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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씨Luce Jul 21. 2021

화려한 여름 식탁

휴가란 모름지기 이런 맛

휴가 이틀 째, 오늘은 또 어찌 보낼까 생각하면서 달콤하게 이불을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그때 전원주택 사는 줄리아로부터 전화가 왔다.


매운 고추 넣어 호박전 부쳐줄게. 둘이 함께 놀러 와~.


'그렇다면 양말을 잘 신고 가야겠는걸?'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지난번 줄리아네 집에서 지네가 나왔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양말 서랍을 열었다. 뒤죽박죽 서랍장이 난리다. 세 개의 서랍을 바닥에 통으로 뒤집었다. 정리에 돌입했다. 그러다 보니 옷장도 정리해야 할 것 같아서 옷들을 꺼내어 정리하기 시작했다. 다시 전화가 왔다.


언제 올 거야?


화들짝 놀랐다. 벌써 두 시간째 정리를 하던 중이었다. "맞아, 가야지. 지금 갈게."하고 제니퍼에게 말했다. 정신없이 준비하고 제니퍼와 줄리아네 집에 도착했다. "먹을 것도 없지만 채소는 실컷 먹을 수 있어."라고 늘 반찬 없다고 말하는 줄리아는 항상 맛있고 신선한 요리를 해 준다.


부지런한 줄리아가 꽃씨를 뿌리고 가꾼 정원에는 온갖 종류의 나비가 날아다닌다.

깔끔하고 정성이 가득한 정원에 아기자기 테라코타 인형까지 다정하다.

리아트리스, 꽃대를 자르니 이렇게 여러 갈래가 되었다고 한다.
톱풀이 아름답다.

천일홍도 너른 곳에 있으니 이리 예쁘다. 꽃씨를 심어 피어난 것들이라니 나도 내년엔 꽃씨 얻어 심기로 했다.

호박이 이렇게 덜 익어도 되는 거야?라고 요리를 잘 못하는 내가 묻는다.

원래 그만큼만 볶고 불을 꺼야 남은 것으로 아삭하고 맛있게 돼.라고 요리를 잘하는 두 친구가 대답한다.


가지를 주로 나물로 해 먹었는데 이렇게 길게 썰어서 볶은 후 소스를 뿌리거나 소금간만 해도 맛있다. 바로 텃밭에서 따서 하니까 정말 싱싱하다.

처음에는 폴짝폴짝 뛰고 안기려 들던 강아지 '보리'는 내가 자꾸 안고 만지려고 하자 귀찮아서 경계태세가 된다.

호박과 자색 양파 그리고 고추를 넣어 버무리기(얼음을 몇 조각 넣어서 부드럽고도 바삭한 느낌을 갖게 한다.)

채도 잘 썰어서 얇고 맛있는 전이 완성되었다.

비트에 적신 자색 양파 장아찌, 찐 하지감자는 모두 이번에 수확한 작물이다.

푸짐하고 아름다운 색이 조화로운 여름 식탁이다.

긴 테이블 보 레이스를 이틀이면 다 한다고 해서 놀랐다. 줄리아의 부지런함을 익히 알지만 늘 새롭게 놀란다.

매리골드와 백일홍 꽃밭에 프록스가 여왕처럼 유일한 파랑이다.

파란색이 프록스 나머지는 백일홍과 매리골드(씨앗을 뿌린 정원)

줄리아가 준 자색 양파와 강황가루 그리고 나의 정원의 미니 텃밭의 고추와 방울토마토를 펼쳐 놓았다. 부유해진 느낌이다.


밥 먹고 수다 떨다가 캔 맥주 한잔 마신 후, 우리들은 모두 대나무 바닥에 납작 드러누웠다. 시원한 펜션에 드러누워 있는 기분이 들었다.


이게 바로 휴가의 참맛이다. 아무런 부담 없는 하루가 이렇게 또 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편안했다. 그런데 갑자기 어떤 생각이 떠 올랐다.


야! 나 양말 안 신고 왔어!


실컷 양말함 정리했는데, 정작 올 때는 맨발로 왔다. 두 친구는 웃고 나는 낭패 본 얼굴로 발을 얼른 움츠렸다.


안 나와 이제는. 전번에 약 뿌렸어.

하고 줄리아가 말했다.


슬그머니 도로 누웠다. 심리적으로 불안했던 것도 잠시 잠이 스르르 몰려올 지경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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