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씨Luce Oct 28. 2020

위대한 개츠비(영화)

화려함과 허무함

고등학교 2학년의 영화 소감/ 화려함과 허무함


엄마께서 항상  ‘위대한 개츠비’에 대해 말씀하셔서, 영화화된다면 꼭 보고 싶었다. 마침 영화로 나와서 우리 가족은 오랜만에 영화관에 갔다. 이름만 들어서는 좀 어려운 내용인 줄 알았는데, 보고 나니까 어렵기보다는 재미있었다.                     


영화로 봐서 인상 깊었던 점은 웅장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파티가 열려서 사람들이 즐기는 장면에서는 사람들이 입고 있던 알록달록한 옷들이 그 당시 사람들의 패션을 알려주었다. 남자들의 빗어 넘긴 머리와 보타이, 여자들의 털 달린 드레스, 짧은 머리와 종 모양 모자(클로슈) 등이 그것이다. 다양한 색깔의 옷들과 역동적인 춤 그리고 시끌벅적한 사람들의 모습은 영화를 보는 관객마저 신나게 만들었다. 이 영화는 사실 192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영화 중반에 트럼펫으로 재즈를 연주하는 모습이 영화의 분위기를 주도한다. 그러나 현대에 맞게 각색하다 보니 배경음악도 현대 팝송을 편곡한 것을 알 수 있었고, 의상도 지금 봐도 전혀 촌스럽지 않도록 그 시대 특성을 살리되 세련미를 함께 갖추도록 다시 제작한 것 같았다. 1920년대는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많은 미국인들이 소위 말하는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는 시대였다. 일부 미국인들은 불법으로 돈을 많이 벌고 사치스럽게 생활하거나 향락을 즐겼는데, 이것이 고스란히 영화에 담겨 있다.      

               

(개츠비 집에서의 화려한 파티 장면)

개츠비 영화 소개 영상 링크

https://tv.kakao.com/v/vc36fkq4a4kXAX4JBAXoa9k@

내용을 요약해 본다.

주인공 닉 캐러웨이는 개츠비의 옆집에 사는 사람으로 개츠비에게 유일하게 파티 초대장을 받는 사람이다. 닉은 파티에서 개츠비를 찾기 위해 사람들에게 물어보지만 아무도 개츠비에 대해 정확히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다가 그는 골프선수 조던과 만나게 되고 개츠비를 발견한다. 닉은 개츠비를 찾고 조던에게 그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개츠비가 화려한 파티를 연 이유는 전에 사랑했던 연인인 데이지를 만나기 위해서였고 일부러 데이지의 집 건너편에 살았던 것이다. 닉은 데이지와 사촌지간이었기 때문에 데이지가 유부녀인 것을 알고 나서 개츠비를 만나게 해주는 것에 대해 갈등하지만 곧 데이지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한다. 개츠비는 데이지와 만나서 긴장을 하지만 곧 둘은 옛 감정을 되찾는다. 마침 데이지의 남편 톰도 정비공의 아내와 바람을 피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개츠비는 엄청난 낭만주의자이다. 또 이상주의자이기도 하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 데이지가 오직 자신만 봐주기를 바라고 데이지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완벽해야 하고 뭐든지 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개츠비는 데이지에게 '한 번도 사랑한 적 없다'라고 남편에게 말하고, 톰을 떠날 것을 권한다. 그러나 데이지는 톰을 사랑한 적도 있기 때문에, 톰에게 상처를 주기가 미안하다. 마침 톰은 개츠비가 주류 밀매를 해서 부자가 되었다는 말을 한다. 낭만적 이상주의자인 개츠비에게 그런 것은 사랑에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데이지가 자신을 응원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 데이지는 혼란스러워한다. 데이지가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데이지와 개츠비는 다시 집으로 향한다. 그런 도중 정비공의 아내 머틀이 남편과 싸우고 나와 개츠비의 차를 보고 톰이 운전하는 줄 알고 차에 달려든다. 그러나 그 차는 개츠비의 차였고 그들은 머틀이 죽었지만 멈추지 않고 달린다. 나중에 톰은 머틀이 죽은 것을 알고, 머틀의 남편 윌슨에게 개츠비의 차였다고 말한다. 닉은 개츠비에게 가서 화를 내지만 사실 그 차를 운전했던 사람이 데이지였던 것을 알고 놀란다. 개츠비는 데이지가 잠시 혼란스러워서 그런 거라고 내일 아침에 연락을 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데이지는 톰과 여행을 가 버리고 전화를 기다리던 개츠비는 윌슨의 총에 맞아 죽는다. 마지막에 개츠비의 집에서 장례식을 치른다. 이때, 닉 말고는 아무도 오는 사람이 없었다.    

처음 개츠비가 화면에 나왔을 때, 그 미소를 잊을 수 없다. 다정한 듯 보이면서도 어딘가 계획된 눈빛과 미소가 옆에 있던 다른 사람들과 그를 구분해 주었다. 그런 개츠비는 알고 보니 지나친 낭만적 이상주의자였다. 데이지의 심정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갔다. 개츠비가 아무리 자신을 좋아해 준다고 하지만 무서울 정도로 다른 사람을 해치면서까지 자신을 위해주는 사람은 거부감이 들 것이다. 데이지는 너무 무책임하다. 뺑소니 사고를 낸 것은 자기였는데, 혐의가 개츠비에게 돌아갔음을 알고서도 장례식에 오지도 않고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자기가 행복하면 그게 끝이라는 데이지의 생각이 개츠비를 더 불쌍하게 만들었다. 개츠비는 데이지만을 위해 자수성가하고 파티를 열고 온갖 노력을 다했는데, 그렇게 떠나버리니 얼마나 허전했을까?


물론 자신의 삶을 그렇게 한 사람만을 위해 바치는 것은 좋은 것은 아니다. 그렇게 살다 보면 많은 것들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츠비가 사랑하는 한 사람을 위해 5년 동안 그가 한 노력을 생각하면 대단하다고 생각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장례식에 아무도 참석하지 않은 것을 보고 참 허무하다고 느꼈다. 파티할 때에는 정치계의 유명인사들, 영화배우 등 각기 다른 계층의 사람들이 다 놀러 왔는데, 그 많은 사람들 중 단 한 명도 개츠비의 집에 놀러 오지 않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정이 없고 목적적이라는 것을 알았다.


개츠비는 한 사람을 위해 바치는 인생이 값지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그의 인생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해하기에 너무 허무한 결말이었고 이건 애초부터 도박이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인생을 한 사람에게 바친다면 그 말은 즉 자신의 인생이 그 한 사람의 결정에 달려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The Great Gatsby(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