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엄마,아부지
'산다는 건 선물 같은 것' , 친필 사인과 더불어 이강순 작가(브런치@leegang 작가)의 책이 배달되었다. 가을비가 촉촉이 내려 나의 독서에 힘을 보탰다. 가독성이 좋으며 마음이 훈훈해지는 이야기들이다. 사진과 얽힌 이야기를 전하는 점에서 내가 곁에 두고 늘 들춰보는 서태옥 작가(브런치 @마음씀 작가)의 <인생의 정오에서 세상을 바라보다>와 유사한 글의 짜임새다.
산다는 것이 선물이라 말하는 이 강순 작가, 그도 역시 고통과 번민을 자양분 삼아 오늘의 모습으로 성숙했음을 이해한다.
산다는 것은 선물 같은 것
'길을 찾을 수 없었다. 검은 수의로 덮인 하늘 어디에도 별 하나 보이지 않았고, 공중에는 산 목소리의 한 가닥 소망도 없는, 아무 불빛도 소리도 오지 않는 그런 나날들이었다. 그러나 그 속으로, 그 뒤로, 그 너머로 긴 세월의 먼 메시지가 있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로버트 프로스트 '나는 믿는다' 시 인용) (산다는 것은 선물 같은 것. 27).
처음부터 정상이 목표는 아니었다. 꾸준히 오르다 보니 정상에 도착했다. 삶도 그렇다. 무엇이 되기 위해 사는 게 아니라 잘 살다 보니 어떤 성취를 이루는 것뿐이다(산다는 것은 선물 같은 것. 29).
작가는 '나'를 잃지 않으려 한 발자국씩 꾹꾹 힘주어 걷는다. 그렇게 걷다 보니 삶은 그에게 선물로 다가온다.
옆집 동배네 키 큰 살구나무가 우리 집 마당 가득 긴 그림자를 드리우면 아버지는 노란 겨울 햇살을 등지고 여물을 들고 쇠 마구로 들어가셨다. 그 누구도 끼어들 수 없는 암소와의 끈끈한 교감이 이뤄지는 순간이다. 햇살도 감히 그 탄탄한 사랑에 끼어들지 못한다. 여물을 먹는 동안 아버지는 수유하는 엄마처럼 쇠잔등을 긁어주며 그윽한 눈빛으로 소와 이야기를 나눴다(산다는 것은 선물 같은 것. 13).
이 구절에서 나는 작가의 추억을 질투한다. 나의 아부지가 소여물을 주는 분이셨다면, 우리 집에 소 한 마리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철부지 같은 생각이 인다. 그러나 작가의 아버지는 더 이상 소에게 '수유'를 할 수 없게 된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팔려간 소와 엄마 잃은 송아지의 울음소리, 아버지의 무심한 눈빛 등은 '노을'이란 사진으로 귀결된다.
엄마가 없는 사진 한 장
마당을 가로지른 바지랑대 세워진 빨랫줄에는 속바지와 셔츠 하나 바람에 휘날린다. 햇볕이 강하게 내리쬐는 마당 한쪽에 토란대가 가지런히 널렸고, 그늘진 토방에는 벗기다 만 토란대와 막 벗겨나간 초록 빛깔 껍질이 쌓여있다. 토란대 껍질을 벗기던 엄마는 어디로 가고 빈자리만 덩그러니 있는 사진 한 장 (살구나무는 잘 있는지요. 103).
우리네 마당에는 대나무로 만들어 받혀 놓은 빨랫줄이 있었다. 그 빨랫줄에는 늘 한가득 빨래가 널려 집안에 식구의 많고 적음이 드러났다. 일거리 많은 농사꾼 집에 종일 일을 해도 모자란 것은 시간이었다. 아마도 작가의 어머니는 참다 참다 겨우 일어서서 화장실을 다녀오시지 않았을까 싶다. 작가가 오열한 '엄마가 없는 사진'은 그 당시엔 어머니가 생존하셨고, 이제는 부재하시기 때문이다.
장소의 기억
파릇한 비린내가 올라오던 내 나이 열일곱 되던, 엄마와의 독립이 시작되던 그 해 3월 경전선 진상역(살구나무는 잘 있는지요. 142).
"부럽구나. 공부하러 떠나는 네가(141)."라고 하시던 어머니와 반대로 집에서 탈출을 하게 되어 신이 난 작가의 기차역이다.
아무것도 인정해주지 않은 딸이었지만 기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 자리 붙박여 서서 안타까이 바라보던 엄마의 모습은 내 삶에 애틋한 풍경이 되었다. 엄마의 간절한 기도가 당신의 눈 속에 있었다(142).
전주 한옥마을에서는 고등학교 교복이나 한복 체험을 한다. 친구가 엄마와 한복체험을 할까 물으니 친구 엄마가 말씀하셨다. "못 입어 본 교복 체험을 하고 싶다."
아파트 입구 화단에 떨어져 나뒹구는 대추 한 알
포도가 익어가듯 대추가 익어가듯 나의 글도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익어 어느 날 누군가에게 느닷없이 깊은 울림을 줄 수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나는 눈물이 나도록 행복하겠다 (살구나무는 잘 있는지요. 258).
문학은 내게 무엇일까. 이러한 반문은 나 스스로에게 매일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잘 여물어서 맛있는 먹거리를 제공하는 열매처럼 위로가 되는 글을 쓰고자 하는 작가의 글에 마음이 일렁인다.
부추꽃
학생들과 학교 화단에 키웠던 부추는 아이들이 졸업한 후에도 매년 싹을 낸다. 부추는 잘라줄수록 튼튼하게 더욱 잘 자란다. 깜박 잊고 자르지 않았더니 꽃이 피어 있었다. 꽃이 열매를 맺는 이유는 종자를 널리 퍼뜨리기 위함이다. 이쯤 되면 부추 줄기는 쇠어버린다. 질겨진다는 말이다. 늘 싱싱한 잎을 유지하도록 누군가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 내 안의 싱싱함을 유지하기 위해 오늘도 나는 부지런을 떨어 <살구나무는 잘 있는지요>를 읽고 리뷰글을 남긴다. 잠시 행복한 시간을 갖게 해 주신 브런치 이웃 @leegang 작가님께 감사함을 전하고자 한다. 감사합니다.
작가님의 브런치 주소입니다.
https://brunch.co.kr/@leedaum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