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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씨Luce Oct 21. 2020

무거움과 가벼움 사이

'삶과 죽음'을 논하는  20대 딸에게, 50대 엄마가

나의 딸 SOOP에게,

 

너의 독후감 에세이 '어빈 얄롬의 삶과 죽음 사이에 서서'를 읽고 답장을 쓴다. 어릴 때부터 글을 잘 쓰더니, 역시 여전히 잘 쓰는구나.


그런데, 숲아.

엄마가 되면 너는 알게 될 거야.

어떤 순간 마음을 철렁하게 하는 부분이 있어. 언니도 너도. 어릴 때부터 '삶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라는 질문을 놓고 고심했던 너였기 때문에 이번 독후감이 나에게 다소 무게를 지니게 느껴진 것 같아. 이제 자랐으니 그럭저럭 덜 섬세하게 세상을 살아간다면 좀 편할 텐데, 엄마 딸들은 엄마의 감성을 물려받았는지 참으로 힘들게 사는 건 아닐까 싶어서 속상하기도 해. 언니는 늘 엄마에게 말을 걸어서 SOS를 하기 때문에 그래도 조금 해결되기도 하지. 넌 말을 하지 않고 속으로 생각하고 혼자 결론짓고, 그렇기 때문에 네가 진짜 무슨 생각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잘 모를 때가 많아.


둘 다 젊은 나이에 인생에 대해서 생각이 너무 깊어. 엄마도 20대에 세상 고민 다 내가 떠안은 사람처럼 울고 웃은 날들이 있었지. 비를 맞으면서 하루 종일 울기도 했어. 지나고 생각하면 무엇 때문에 그랬는지 그때 그렇게 소중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다 별것도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엄마는 심각한 상태로 지속적으로 '삶과 죽음'을 생각하지는 않았어. 인생의 무거움을 논하기에는 엄마는 다른 생각 할 일들이 늘 있었어. 어린 시절에는 집안에 식구도 많아서 먹을 것 가지고 다투기도 하고, 시골에서 들로 산으로 돌아다니고, 초등학교 이후로는 로맨스 소설과 친구들이 있었지.


엄마가 좀 철이 늦게 들어서 너같이 인생을 깊게 생각해 보지 못했던 것 같아. 게다가 2월에 대학을 졸업하고 3월에 취직해서 오늘까지 같은 직장에 다니기 때문에 이것저것 생각할 공백이 정말 적었어. 그래, 엄마는 엄마의 삶을 행복하게 해 주는 '가족과 친구 그리고 엄마의 직업과 개인적인 작업들'이 있었지. 무엇보다 루틴이 있어왔어. 대학 졸업 후 딱 한 달 집에 있었는데 정말 힘들더구나. 코로나로 인해 취업이 더욱 힘든 상황에서 졸업을 하니 너의 답답함도 이해가 간다. 아무리 혼자 노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너무 많은 시간을 지내면 힘들어져. 사고가 깊다가 그 늪에 빠지게 될 수 있어. 엄마가 염려하는 부분이 그거야.


반복이 싫은데 반복적인 일과가 오히려 삶에 활력을 준다는 것이 아이러니지. 김영하 씨의 '책 읽는 시간 팟캐스트'에 소개되었던 내용인데, 어떤 작가분은 자기 집에서도 아침 일과가 시작되면 옷을 잘 차려입고 서재로 간대. 그렇게 몇 시간 글을 쓰고 또 운동을 하는 등 자신의 일과를 어느 정도 루틴을 만든다고 해. 그 이야기가 참 귀에 솔깃하게 들리더라.


엄마도 중년기를 겪을 때 몸이 많이 아픈 적이 있는데, 그때부터 '죽으면 어떻게 될까'를 생각했어. 그러다가 급기야 너도 알다시피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잖아. 엄마는 요즘 글을 쓰면서 할아버지 생각이 많이 나서 울기도 했어. 그러다가 할아버지는 내 마음에 다시 살아났어. 또 '삶과 죽음'을 떠 올리게 되었지.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한 달 전에 그러셨어. "즐겁게 살아라. 인생이 부질없다. 짧지만 행복하게 하고 싶은 것 하고 살아라."


문학 비평 공부를 할 때 나온 단어가 있어. 리비도와 타나토스. 프로이트가 처음 내놓은 개념이지만 융과 라캉이 발달시킨 용어지. 리비도는 프로이트가 성 에너지라고 했는데 융은 '생명의 에너지'라고 논했지. 즐겁고 행복하고 만족스럽고 기쁘고 등등 삶이 충만할 때 사람들은 리비도 쪽으로 기울게 된다고 해.


반면, 타나토스는 죽음, 좌절, 공포, 분노 등 부정적인 단어들과 함께 사용되는 용어야.  네 말처럼 인간은 태어나고 살다가 죽어. 죽음에 대해 잊고 살지는 않지. 그냥 무거운 삶의 어깨에서 잠시 내려놓을 뿐이지. 작가 김영하 씨는 여름철 피서지에 가져가는 책 중에 ‘죽음’에 관한 책을 들고 간단다. 환상적인 그곳에서 내가 살면서 누리는 것들을 바라보는 재미가 솔솔 하다고. '내가 지금 여기 살아 있어서 누리는 것들을 보는 것, 느끼는 것'이 없어질 것에 대해 두려워하는 것보다 부등호가 커졌으면 좋겠어.

    

네가 '내 삶이 행복한데 언제 이것이 사라질까 두렵고, 내가 죽으면 '나'라는 정체성이 없어지기에 설사 불교의 윤회설로 다시 태어난들, 설사 그걸 믿는다고 해도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를 생각해 보는 것 무척 공감해. 죽음을 생각하면, 그로 인해 나의 현재의 삶에 더 큰 의미부여가 된다는 너의 글이 인상적이기도 해.


엄마는 그런데,

무한 상상력을 삶의 에너지로 끌어올리기 바란다. '오늘 내가 일어나서 무엇을 먹을까, 오늘은 어떤 재미난 일을 만들어 볼까', 하고 궁리하는 빨간 머리 앤이 더욱 끌린다. 그러니까 엄마 마음 떨리는 '죽음 논쟁'은 이쯤 하고, 내일은 운동이나 어떤 학원이나 한번 알아보면 어떨지 생각한다. 새벽에 일어나서 누워서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는 그 문장이 엄마에게는 심장 떨리는 소리란다. 나의 소중한 20대 딸이 그런 생각을 하기에는 인생이 너무 아깝다.


사랑하는 딸아. 엄마랑 프로젝트나 같이 해 보자. 뭐든 하다 보면, 아니면 관두면 되는 거지. 시도는 해 보고 살아야지. 인생 뭐 있겠니. 그냥 해 보는 거지 뭐. 어차피 너는 후일 글을 쓰는 직업을 가질 것 아닌지. 어느 쪽으로 희망하는지 말을 안 하니 알 수가 없지만 네가 글을 잘 쓰고 말하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 하는 말이야. 어떤 글이든 '쓰다 보면' 아이디어가 나올 거라고 생각해. 브런치 작가 신청이나 먼저 해 보던지. 아니면 엄마가 주는 주제로 글을 써보렴. 아니면 엄마가 '너의 어릴 적 일기'로 글 쓸 거다.


추신:

너도 알지?

엄마가 제일 원하는 것은 네가 '삶의 에너지'를 듬뿍 가지고 웃고, 예쁜 옷 입고 나가는 것이란다.

우리 둘 파이팅!!! 꽉 허그!!! 사랑한다. 이걸 명심해.

               


                그림 이미지

제주도 여행에서 비를 피해 들어간 바닷가 어느 카페의 유리창에 붙은 빨간 머리 앤의 글귀이다.

"아침은 어떤 아침이든 즐겁죠.
오늘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생각하고 기대하는 상상의 여지가 충분히 있거든요."

쥔장분의 예쁜 글씨체와 더불어 빗방울이 톡톡 방울진 창문이 눈에 띄어 사진을 찍었다.


후기글:

글을 쓴 지 시간이 꽤 흘렀지만(12.14.) 여전히, 아니 코로나는 더욱 극심해지고 있습니다. 마지막 기승을 부리듯이 말입니다. 글을 써 보자 청했지만 역시 거절당한 저는 혼자서 오늘도 글을 쓰고 있습니다. 서울의 자기 방에 콕 박혀서 공부를 하고 있는 둘째 딸아이를 생각하면 안쓰럽기만 합니다. 어서 이 암울한 시기가 걷히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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