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라이트의 의미
엄마도 너의 마지막 문장에 무척 공감한다. 어떤 사람에게 내 인생을 온전히 맡기는 행동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 개츠비는 자신이 쫓았던 데이지 집의 처마에 매달린 초록 불빛(Green Light)처럼 잡을 수 없는 허황된 것을 향해 나아가고 결국 안타까운 삶을 마감하게 된 것이다. 한 사람이 살아가는 이유가 오로지 다른 이의 인생에만 의존하게 된다면, 결국 낭패를 볼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왜냐하면 인간은 완벽하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지속적으로 얻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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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에서 개츠비가 위대한 이유는 닉이 언급했듯이 단지 물질만을 추구하지 않고 사랑하는 여인의 행복한 삶을 위해 최선을 다했기 때문인 듯하다. 그런데 과연 '데이지의 행복한 삶' 만을 위해서 자신의 삶을 바쳤을지 의문이다. 개츠비는 하류계급이었다. 신분 상승을 위한 사다리로 데이지를 선택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개츠비를 순수하다고만 할 수는 없다. 1920년대 물질만능이 되어 타락한 미국 사회를 대표하는 개츠비를 위대하게 만들기 위한 노력은 소설 곳곳에서 보인다. 중간자이자 사회의 이방인으로서 닉의 눈에 비친 개츠비, 독자는 닉의 시선에 의존해서 개츠비를 평가하게 된다. 어쩌면 닉 자신이 개츠비에 대해서 연민을 느꼈을 것 같다.
미국의 급진적 경제 성장기에 닉이라는 인물은 이방인이다. 닉의 존재에 대해서 '안에 있어도 밖에 있는 것 같고, 밖에 있어도 안에 있는 것 같다'는 표현이 나온다. 닉의 시선으로 본 개츠비는 데이지가 그토록 좋아했던 하얀색처럼 순수한 듯하다. 그러나 사실 데이지는 허영으로 물든 기득권이다. 자신의 상류계급을 절대 버리지 않을 사람이다. 개츠비의 불법과 데이지의 허영, 톰의 허세와 야만성은 그 당시 시대를 반영하고 있는 듯 보인다. 겉표지만 그럴듯한 서재의 내용이 빈 책들과 마치 한 번도 입지 않은 무지개 같은 온갖 색깔의 셔츠들처럼, 개츠비의 인생은 알맹이 없는 빈 껍질로 점철된 삶이다.
데이지의 처마의 초록 불빛을 향해 손을 뻗던 개츠비의 모습은 그러한 '허황된 무지개'를 향해 손을 뻗는 것과 비슷하다. 무지개는 아름답게 피어나 바라보기만 해도 황홀하고, 그 무지개를 쫓는 동안 위안과 행복감을 준다. 하지만 데이지와 가까워지는 바로 그 순간 자신이 그토록 바라던 초록 불빛을 상실한다. 결국 개츠비에게 남은 것은 참담한 현실이다. 그러나 개츠비는 그 현실을 부인하며, 오지 않을 전화를 기다리다 죽는다.
일기를 하루만 밀려도 큰일 나는 것으로 생각해서 아파도 일기를 쓰는 딸. 1시간 수업받기 위해 2시간 공부해 가는 것을 보면 안쓰럽다. 학원을 가는 대신 영화를 보고 엄마에게 소감을 써서 메일로 보내라고 하니, 착실히 했더구나.
해석법에 따라 무지개라는 단어도 달리 느껴진다. 무지개가 사라질까 염려하거나 무지개를 쫓으려 하기보다는, 피어난 무지개를 즐기는 마음이 되어 본다면 좋겠다.
엄마 생각에 빛나는 미래라는 것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미래'를 의미하는 것 같다. 영화 "위대한 개츠비"는 소설과는 또 다른 흥미를 느끼게 했지만, 소설이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생각하며 엄마 딸이 소설을 읽는 재미를 느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