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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씨Luce Aug 10. 2021

캠핑 기분으로 삼겹살 구워 먹기

냥이와 나와 삼겹살

얼마 전 고민 끝에 데크 일부에 아주 작게 유리 새시를 했다.


지난 4월에 푹신한 의자 하나를 나무 데크에 두니, 길냥이가 자고 간 흔적이 있었다. 미안하지만 그 후에 의자를 치웠다. 내 공간에서 내 맘대로 푹신한 의자 하나 데크에 놓지 못한다.


길 고양이들이 한두 마리가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나를 보아도 피하지도 않는다.


"너희는 왜 그러냐. 자꾸 와서 실례는 하지 마~."하고 알아듣지도 못하는 고양이에게 말을 하면 나를 한참 보다가 무시하고 느릿느릿 걸어서 담장 위로 올라간다. 그중 가장 맘에 걸리는 녀석은 등치가 크다. 몸집이 작은 강아지보다 크다. 처음 어슬렁 거릴 때는 정말 깜짝 놀랐다. 개가 들어와서 돌아다니는 줄 알았기 때문이다. 지붕 위를 걸어 다니면 그 소리가 들린다. 나중에 이 녀석 때문에 지붕 보수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


자주 어슬렁 거리는 담장과 지붕으로 올라가는 부분에 장미 화분 두 개를 놓았다. 그런데도 유유히 가더니 그 커다란 몸으로 잘도 뛰어올라 담장 위에서 나를 거만하게 내려다본다.

결론적으로  나무 데크 부분에 유리 새시를 하고 방충망을 했다. 답답할까 조금 염려되었는데 유리라서 괜찮다. 겨울에 화분을 들여놓을 구실로도 충분한 공간이 생겼다. (갑자기 유리 새시를 해서 통장 잔고가 마이너스다. ) 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냥이들은 잔디를 말끔히 깎으면 와서 버젓이 마크를 남기고 갔다.

숙근버베나(왼쪽) 바늘꽃(오른쪽)



그런데 냥이들이 실례를 남기지 않은 지 벌써 며칠이다. 하던 것을 하지 않으니 그것도 느낌이 이상하다. 어느 사이 나도 치우는 게 적응이 되었나 보다.



엊그제 강원도 정선에서 젊은 나이에(나보다 젊으면 다 젊은이다) 홀로 사는 처자가 하는 유튜브를 보았다. 아직 보지 않으신 분이라면 아름답고 용기 있는 그녀의 삶에 박수를 보내고 싶을 것이며, 부러움에 몸을 떨지도 모른다. 내가 바로 그런 느낌을 받았다.


https://youtu.be/P-U_vePEwVQ (동영상 주소인데 재생이 바로 되지 않아 아쉽다.  ‘도화 김소영’을 검색하면 바로 나올 것 같다.)


여기서 유독 나의 눈을 끈 것은 일인용 고기 불판이었다. 그래서 폭풍 검색해서 바로 주문했다. 오늘 도착했다. 혼자 캠핑을 해 본 적 없는 나는 '그리 젊은 처자가 하는데 내가 못할 이유 없지'라는 심정으로 유리 온실 쪽에 이것저것 옮겼다. 공간을 완성한 후 내내 원하던 바를 이행하게 되었다.


바로 캠핑 기분으로 삼겹살 구워 먹기다.


그런데 고기 구워 먹는 일이 생각보다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인식했다. 우선 숱에 불을 붙이기 위해 긴 불 붙이는 라이터, 가위, 고기 집게, 숯, 숯불 집게, 불판, 종이타월, 등등.  필요한 것들이 어찌 많은지 점점 후회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그래도 아이패드로 음악도 틀었다가 듣고 싶은 것으로 분위기를 만든다. 내가 좋아하는 ‘오느른’ 최별 피디가 나오는 방송이다.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퇴근 후라서 배가 고파 죽겠는 것이다. 그래서 먼저 국수 컵라면을 먹었다. 다이어트 용이라고 알려줘서 샀더니만 맛은 있는데 용량이 너무 적다.

봉 커튼으로 조절했던 한쪽 면을 풀어서 내리면 길가에서 잘 보이지 않는 공간이 된다. 하늘은 보이고 앞은 일부가 가려진다.

숯을 불판 사는 곳에서 샀는데 신기하게도 불을 붙이자마자 활활 타오른다. 그런데 초기에 냄새가 나서 실내에서는 절대 하면 안 될 것 같다. 다행히도 방충망을 통해 바람이 불어 환기는 잘 된다.(점점 이게 무슨 고생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도 잘 익어간다. 그런데 갑자기 생각이 났다. 고기 구울 생각만 했지 부산물을 준비하지 않았다. 부랴 부랴 소금이라도 뿌린다.


배고프니까 맛있다. 캠핑 의자에 앉아 음악을 들으면서 잠시 초가을 바람을 느껴본다.

외부에서 보면 이런 모습이다. 오른쪽이 유리창 방충망 새시를 한 곳이다.


익은 것 몇 조각 먹은 후, 다시 고기를 올리려니 그 사이 불이 사그라들었다. 어이없다. 역시 댓글에 올려진 말이 딱 맞다. 숯이 불을 붙이면 초기에 냄새나고, 몇 점 구우면 불이 사그라든다고 댓글에 있었다. 유튜브에 현혹되어 샀더니 이게 뭐란 말인가. 다음에는 다른 숯을 이용해 봐야겠다. (도화 김소영 님의 유튜브에서 불판을 광고한 것은 절대 아니다. 그냥 맛있게 식사하는 모습만 나왔다.)


아무튼 6시 반경부터 왔다 갔다 하다가 몇 점 먹으니 8시 30분이 넘었다. 이제 치우기를 하고 얼른 아파트로 가야 한다. 문제는 숯이 달궈진 강도가 약할 뿐이지 아직도 불기가 있다. 에라 모르겠다. 수돗가로 불판을 이동시켰다. 물을 끼얹은 후 커다란 양철통에 담아 놓았다. 숯은 거의 꺼진 듯하다. 게다가 별일 없도록 조치를 취했다.


아, 정말 삼겹살 야외에서 구워 먹기 힘들다. 다음번에는 연구해서 좀 수월하게 맛있게 해 봐야겠다.



결국 아파트에 와서 좀 더 프라이팬에 굽고, 시어머님 표 마늘장, 나의 텃밭에서 딴 고추, 그리고 맛있는 된장 양념에 다시 맛있게 먹었다. 밤 9시 30분이다.

여기에 가장 중요한 맥주가 작은 캔 하나밖에 없어서 아껴마시는 이 심정을 누가 알까 싶다.




입추를 무시할 수 없다. 이제 아침저녁으로 조금 바람이 시원하다. 시원하다는 표현을 하니 아직 여름이다. 매미는 마지막 남은 청춘을 있는 힘껏 쏟아내는 중이다. 짧은 생에 인연을 만나려나.



오늘도 냥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어데서 잘 살고 있으려나 걱정 반, 시원 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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