는 이들에게 행복이 스며들기를......

이제 헤어질 시간이다. 모두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인사하고 헤어졌다. 헤어지면서 마리아가 말했다.


우리 아예 여행 계좌 하나 만들게요.


“그럼 마리아가 관리할 거예요?” , “그럴게요.”


돌아가면서 밥을 사던 우리는 이렇게 해서 매달 얼마씩 내서 틈새 여행비를 만들자고 합의를 보았다. 새해가 지난 어느 날 갑자기 우리의 틈새 여행은 계속될 것이다.





어제 한국인들의 음력설이 지났습니다. 새해엔 희망하시는 모든 일이 이루어지시길 기원합니다.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하트 하나씩 드립니다. 맛있게 쏙~ 한 숟갈 드세요. 마음속 힘든 일을 모두 녹여드리는 하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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