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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씨Luce Apr 16. 2021

울 엄마와 시어머님

달라도 너무 달라

오늘 양쪽 어머니들께 전화를 드렸다. 평소에 생각만 하다가 이웃 브런치 작가님의 글을 읽고 자극받아서다. 전화라도 자주 하려고 해도 일이 끝나면 오밤중이다.


먼저 시어머님께 전화를 드렸다.


어머님~ 저예요. 세상에 어머님 팔 빠지셨었다면서요? (과거형인 이유는 어머님의 답변 속에 있다.)


뭐하러 했냐. 나는 암시랑 안혀. 한쪽 팔이 그전에 빠졌었잖아. 그래서 내내 깁스했는데, 풀고 나서 텃밭에 풀이 어찌나 많은지 안 캘 수가 있어야지. 그것 캐고 씻었는데 벽을 짚는다고 커튼을 짚었지 뭐냐. 또 같은 데가 빠졌지. 뭐라고? 그냥 신경 쓰지 마. 어느 쪽 팔이 뭐가 중요 혀. 이제 암시랑 한하니까 너네들 잘 살 궁리나 혀. 서울 애들은 잘 지낸다냐? 큰애가 정이 많고 동생 취업 준비하는데 챙겨주느라고 애쓴다지? 취업도 빨리하고 동생도 잘 챙기니 참 장허다 장혀. 그려. 걱정 말고 잘 지내라. 집에 이불도 다 정리하고 버릴 것 버리고 태울 것 태웠다. 어떤 거 하나는 참 아깝더라. 누가 애기 낳으면 이불 해 주면 좋겠더구먼. 큰애 결혼은 언제나 한다냐. 그려. 몸무게가 이참에 많이 빠졌더라. 50킬로밖에 안되더라. 걱정 말아라. 다시 입맛이 조금 생겼다. 잘 먹으니까 신경 쓰지 말고 잘 지내라. 화단에 꽃이 어찌나 이쁜지 모르것다.

(어머님께서 주신 샤스타데이지를 골목에 심었는데 자생력이 강해서 한뿌리만 심어도 널리 퍼진다. 따뜻한 봄 4월 말에서 5월 초에 피는 꽃이다.)


시어머님과의 일화들


과거 일화 1)

결혼 초 시댁에서 일을 한 후 어머님과 한 방에서 잠을 자게 되었다.


어머님~ 어깨 좀 주물러 드릴게요.

괜찮다. 어서 자라

어머니~~ 임. 제가 좀 주물러 드릴게요.

야가. 괜찮다니까. 귀찮다. (점점 화를 내셨다.)

머쓱해진 나는 뽀로통해서 돌아 누웠다.


과거 일화 2)

우리 아이 3살 즈음이었다. 같은 아파트 이웃에 나의 동서가 살 때였다. 시어머님과 아버님께서 전주에 오실 일이 있으셨다. 동서와 나는 상다리가 부러질 만큼 열심히 점심을 차렸다. 점심시간이 지나도록 오지 않으셨다. 핸드폰이 없던 시절이었다. 우리 모두 쫄쫄 굶고 기다렸는데 댁에 가셔서 "집에 잘 왔다."라고 전화를 하셨다. (시댁은 다른 도시에 있다.)


그게 전부였다. 시어머님과 아버님은 말씀이 없으시다. 자식이든 누구든 피해를 주는 것을 싫어하셨다. 자식들도 부모님을 닮아 말이 없는 편이다.


친척 일 있으셔서 전주에 오신다고 하셨지만 우리가 기다릴 것이라고는 아예 생각을 하지 않으신 것이다. 우리는 음식 준비에 정신이 없었고 남편들이 말씀드렸겠지 생각했다가 뻥~하고 말았다. 그런데 들르실 줄 알고 말씀을 따로 드리지 않았다고 했다.


과거 일화 3)

어머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나 퇴원했다." 입원한 줄도 몰랐는데 퇴원하셨다니 무슨 일인가 여쭤봤다. "창문 닦다가 삐끗했는데 팔이 부러져서 심을 박았다."


그 후 심을 빼러 입원하셨을 때 역시 심을 뺀 후에 전화가 오셨다. 정말 독립적인 분이시다.


아버님은 선비시고 어머님은 종갓집 맏며느리답게 호탕하시며 강인하시다. 신혼 초 2박 3일을 시댁에서 잔 적이 있다. 3일 동안 아버님 음성을 단 한번 들었다.  "네가 참 고생이 많구나." 마당에서 접시 들고 가는 나에게 하신 말씀이셨다.



오늘 시어머님과의 전화 통화는 지금까지 한 것을 통틀어서 가장 길었다. 항상 하실 말씀 끝나자마자 끊으신다. 중언부언을 질색하셨다. 어머님도 조금은 변하신 것 같다. 내가 애교 많다고 늘 칭찬을 하신다. 귀찮다고 하실 때는 과거다. 나의 애교는 거의 없어졌다. 어머님 마음속에는 내가 다정하게 느껴지시나 보다.


결혼 초 남편이 아플 때, 나는 곁에서 얼마나 아파요, 그래서 어떡하지? 물수건 해다 줄까? 그러면서 이마를 짚으면 언짢아하고 문 닫고 조용히 해 달라고 했다. 집안 내력인 듯했다.


반대로 내가 아프면 나를 조 용 히 한쪽 방에 두고 문을 꼭 닫은 후, 아이들과 밥을 잘해서 먹고 나에게도 밥을 가져다주었다. 절대 머리를 짚어주지도 않고 괜찮냐고 묻지도 않았으며 물수건도 해 주지 않았다. 어느 몹시 아팠던 날, 내가 울면서 울 엄마한테 간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아픈데 위로가 없는 것이 그렇게 서운했다.


자신의 방식으로 마음을 표현한 것이었는데, 우리는 서로 마음에 대해 말로 표현하는 것이 매우 서툴렀다.


이제 나는 시어머님처럼 강인해졌다. 혼자서도 뭐든 잘하는 편이다.


이제 울 엄마에게 전화드렸다.


엄마, 나야~.


응, 잘 지냈냐? 낮에 뭐하기는. 그때 복지관에 있었지. 점심은 11시에 먹어. 점심 먹고 나서 한 시간씩 자.
배가 자꾸 나와서 62킬로나 되었어. 그려, 밥 먹고 바로 자면 안 되는데, 근데 졸려서 그냥 자.
복지관에서 저녁을 4시에 먹고 집에 오잖아. 밤 되면 배고파서 뭘 또 먹게 돼.
애들은 잘 지내지? 0 서방은 잘 지내냐?
내가 몸이 좀 안 좋아서 말했더니 00 이가(남동생) 병원에 입원시켜준단다.
그려, 내일 입원했다가 일요일에 데리고 온대.
너희 시어머니는 잘 계시냐? 전화 자주 드려라.


달리 입원을 하시는 것이 아니라 방광염인데 입원을 하신다니 참......



남동생 말에 의하면 엄마가 좀 허약해지신 듯하면 무조건 입원조치 취해드린다고 한다. 아무리 의사인 남동생이 말씀을 잘 드려도 건강 염려증이 심하신 편이시다. 특히 아빠가 안 계신 후 엄마는 허약한 마음이 되셔서 우리들로는 양이 차지 않으신다. 결국 병원의 특실에서 며칠 계셔야 위안이 되시는 것 같다. 이번 경우에도 잘 낫지도 않으시니 아예 며칠 입원하시는 것이 빠른 쾌유에 도움이 될 것이다.


가을이면 나의 아버지는 열심히 키우신 색색의 국화 화분을 꼭 가져다주셨다. 예쁜 화분 나누기다.

엄마와의 과거 일화


과거 일화 1)

결혼하고 일주일 만에 엄마를 만났다. 멀뚱멀뚱한 나를 보고 엄마가 울음을 터뜨리셨다. 나는 그런 엄마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멀리 다른 곳에 간 것도 아니고 같은 전주인 데다가 자주 얼굴을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과거 일화 2)

아이가 5개월 때 복직을 했다. 주말 부부였다. 이른 아침 출근 전에 아기와 물품들을 챙겨서 아파트 옆 동에 아이를 돌봐 주시는 분께 데려다주고 출근해야 했다. 늘 아침이 분주했다. 핸드폰이 없고 집 전화만 존재할 때였다. 엄마는 자주, 거의, 늘, 전화를 하셔서 오늘 날씨가 어떠하니 어떻게 챙겨 입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처음부터 화를 낸 건 아니었다. 아침 초읽기에 내가 얼마나 바빴는지 지금도 상상도 하기 싫은 정도다. 결국 어느 날 폭발해서 "엄마, 앞으로 아침에 전화하지 마세요."하고 말았다. 그래서 엄마가 또 우셨다. 그리고 삐지셔서 다시는 안 하신다고 하셨다. 나는 우는 엄마에게 화를 냈다. 왜 우시냐고요. 감성이 풍부하신 분이시다. 안 하신다는 말씀을 일주일이면 잊으시고 또 하셨다.


나의 아버지는 텃밭 가꾸기나 화초 가꾸기를 정말 좋아하셨다. 엄마는 본래 질색을 하셨다. 마지못해 아버지를 따라 집안의 나무며 텃밭을 가꾸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단 한 개의 화분도 키우지 않으신다.


참으로 울 엄마와 시어머님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나도 정서적으로 엄마를 많이 닮았다. 다른 점은 나는 딸들에게 전화를 잘하지 않는다. 나의 큰딸이 서운해할 정도다. 이게 다 울 엄마 탓이다. 안 하는 것이 나은 것같이 생각이 들 정도로 자주 하셨기 때문에 나는 또 너무 안 해서 아이들이 서운해한다.



못된 것은 조상 탓이라더니 탓할 조상이 계셔서 참으로 감사하다.


울 엄마와 시어머님께서 모두 치매나 이상한 것에는 걸리지 않으시기만을 간절히 기도한다.

고군산 군도, 장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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