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플 작업
내 몸이 여러 개라면 참 좋겠다.
내 몸은 하나인데 할 일은 많다. 그러니 도움을 받게 된다. 주변의 도움을 받으라고 몸이 하나인 것 같다.
'공간 모닝'은 명색이 자수와 그림을 가르칠 곳이니 샘플이 필요하다. 그런데 나는 체질적으로 그려진 대로 하는 것을 엄청 싫어한다. 그래서 똑같은 것을 두 개 이상 만들지 못한다. 물론 가르치는 것은 좋아한다. (내가 직접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샘플은 정석대로 하는 것이 좋다. 인내심이 강하며 솜씨 좋고 감각도 겸비한 친구가 샘플 작업을 돕기 위해 오늘도 들렸다.
샘플 작업
헬로 해피의 ‘처음 프랑스 자수(143페이지)'에서 바늘, 가위 집 수첩은 내가 작업했다. 헬로 해피 시리즈 책들은 귀여운 이미지가 많아서 좋다. 도안은 그냥 천에 직접 그려서 했으며 원본에 아주 충실하지는 않았다. 예를 들면 거미가 내려온다거나 무당벌레 한 마리를 넣는 것이 나의 방식이다.
색도 똑같지 않다. 내 마음대로 색 조합을 했기 때문이다. 나중에 가르칠 때는 책대로 해야 할 것 같다. 다른 공방 선생님 말씀이 수강생들은 그대로 하는 것을 편하게 생각한다고 한다.
아오키 카즈코의 '36가지 꽃 자수’ 도안은 친구에게 맡겼다. 아오키 카즈코는 일본의 자수 디자이너다. 그녀는 정원을 일구고 그림을 그리면서 이미 책도 여러 권 냈다. 일본과 우리나라의 정치적 기류가 어지럽기 전, 전주 '마린 하우스' 공방의 대표님께서 일본에 가서 들여온 천 샘플이다.
도안이 프린트되어 있어서 초보자들도 하기에 쉽다. 자수실의 번호까지 쓰여 있으며 실이 패키지에 들어 있기에 수월한 편이다. 아무리 도안이 있다지만 자수는 손끝의 미세한 터치에 따라 달라진다. 적절한 감각이 필요하다. 어떤 색을 어디에 놓느냐에 따라 느낌이 달라진다. 나의 조언과 친구의 야무진 손 느낌으로 친구가 첫 수를 놓았다. 차이브(chives)는 허브의 일종이다.
차이브는 파의 꽃 모양새와 유사하다. 줄기는 부추와 비슷한데 조금 동그란 대의 형태이다. 일 년 전에 차이브를 키워보려고 시도했다. 차이브는 햇볕과 배수가 중요한 것 같다. 심어서 요리에 사용해 보려는 야심 찬 마음으로 모종을 샀었다. 키우기도 쉽다던데 바로 장마가 와서 그만 녹아버렸다. 그래서 올 해는 심지 않았던 바로 실패의 추억이 있는 향신료다.
내년에 텃밭 쪽에 허브 종류를 심어 볼 계획이다. 차이브도 심어야겠다. 재 도전을 해 볼 가치가 있다. 꽃도 무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보라 꽃이 핀다고 한다.
나의 인형
나의 인형을 예전 공방 앞집 분에게 드리려고 챙겨두었다. 그런데 일손(!)을 도와준 친구가 예쁘다고 해서 "먼저 본 사람이 임자지 뭐" 하고 줬다.
물론 그분께 선물을 드린다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바로 이 '아이 업은 인형'을 봤을 때, 그분이 아주 사랑스러운 눈길을 계속하셨다. 그런데 친구도 너무 좋아하니 어쩔 수 없다.
아이를 업고 있는 모습은 나의 어린 날이다. 내 생각에 내가 언니 노릇 제대로 한 것은 초등학교 저학년까지인 것 같다. 아들(오빠), 딸(나), 딸(여동생), 딸(여동생), 아들(막둥이 남동생)로 구성된 우리 형제자매는 처음과 끝이 아들이다. 결국 아들 낳고자 내리 딸 셋을 낳은 셈이었다. 우리 딸들은 덤인 인생이랄까. 오늘날에는 물론 딸이 귀하고 극진한 대접을 받는다. 딸 낳기 어렵다고 한숨짓는 소리를 곧잘 듣게 된다.
어릴 때, 나는 별명이 '부엉이'와 '대추씨'였다. 눈이 크고, 야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눈은 어릴 때보다는 작아졌고, 지금까지 살면서 야무지다는 말을 듣기는 어릴 때뿐이었다. 직장에서 내 별명은 '어리 양'이었다. 어리바리하며 자유로운 영혼이란 의미다. 사실 책임감은 강하게 살아왔지만 뭔가 항상 완벽하지 않은 사람이었다.(과거형인 이유는 이제는 어리 양이라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냥 속으로 그렇게 생각해도 말은 하지 않는다.) 이제는 내가 무슨 실수를 하면 웃는다. '음, 샘이라면 그럴 수 있지.' 하는 것 같다. 밉게 보지는 않는 것 같아 다행이다.
그런데 창의적인 작업을 하게 되면 아이디어가 마구 샘솟는다. 대학교 수시 모집으로 고등학교의 비교과 동아리 활동이 활성화된 후, 나는 신났었다. 아이들과 이것도 해 보고 저것도 해 보면서 함께 성숙해왔다.
어릴 때, 나는 막내 여동생과 막둥이 남동생을 곧잘 업어줬다. 동네 어르신들께서는 "아이고, 거 참. 애기가 애기를 업었네."하고 웃으셨다. 언니 노릇이라고는 그때 동생들 돌본 것이 전부다. 이제 우린 각자의 삶에 최선을 다해 살고 있다. 나는 더 이상 '대추씨'가 아니며, 그들은 나보다 훨씬 야무진 생활인이 되었다.
글 하나를 첨부하기로 한다.
https://brunch.co.kr/@campo/353
친구의 품에 내 인형이 안긴 바로 그 순간, 옛 공방 앞집 분께 카톡이 왔다. 또 무슨 요리를 했으니 시간 되면 들리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래서......(계속)2021. 9. 5. 일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