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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씨Luce Aug 26. 2021

그 길의 끝에 국수가 있었다

길치의 길 찾기

길이란 어디로든 연결이 된다는 말이 있다. 정말일까? 길치인 내가 헤맨 길 이야기를 해 보련다. 그 길의 끝에는 다행스럽게도 늘 맛있는 음식이 있었다.



스키


아주 오래전 스키를 처음 배운 것은 오밤중이었다. 너무나 흥미로워서 다음 날 새벽같이 일어나 혼자 스키를 타러 올라갔다. 겨우 초보 코스 두 번 탄 것이 전부였기 때문에 초보 코스를 선택했다. 내려오는 데 아무래도 어젯밤 그 길이 아닌 듯했다. 몇 번을 넘어졌다. (스키를 배우면서 넘어지는 것부터 배웠으니, 무리해서 속도를 내지 않고 잘 넘어지는 것을 선택했다.) 어쩐지 길이 수상했다. 그런데 밤에 본 길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경사가 심한 곳을 만났다. 스틱이 내 볼을 쳤다. 겨우 스틱을 찾아 잡고 남은 길을 가까스로 내려왔다. 도착점에 와서 보니 중급 코스였다. 얼굴에 커다란 혹과 멍이 생겼다. 돌아오니 가족들은 놀라서 무슨 영문인지 물었다. 전장에서 살아남은 것처럼 함께 축배를 들었다.



성수산 자연 휴양림


성수산은 담임을 맡아 약 400여 명의 학생들과 함께 테마 수련 학습을 간 곳이다. 그곳의 교관들께서 인근에 '위험한' 오토바이 족들이 야산에 나타날 우려가 있으니, 학생들 단속을 잘해 주십사 부탁했다.


우리는 밤에 잠들면서 만약 위험한 '오토바이 족'이 나타난다면 의사소통을 위해 서로의 이름을 부를 수 없으니 암호를 정하기로 했다. 암호는 '숲 속'으로 정했다. 우리가 머문 호실의 명칭이었다.


아침에 등산이 계획되어 남선생님들께서 먼저 학생들을 인솔하시고 교관들과 함께 정상으로 출발했다. 후발주자들은 여교사 5명이었다. 우리는 아이들 방들의 문단속 및 뒤처리를 한 후 40여분 후에 서둘러 먼저 출발한 등산팀을 향해 출발했다.


삼거리가 나오면 우회전을 하라고 했다. 우회전을 하여 부지런히 걷다 보니 다시 또 삼거리가 나왔다. 순간 망설였으나 다른 이야기를 들은 바 없었기에 다시 우회전을 했다. 마침 학생들의 웅성거림이 조금 들렸다. 우리가 길을 맞게 온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점점 웅성거림이 사라졌다. 정상이라고 생각한 지점에 다 달으니 학생들은 온데간데없이 비행장 같은 것만 덩그러니 있었다. 다른 봉우리가 저만치 보였다. 그래서 다시 갈길을 재촉했다.


비행장을 넘고 나니 통통한 복분자가 많아 따 먹으면서 하하호호 즐거웠다. 우리가 지난 곳은 정상이 아니고 학생들은 저쪽 봉우리에 있나 보다고 여겼다.


그런데 다시 고개를 넘는 사태가 빚어졌다. 점점 우리가 길을 잃은 것 같다는 의견이 쏟아졌다. 겁이 많은 나는 되돌아가자고 주장했다. 호기심 많고 똑 소리 나는 동료 두 명은 이대로 가면 나온다고 주장했다. 시간상으로 볼 때 이미 정상에 도착했어야 한다. 이 길이 아닌 듯하다는 의견이 재차 솔솔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그저 무리의 뒤를 따르기만 했으나 그때부터 불안하여 연신 돌아가자고 주장했다.


바로 먼저 출발한 일행을 만나리라 여겼기 때문에 아무런 준비가 없었다. 산행 후 식사를 할 예정이었고, 가벼운 트래킹이라고 했다. 점점  목이 마르고 배가 고파왔다. 벌써 몇 시간이 흘렀다. 다시 내려가는 길이 나왔다. 비좁은 길을 내려가던 중이었다. 이제 다 내려왔나 보다는 안도감이 일었다.


갑자기 "왱~~~!" 하는 굉음이 순식간에 산의 여기저기에서 일제히 일었다. '오토바이 족들!' 이 나타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만화책에서 나오는 것 같은 속도로(다리가 안 보일 정도) 내려오던 산길을 다시 죽자고 달렸다. 어느 정도 달리다 보니 뒤에 오는 동료들이 보이지 않았다. 다시 살금살금 아래로 내려갔다. 우리들은 나무 그늘에 몸을 피한 채, 좁은 길에 일렬로 듬성듬성 웅크린 상태였다.


앞장섰던 두 명이 맨 앞에서 상황을 살피는 중이었다. '왔던 산길로 다시 되돌아가야 한다'와 '상황을 살피고 직진해야 한다'로 순식간에 의견이 둘로 나뉘었다. 나의 경우 당연히 전자였다. 시종일관 뒤돌아가는 것을 선택했지만 이미 우리가 몇 시간을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는 것을 생각하면 끔찍했다. 참으로 진퇴양난,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그런데 맨 앞에서 진두지휘하던 동료 둘이 "숲 속 숲 속~~~"하고 외치면서 오라고 손짓했다. 마침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들이 사라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길을 재촉해서 빠른 걸음을 걷다가 갑자기 맥이 풀렸다. 우리가 생각한 '오토바이 족', 그들은 바로 '벌목꾼'들이었다. 모터 소리가 동일했다. 벌목꾼들도 무서웠다. 우리는 모두 20대 후반, 30대 초반의 나이였다. 벌목꾼들이 10명 이상이었다. "아가씨들, 밥 먹고 가."라면서 우리들에게 손짓했다.


우리들은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서 서둘러 걸음을 재촉했다. 흑염소들이 메 헴 거리면서 왔다 갔다 했다. 저만치 농가 한 채가 보였다. 할머니와 할아버지 두 분이 사셨다.

마침 국수를 삶는 중이라면서 우리에게 먹고 가라고 하셨다. 산 쪽으로 다시 되돌아 달린 나, 그리고 나만큼 빠르지는 않았지만 역시 돌아서 뛰었던 또 다른 한 명의 동료, 우리는 먹을 기운이 없었다. 후들거리던 다리의 맥이 풀렸다. 가슴의 콩닥거림은 여전히 진정되지 않았다.


다른 동료들이 국수를 모두 먹을 즈음 안도감이 몰려오면서 갑자기 허기가 졌다. 정신없이 국수를 퍼먹기 시작했다.


그때, 할머님의 국수는 따뜻한 위로 그 자체였다. 그 댁에 전화가 있어서 동료 일행에게 연락을 취했다.


"선생님들은 어디예요? 점심 식사는 했어요?" 하고 학년 부장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여기 대판이래요."하고 전화를 건 똘똘한 대표 여 선생님이 말했다.

"대판이 어디여?" 하고 놀란 부장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알고 보니 남선생님들은 자기들끼리 밥을 해서 점심을 먹는 중이었다. 학생들은 위탁기관에서 관리하며 우리 교사들은 우리끼리 취사를 해결하는 시스템이었다. 남선생님들은 우리가 등산에 참여하지 못한 것으로만 알았다고 했다. 우리가 머무는 '숲 속' 호실 쪽에서 여교사들끼리 점심 식사를 하는 중으로 안 것이었다.


그때까지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모두가 동참해야 하는 점심 식사 후 진행될 프로그램이 시작되기 전에는 아마도 전원이 우리의 부재를 몰랐을 것이었다.(핸드폰이 없었던 시절이다.)


아무도 우리를 데리러 올 수 없는 상황이었다.


버스도 없고, 택시도 없다고 말씀하시면서 사위를 불러주셨다. 시골에서 승합차를 갖고 있다고 하셨다.


아무런 선물도 드리지 못한 채 공짜 국수만 얻어먹은 우리는 할머님의 사위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무사귀환을 할 수 있었다. 그때 그분들께서 외진 산속에 살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어찌 되었을까 싶다.

 

내려와서 알고 보니, 내려가는 길이라 생각했던 등산로는 험해서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았으며, 우리가 오히려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간 격이었다. 비행장 너머 복분자 열매가 그토록 탄실했던 이유는 바로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길이었기 때문이다.


무수히 많은 헤맴의 끝에는 늘 따뜻한 음식을 나누는 이들의 온기가 나를 위로했다.


길치인 나는 오늘도 헤매고 있다.



*국수 사진: 완주군 용진읍 아줌마 국숫집에서(주말에 국숫집에서 국수를 먹는데 그 옛날 성수산에서 헤맬 때 맛보았던 국수가 생각났다. 동시에 우리를 보시면서 주름진 얼굴로 해맑게 웃으시던 두 분과 주변을 맴돌면서 "매~~~ 헴~~ 엠~~"소리를 외치던 염소들이 떠 올랐다.)


<글의 내용은 그때 동참했던 동료 선생님의 증언으로 좀 더 사실에 입각해 내용이 보완되었습니다. 성수산 자연 휴양림 2탄은 '야밤의 담력 훈련'에 관한 이야기로 다음 화에 계속될 예정입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memories-of

https://brunch.co.kr/brunchbook/mad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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