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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씨Luce May 16. 2021

다른 세상 이야기로 알았어

20대가 말하는 '최종적으로 지향하는 삶'

리모델링 한 집에 아이들이 주말에 다녀갔다. 내심 걱정을 했다.


한옥 스타일의 외관이니 아이들의 현대적 감각에 맞지 않을 수 있다.


전주역에 마중을 갔다. 관광객으로 가득했다. 코로나가 종식된 느낌이 들 만큼 많은 인파로 붐빈다. 물론 마스크들은 모두 잘하고 있다.


딸들을 태우고 나의 마당으로 향했다. 어제까지 망울로 있던 마당의 꽃들이 아이들을 반기지만 역시 젊은이들은 꽃보다 실내 구경이 먼저다.


나중에는 마당도 하나하나 살펴봤다. 나는 딸들에게 점검받는 심정이었는데 곧바로 얼굴이 환해졌다.


아이들이 공간에 들어서자마자 가구의 나무 냄새와 더불어 시트랄 왁스 향기가 너무 좋다고 한다.

멜로그라노 왁스 타블렛. 이 작은 왁스 두 조각이 공간에 생기를 준다
엄마, 나는 이런 일은 남 일로 알았어. 이렇게 주택을 사고 또 카페처럼 예쁘게 꾸미다니
엄마 정말 인테리어 감각 있네


"엄마가 평소 진행 사진을 보냈잖아" 하고 말했다.

"사진은 작아 보이는 데 실제 보니까 넓고 평화롭고 너무 좋아. 곳곳에 아이템들도 많고."라고 딸들이 놀란 눈으로 말한다.

둘째가 찍은 사진들
흰색 이케이 화분.
친구가 이탈리아에서 사 온 그림 지도 천. 위 아래에 아직 정리 못 한 나의 물건들이 가득하다. (이 가구는 결국 창고 쪽으로 이동했다.)
애들아, 아직 정리 안 되었단 말야. 나는 계속 변명한다.사실 내부의 정리는 공사가 모두 끝나지 않아 못한 것이다.
엄마 이건 뭐야? 루마니아에서 온 술 담는 병. 삼촌이 거의 다 마셨어.
이건 엄마가 만든 도자기지


"다 완성하고 정리하면 더 좋을 거야. 그때 친구들 데리고 와."라고 내가 말했다.


원래는 <꿈꾸는 마당>에 잠시 들렸다가 바로 아파트로 가려고 했다. 그런데 큰딸이 침대에 눕더니 어느 사이 잠이 들었다. 작은 딸은 블루투스로 음악을 선곡한다.

사진 배경의 스피커는 아파트에 있는 것으로 양피로 만들었다고 한다. 앞의 블루투스 naim은 남편이 사 준 것이다. 특별히 듣는 귀가 발달한 남편은 스피커나 블루투스를 각별히 고르는 편이다. 다른 것에는 돈을 엄청 아끼는데 렌즈나 스피커 LP 등에 몰입도가 크다.


딸들이 휴식을 취하는 동안 나는 요즘 핫 하다는 밀맥주 한잔을 하며 빗소리를 듣는다.

아이들 오기 전에 방충망이라도 잘 되어서 다행이지 싶다.

엄마가 이것도 만들었어. 딸들에게 자랑질 하는 엄마

평화롭고 행복하다. 저녁에 아빠가 오니 아이들이 더 좋아한다. 공간에 아빠가 만든 것들을 보고 "역시 우리 아빠!"라면서 좋아한다.


아직 완벽하게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아서 아파트에 와서 잤다.


우리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서 다시 <꿈꾸는 마당>에 갔다. 산장 쥔님(남편)은 역시 자신의 나라 <안덕 목공소>에 갔다.


"애들아, 커피 내려줄게. 여기 캠핑 의자 앉아봐. 좋지. 너는 커피 안 마셔? 그럼 홍차 마실래?" 하고 말하면서 캠핑 박스와 의자들을 옮겼다.


분주히 움직이는 나를 보면서 안 피곤하냐고 묻는데 전혀 피곤하지 않다. 자식들이 행복하게 쉬는 모습이 내 행복이라고 말한다.


둘째의 사진들


큰아이는 유튜브를 해야 마땅하다고 난리다. 둘째는 조용히 사는 게 최고라고 말한다. 큰딸은 생산성을 지향하고 둘째는 아직 세상의 쓴맛을 모르는 몽상가라고 생각했다. 둘째가 반대하는 이유는 엄마가 SNS를 통해 못된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을까 염려되어서 그런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나는?

모르겠다.


<꿈꾸는 마당> 말고 이름을 바꾸라고 둘 다 성화다. 아직 간판을 내 걸 생각은 안 하니 좀 더 생각해 보자고 말한다.

외부 썬룸의 전기시설도 아직이고, 인덕션도 아직이라 캠핑 기분을 내 본다.


나는 아이들이 이렇게 좋아할 줄 몰랐다. 그래서 내가 더 놀랐다.


천국에 온 것 같아.

"엄마는 정말 추진력 최고야. 내가 우리 부모님은 주말에 바쁘니 내려오지 말라고 한다니까 우리 친구들이 부럽대. 자기들 부모님들은 취미도 없고 맨날 자기들만 바라본다고. 정말 천국에 온 것 같아." 하고 큰딸이 말한다.


내가 최종적으로 지향하는 삶이다


"엄마, 내가 사진 보냈더니 친구가 자기가 최종적으로 지향하는 삶이라고 문자 왔어." 하고 말이 적은 취준생 20대 둘째가 자랑스럽게 말한다.

엄마가 재배한 고수는 둘 다 못 먹는다고 한다.

우리 딸들이 생각이 많으니 친구들도 그러나 보다. 뭘 그렇게 거창하게 말한대. 하하 호호. 우리들은 마냥 즐겁다.



짧은 일박 이 일이다. 늘 바쁜 아이들이 잠시 내려와서 마음 편히 쉬다 가니 참으로 뿌듯하다. 전주역에 데려다준다.

언제든 마음 답답하면 내려와서
실컷 쉬고 가~
친구도 데려와서 잔디에 텐트 치고
캠핑도 해.


말하면서 잔디를 잘 다듬어야지 생각했다.


하하. 인생은 알 수 없다. 예전에는 서울 보낼 때면 아쉽고 눈물이 났다. 이젠 웃으며 보낸다. 아이들도 웃는 엄마를 보면서 웃는다.


KTX는 참 빠르다. 서울에 도착한 큰 딸로부터 문자가 왔다.


"엄마, 완전 갑부 된 것 같은 느낌.

엄마 아빠 진짜 대단해.

평생 일해서 돈 모아서

이렇게 하고 싶은 것 이루고 살고,

우리도 키우고

엄청 대단한 거 같아

나도 자극됐어.

나도 엄마처럼 추진력 있고

적극적으로 살아야겠다."


이만하면 아직까지는 괜찮은 인생을 살고 있다는 강한 자부심이 든 하루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일 년에 적어도 한 번은 소식을 주고받으며 지내는 제자가 있다. 딸들을 대동하고 집으로 오는 중에 운전 중이라 핸즈프리 통화를 했다. 제자는 <스승의 은혜> 노래를 불렀다. 이후에 사적인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 하고 끊었다. 20년 정도 된다. 스승의 날이면 전화로 노래를 불러준 제자다. 나의 딸들에게 강하게 남은 일화이기에 덧붙인다. (이번 주말 엄마 주가 상승이었다.)


스승보다 나은 제자는 최근 자신이 운영하는 회사의 프로젝트들을 알려준다. 더라운드, 더원 레스토랑, js가든. 찾아보니 모두 어마어마하다. 참말로 멋진 건축 설계 & 인테리어 디자인 전문가다. 앞으로 우리나라의 핫 플레이스를 모두 휩쓰는 여성 CEO가 되기를 기원한다.



https://brunch.co.kr/brunchbook/mad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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