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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씨Luce May 11. 2021

자존감은 내면에서 나온다고요?

플랫과 하이힐 사이

플랫과 하이힐은 신발에 관해 언급할 때 사용되는 단어다. 키가 작아 플랫슈즈를 신지 않았다. 절묘하게 하이힐은 나의 자존감을 높여줬다. 어느 날 무릎에 문제가 생겼다. 대학교 언어교육원에서 즐겁게 영어 회화를 하고 긴 계단을 내려오는 데, 무릎이 아픈 것이다. 그날 이후 하이힐조차 신지 못하게 되었다.


옆 젊은 동료의 하이힐을 보니 감개무량이다. 아, 대리만족이란 이런 것이로구나. 또각또각 소리도 경쾌하다. 베이지색 톤의 하이힐, 굽은 금빛으로 빛난다. 긴 생머리를 살짝 묶고 얼굴은 뽀샤시하다. 베이지색 슬랙스에 아주 잘 어울린다. 젊음의 상징이다. 부럽기도 해라.

단 한번 신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지난해까지만 해도 하이힐을 샀다. 그 신발은 결국 동생에게로 갔다. 대학원 다닐 때 운동을 못한 채, 늘 책과 씨름했다. 뒤늦은 향학열에 불탔다. 영어교육 석사를 받는 동안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 그래도 돌아보면 전반적으로 행복했다. 책을 좋아하니 당연한 것 같다. 그러나 몸에는 무리가 왔다. 운동 부족과 연골 퇴화가 맞물려서 그런 현상이 빚어진 것이었다.


곧바로 검진하니 심각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다행히 대학원을 마칠 즈음이었다. 헬스장에 등록하여 다리 운동을 강화했더니 한 달 사이 원래대로 많이 좋아졌다. 이후로 책 속에 파묻히지 않고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운동과 여행 그리고 맛있는 것 먹기가 나의 남은 인생에 중요 요소가 되었다.


나의 딸들이 하필 나를 닮아 키가 별로 크지 않다. 그런데 둘 다 하이힐 신은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서울의 아이들 집 신발장에 둘째 아이의 하이힐이 있기는 하니, 아마도 패피(패션감각이 있는 사람)라 여기는 둘째는 가끔  신는가 보다. 큰 딸은 편안함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며 옷 사 입기를 아주 싫어한다. 아마도 내가 어릴 적에 큰 딸의 옷에 너무 신경을 써서 그런 것 같다. 아이가 부모의 장식물이 아닐진대 내가 입어보지 못한 것들을 딸을 통해 대리 만족했던 것 같다.



분홍 발레복과 슈즈


플랫 슈즈 중에 여자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분홍색 발레슈즈가 있다.  아이의 유치원 교육과정  선택사항으로 일주일에   발레 레슨이 있었다. 첫날 분홍색 발레복과 발레슈즈를 신은 아이는 아파트 베란다에 서서  모습을 자랑할 사람이 없는지 살폈다.

발레 레슨이 있는 날은 집에 와서 발레 한다면서 손도 잘 닿지 않는 데, 포동한 다리 너머 손을 길게 뻗으려 안간힘을 하는 모습이 앙증맞았다. 십자수는 내 취향이 아니다. 정해진 형식에 따라 X표를 채우는 인내심이 요구된다. 그래도 발레 포즈들 도안이 예뻐서 수를 놓아 딸의 방에 걸어 주었다. 엄마 닮아 한 가지를 오래 배우는 것에 싫증을 잘 내는 아이는 두 달도 되지 않아 발레 레슨을 포기했다. 슈즈와 발레복만 덩그러니 남았다.


신체에 무리를 주는 하이힐, 킬힐


킬힐이라고 할 만큼(예를 들면 10센티미터) 높은 굽의 구두를 신어보지는 못했다. 킬힐 하면 한때 몇 드라마에서도 다룬 적이 있다. 가장 기억에 강하게 남는 것은 <하이에나>다. 연예인 중에서는 킬힐 하면 김혜수 씨를 손꼽아 볼 수 있겠다.


높은 굽은 결국 신체에 무리를 준다고 한다. 그러나 여성의 패션의 완성이 신발에 있다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정장을 입거나 했을 때는 하이힐이 멋지게 보인다. 심지어 카리스마가 느껴진다. 자존감이 뿜 뿜이다.


이제 나는 통굽을 신는다. 주로 흰색과 검정 운동화를 신는다. 중간으로 사는 삶이다. 어쩐지 내 삶에서 귀중한 무엇인가를 내주고 남은 평화로움 같다. 그래도 익숙하니 살만하다.


운동화에 맞춰 패션을 조정하게 된다. 캐주얼 정장이나 진 계열의 옷을 입는다. 하이힐을 신지 못하는 경우가 또 있다.


플랫만 신어야 했던 친구


지금은 연락을 자주 못하고 지내지만 고등학교 때부터 친한 친구가 있다. 고등학생 때 키가 173이었다. 대학 1학년 때, 첫 미팅에서 만난 선배와 장장 8년의 사랑 끝에 결혼을 했다.


친구는 플랫만 신었다. 하이힐을 신지 못한 이유는 남자 친구의 키에 맞추기 위해서였다. 남자 친구의 이름이 정말 정감 가기에 지금도 '누구 씨'(친구 남편)가 친근히 느껴진다.


결혼 후 연락이 서로 뜸해진 배경은 ‘아기’ 문제였다. 나는 바로 아이를 낳았고 그 친구는 결혼 후 10년 간 불임 치료를 받았다. 마음이 따뜻하고 말씨가 상냥했던 친구였다. 나날이 신경이 날카로워졌다고 했다. 특히 어디서든 아이 관련 이야기만 나오면 꺼 버렸다고 후일 이야기했다.


그러다가 10년 만에 아이를 갖게 되었다. 그것도 한 번에 둘, 이란성쌍둥이를 축복 속에 낳았다. 직장 생활하면서 쌍둥이 키우기가 힘들지만 하늘이 주신 생명으로 알고 즐겁게 산다. 아니 이제 대학생들이 되었겠다.


플랫이나 하이힐을 보면 마음속에 번뜩 떠 오르는 친구다. 더불어 수다스럽던 교실이 흑백 영화처럼 오버랩된다. 키가 작아서 중간에 앉던 내가 늘 맨 뒤의 그 친구에게 가서 미주알고주알 잡담을 했다. 그런 우리들도 감성이 충만해서 조용해지는 때가 있었다. 학교 창문 밖 언덕 마을 교회의 십자가 너머로 노을이 아름답게 물드는 때였다.


장맛비 같은 비가 내리는 중에 글을 쓰니 더욱 친구가 그립다. 그런데 저장된 번호를 아무리 찾아도 없다. 그 친구가 나에게 먼저 연락을 주기만을 기다려야 하다니 세월의 무상함과 나의 무심함이 안타깝다.


친구야, 어디서든 잘 살아~






매거진 <하우스 앤 가든>의 글을 모아 브런치 북을 만들었습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mad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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