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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씨Luce Sep 03. 2021

내변산에서 내소사로

차선책이 최선책이 되는 수

인생은 언제나 새로운 변수로 가득 차 있다. 가을이 다가오자 남자 친구가 없어 더 쓸쓸하다고 고민하던 젊은 친구에게 다음 날 멋진 남자 친구가 생긴다. 중년의 나이, 갑자기 남편이 멀리 발령이 났다. 울상 짓는 남편과 달리 주말 부부가 되어 자유시간이 생겨 행복하다는 친구가 있다. 20대에 도시 생활을 접고 시골 부모님의 찐빵집에 찐빵 카페를 차려 대박이 난다. 이렇게 원하는 일들이 변수가 된다면 좋겠다. 하지만 인생은 원하지 않는 일들이 일어날 경우의 수가 허다하다. 변수가 기회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변산에서 내소사로


때는 7월 중순 경이었다. 내소사 주차장에 차를 주차한 후, 재를 넘어 내변산으로 내려온 이야기의 후속 편이다.


배는 고프지만 대숲이 아름다워 사진을 열심히 찍고 기분 좋게 내려왔다. 내변산 아래의 주차장을 보니 가게라고는 딱 한 군데 있다. 사장님께 여쭈어보니 차편이 없단다. 택시가 6만 원 정도 된단다. 필요하면 택시를 불러주겠다고 하셨다.

위 사진에서 이제 현 위치는 내변산 주차장인 것이다. 세상에나 택시비가 그리 비싸다니 어이가 없다. 그렇다고 다시 산을 넘어갈 수도 없다. 저기 보이는 버스 승강장은 뭐냐고 여쭈었더니, 오늘 내소사 차편은 없다고 하신다. 우선 목마르고 고픈 배를 달랠 요량으로 맥주를 한 캔씩 벌컥벌컥 들이켰다. 어느새 오후 2시가 넘었다. 택시는 아무 때고 부르면 될 터이니(돈은 무지하게 아깝겠지만) 마음 놓고 막걸리와 동동주를 주문했다.


보기 드문 조껍데기 막걸리 한잔과 파전을 떼어 입에 막 넣는 순간이었다. 저만치 주차장에 버스가 들어오는 것이다. 그래서 달려가서 물어보니 내소사에 갈 수 있다고 한다. 이 순간 가게 사장님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그곳에서 계속 계시는 분이시니 내 입장에서는 당연한 의심이었다.) 음식을 싸 줄 수도 있다고 태연히 말씀하신다. 맛은 있었지만 음미할 여유가 없었다.


이런 것을 '머리가 안 좋으면 몸이 고생한다'라고 하나보다. 아니 '낚였다'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우리 아이들 같으면 벌써 앱으로 또는 인터넷으로 버스 시간 등등을 알아봤을 거다. 믿었던 가게 사장님으로부터 발등 찍힌 격이다. 음식을 시킨 것이 이렇게 억울할 수가 없다. 막걸리 오천 냥. 파전 만 오천 냥. 음식이 코에 들어가는지 입에 들어가는지 모른 채 허겁지겁 버스가 잠시 정차하는 틈에 먹어치웠다.

 

정신없이 마무리하고, 겨우 한잔 마시고 남은 조껍데기 막걸리는 배낭에 넣었다. '갈아타야 하니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라는 가게 사장님께서 뒤늦게 하신 말씀을 뒤로 한채 버스에 올랐다.

2013년도에 호주에서 버스를 타 본 후, 처음 버스를 타 보았다. 우리나라에서 버스 타 본 것은 거의 20여 년 넘은 듯하다. 오랜만에 버스를 타니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하게 느껴졌다. (직장과 집이 가깝기 때문에 자가용 아니면 도보를 이용해 왔기 때문이다.)

손님이 거의 없어서 안타까웠다

버스를 타고 가다가 환승을 해야 한단다. 버스비는 다시 지불해야 하는 환승이다. 그래도 버스 두 번이면 내소사 주차장에 간다니 6만 원을 생각하면 감사할 따름이었다. 환승을 해야 하는 지점에 내리니 마트가 하나 있다.

들어가서 하드 두 개와 오징어 땅콩과자를 사들고 나왔다. 그곳에 서서 가만 보니까 버스 승강장은 저 쪽 아래에 있는 것이다.


버스를 놓칠세라 부랴부랴 아래로 내려갔다. 정류장 바로 앞에 만물상 가게에는 할머님 한 분만 덩그러니 앉아계셨다. 여쭤보니 버스가 오려면 30분은 더 기다려야 한다. 더우니까 들어와 앉아서 선풍기라도 쐬라면서 의자를 권하신다. 가게를 둘러보니 정말 모든 것을 다 파는 것 같다. 그런데 음료나 아이스크림 같은 것은 없다. 내 것을 드렸다.


사람이 없어~ 우리도 한때는 음료수랑 아이스크림도 팔았지.
지금은 사람이 없다니까

자꾸 사양하시더니 하드를 맛있게 드신다. 이제 조껍데기 막걸리를 꺼냈다. 할머님도 한잔 하시라고 권하자 사양하시더니만 "조껍데기네?" 하시면서 한잔 드신단다. 오징어 땅콩 과자 봉지를 꺼내서 할머님 그릇에 따라드리고 안주 삼아 드시라고 했더니 웃으신다.

할머님과 나

할머님의 아드님은 서울에, 따님은 외국에 있단다. 따님이 놀러 오라는데 코로나 때문에 못 가신단다. 버스 올 시간이 다 되어 남은 술은 할아버님 들어오시면 드시라고 드렸다. (술병이 큰 것이었다.)


할머님께서는 버스 타는 것을 보시면서 가게에 서서 손을 흔드셨다.


차창밖을 보니 부안 쌀이 유명한 이유를 알겠다. 너른 논의 벼가 익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꼬불꼬불 비탈길도 갔다가 평지도 갔다가 이곳저곳 부안을 구경 중이다.

염전도 나왔다.


알고 보니 여러 군데 들려서 줄포 터미널에 차가 다시 정차했다. 그리고 나서야 비로소 내소사 주차장에 도착했다. 도착하고 보니 어느 사이 하루가 거의 가고 있었다.


그러나 <여행의 이유>에서 김영하 작가가 말했듯이 순조로운 여행은 기억에 그다지 남지 않는 법, 평생 기억에 남을 긴 긴 하루였다.



다시 도전하는 직소폭포


바로 지난주(2021.8.28.) 토요일의 드라이브다. 말하자면 한 달 뒤에 다시 내변산에 방문한 것이다.


일전에 가까이에서 보지 못했던 직소폭포가 궁금했다. 마침 며칠간 비가 왔으니 분명히 물이 불어났을 것이었다. 일주일간 내리던 비가 그치고 하늘이 개였다. 곧 곡식이 무르익을 기세다.


중계교라는 다리에서 바라본 댐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상수원이라고 한다.


생명의 전화가 쓰여 있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번지 점프할 만큼 높이가 있고, 물이 깊어 보인다. 살자, 살아야지. 이런 생명의 전화가 삶을 마감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제발 도움이 되기를 기도한다.


내변산 주차장에서 직소폭포를 향하면 곧 만나게 되는 곳이 대숲이다.



다시 찾은 대숲은 제법 익숙한 길이 되었다. 단 두 번 왔을 뿐인데 인간의 적응력은 빠르다.


지난번에 배가 고팠지만 그럼에도 너무 아름다워 이곳에 서서 한참을 바라보았던 바로 그 장소다. 계곡을 따라 위로부터 내려온 나뭇가지나 잎들로 인해 물이 맑지 않다. 조금 실망했다.



직소폭포


그러나 오늘의 목적지는 직소폭포다. 아래로 내려가 보기로 한다. 말이 필요가 없는 곳이었다. 내 인생 최고의 폭포수 경험이다. 가장 큰 이유는 비 온 후라 물이 충분하며, 주변에 사람이 어쩌다 한두 명 오고, 날씨가 청명하다. 바위에 앉아 한참 물소리를 들었다.


오늘은 조금 제정신인 상태라 그런지 산 머리에 있는 바위가 자꾸 눈에 띈다. 특이하고 예쁘다. 알고 보니 유명하다. 등산 코스 중에 들르는 곳이라고 한다. 바로 '쇠뿔바위'다. 아래에 관련 기사를 링크했다. 나는 도저히 오를 수 없을 듯하지만 언젠가 한번 '도전'해 볼까 하는 마음이 인다.



자그만 암자와 함께 실상 사지(실상사 터)가 사진의 왼쪽 산 앞에 있다. 실상 사지 옆에 돋아나고 있는 새싹들을 들여다보니 메밀이다. 메밀꽃 필 무렵에 다시 와 봐야겠다. 메밀꽃이 가득한 아름다운 들판이 벌써부터 눈에 밟힌다.



인생의 차선책이 최선책이 되는 수


요즘 '살어리랏다'라는 다큐 프로그램을 즐겨 보는데, 부안의 '슬지네 제빵소'가 방송되었다. 오늘은 마음 편안하게 차로 드라이브를 해 본다. 내변산에서 내소사 방향으로 가야 한다. 내소사로 가려면 우회전 슬지네 빵집은 직진이다.


너무너무 밀려서 줄이 한참이다. 손님인 두 분에게 빵이 어찌 생겼는지 물으니 보여주셔서 사진만 찍었다. 먹고 싶다. 그러나 줄을 저렇게 오래 서 있어야 한다니 사양하고 차에 오른다.

입맛만 다시고 돌아오는 길에 우리밀 오디 빵집이 있어 들어갔다. 21개에 만원이라고 했다. 커피 4천 원. 빵의 맛은 호두과자(호두빵)와 비슷한 정도다.

납작한 형태에 크기가 지름 2.2센티 정도로 정말 작다. 동글동글 풀빵 작은 것들 사이즈다. 차라리 풀빵이 더 맛있을 듯하다. '상심 당'했다. 그 가격이 합리적인지 자꾸 아쉬움이 밀려온다. 그래도 우리밀과 오디로 만들었다니 그걸로 병아리 눈물만큼의 위안을 삼는다. 순전히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한번 더 오고 싶지는 않다. 얼른 전주 가서 콩나물 국밥이나 먹어야겠다.



인생 변수


요즘 이렇게 산골이나 야외에 제빵소가 늘고 있다.


나도 은퇴 후, 딸들과 시골 농막 땅에 제빵소나 차려볼까. '제빵소나'라는 말은 아무나 한다는 말은 아니다. 인적 물적 자원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다. 둘째 딸에게 다큐를 링크해서 보냈다.


내년 1학기까지만 공부해 보고, 안되면 내려와서 커피숍과 빵집 하자.
응? 아니, 내 말은 인생에 차선책이 있고 엄마가 함께 해 보고 싶다는 거야.
엄마 공방에서 하든지 시골 농막 옆에 제빵소를 짓던지.


딸이 '응'이라고 웃으며 대답한다. 둘째 딸은 빵집 아르바이트를 2년 정도 했다. 빵집 사장님은 꽤 까다로운 편이셨지만 둘째를 엄청 신뢰하셨다고 한다.


나는 평생을 먹고, 입고, 자는 것을 가르쳤다. '빵'은 나에게 낯선 단어가 아니다.


빵집은 '아무나' 하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먹으면 못 할 바도 아니란 생각이 드는 분야다. 그렇지만 둘째 딸이 서울이든 어디든 자기가 정말 하고 싶은 직업을 갖는 것이 나의 최고의 바람이다. 무엇을 하든 나 역시 재미있는 삶을 살고 싶다.


내 앞길에 놓인 변수가 위기가 아닌 기회가 되도록 노력한다.




https://brunch.co.kr/brunchbook/be-happy


https://brunch.co.kr/brunchbook/memories-of

https://brunch.co.kr/brunchbook/madang

https://brunch.co.kr/brunchbook/house-n-garden


변산반도 국립공원에 대하여


변산반도 국립공원은 내변산과 외변산으로 나누는데 산이 많은 내변산에는 천년고찰 내소사, 직소폭포, 월명암, 개암사 등 수려한 산과 계곡이 어우러진 자연경관과 문화자원이 많다.  바다가 있는 해안 쪽 외변산은 채석강, 적벽강, 변산해수욕장, 격포 해수욕장 등 해식애와 해수욕장이 어우러진 비경을 간직하고 있어서 산이면 산, 바다면 바다 어느 곳 하나 놓칠 수 없는 수려한 경관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국립공원이다.


(전북일보 기사 내용 중 일부 발췌. 아래 기사 링크)


http://www.jjan.kr/news/articleView.html?idxno=2088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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