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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씨Luce Apr 17. 2021

두릅장떡, 추억을 먹다

아이로 인해 맺은 인연들

장떡이란 전의 일종이다. 고추장 1 큰 숟갈 정도면 된장 1작은술 정도를 넣고 전을 부치듯이 기름을 둘러 부치는 음식이다. 두릅만 보면 나는 두릅 장떡이 떠 오른다.


지난해에는 산의 나무 두릅을 얻어서 데친 후 초고추장에 찍어 먹었는데 향과 맛이 살살 녹았다.

초록 색이 정말 예술

올 해도 먼저 데친 후 초고추장에 찍어 먹었다. 그런데 땅두릅이라서 그런지 많이 쌉싸래했다.


"제니퍼, 이거 땅두릅은 원래 이렇게 씁쓰름했어? 가시 없는 거 말이야. 지난해 가시 있는 것은 더 연하고 향도 적절하고 맛있던데 이건 좀 쓴 맛이 강하네?" 하고 전화를 했다.


"원래 땅두릅은 좀 더 쓰지. 쓴맛에 먹는 거지. 근데 땅두릅도 전에 줄리아처럼 튀기면 더 맛있어." 하고 제니퍼가 말했다.

줄리아의 튀김을 소환한다. 로컬에서 산 내 것보다 훨씬 맛있게 보인다.

그런데 나는 튀김을 하지 않았다. 왜냐면 튀김보다 더 먹고 싶은 장떡 요리를 하기로 결정했다.

처음에는 모양새가 조금 핫케잌처럼 되어 걱정했지만 아주 맛있게 잘 되었다

마지막은 줄기 부분을 좀 더 잘라서 넣었더니 향이 강하고 맛있다.


과거에 두릅 장떡을 맛있게 만들어준 사람은 나의 큰딸로 인해 알게 된 지인이다. 나를 조금 닮아 사교성이 있는 편인 큰딸이 5살 때 집 앞 미술학원에서 만난 아이와 친해져서 서로의 집에 자주 놀러 다니게 되었다. 직장에 다니는 나는 듬직한 그 아이의 엄마를 의지하게 되었다. 나의 딸이 자주 그 집에 가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름대로 나도 다른 것들로 고마움을 표현했지만 그녀는 내가 인생에서 알게 된 참으로 고마운 사람이다. 결국 그 아이의 엄마와 나 역시 곧 친하게 되었다. 나중에는 아이들보다 우리들이 더욱 친한 인생 친구가 되었다. 그녀에게도 속한 그룹이 있었고 그 그룹에 나는 자연히 끼게 되었다. 우리들은 인생이 우리를 어디로 이끄는지 알지 못한 채 매일 시시덕거리면서 수다를 떨었다.


당시에 그녀들은 직장에 다니지 않았다. 최종학력도 다르고, 책 이야기 한마디 나누지 않는 사이였다. 다른 공통분모가 없는 상태에서 친해지기도 힘들다고들 하던데 나는 그녀들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인생의 쓸데없는 가식은 모두 걷어치우고 삶의 밑바닥부터 함께 나누게 되었다. 사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이 책에 있지는 않았다. 목욕탕을 함께 다니는 사이들이 되었다. 젊은 시절 사우나실에서 이야기하는 아줌마들이 그렇게 이상하게 보였는데 내가 그 아줌마가 되었던 것이다. 그들은 참으로 따뜻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나에게 잘해주었다.


우리에게 공통분모가 없는 것이 아니었다. 결혼, 육아는 엄청난 공통분모다. 그 당시만 해도 인터넷이 안되던 시절이었으니 경험자들의 한마디가 무엇보다 소중했다. 이해관계도 없었기 때문에 더욱 마음이 편했다.


그중 왕언니가 있었다. 나는 본시 '언니'가 없어서 대학의 과 선배 언니 이외에는 절대 '언니'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내가 왕언니에게 언니 소리를 하게 된 것이다. 그 왕언니는 요리 솜씨가 정말 좋았다.

"김치 담그니까 와서 먹어!" 하면 퇴근 후 쪼르르 옆 동에 달려갔다. 그러면 그곳에 그 그룹의 여럿이 모여서 수다를 떨고 있었다. 어느 날 "두릅 장떡 해줄까?" 하는 것이었다. 나는 두릅이란 것도 처음 먹어보았다. 우리 집에서는 두릅 요리를 거의 맛보지 못했다. 아버지가 좋아하시지 않으셨던 것 같다.


게다가 장떡이 뭔지도 몰랐다. "고추장과 된장 조금을 넣고 버무려서 전을 부치는 것을 장떡이라고 혀. 너는 가정선생님이 그것도 몰랐냐?" (이건 내가 제일 듣기 싫어하는 소리지만 왕언니가 하니 꾹 참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니까 나는 몰랐네. 언니~, 그런데 우리 집에서는 고추에 고추장 넣고 부침개를 부쳐먹었는데 그게 장떡이었네. " 하고 그제야 장떡의 의미를 안 내가 말했다.


그 후로 나는 두릅 킬러가 되었다. 두릅만 보면 일단 장바구니에 담는다. 여러 요리 중 장떡은 꼭 해 먹고야 만다. 그날 여럿이서 장떡을 부쳐서 막걸리를 함께 나누며 박장대소하던 시간을 떠 올린다. 내가 만든 것은 왕언니가 만든 것보다는 맛이 덜하다.


서로 이사를 하고 아이들이 자란 후로는 연락이 거의 끊겼다. 그래도 해마다 두릅을 보면 왕언니의 손맛, 두릅 장떡이 생각난다.


내가 만든 도자기. 지금보면 자전거 앞바퀴가 공중부양하는 느낌이다. 그때 앞바퀴에 그림자를 넣었는데 구우면서 날아가 버린 듯하다. 금세 날아갈 기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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