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생활 마지막 해(이른 퇴직을 앞두고)
잠자는 아이들
학교에 잠을 자기 위해 오는 아이들이 있다. 하루 온종일 잔다. 대략 3년 전부터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자는 아이들이 늘기 시작했다. 전주에서 고입 시험이 사라진 후부터다. 이제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지 않아도 지원만 하면 인문계 고등학교 진학이 가능하다. 급기야 심한 경우 한 반에 여섯 명 정도가 엎드려 잔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습 위주의 수업으로 전환했다. 가능한 이유는 대입 시험 과목이 아니다. 이론을 한 학기에 한 번만 보는 것이 가능하다. 수행평가 70퍼센트로의 전환. 실습 위주의 수업은 강의식보다 많은 시간 개별 지도가 요구된다. 그러나 과제 없이 수업 시간을 통해서만 하기 때문에 코로나 이후 상황은 어렵기만 했다.
우리 학교는 연초부터 전면(총 학생수 740명 정도) 등교를 시행했다. 그러므로 실습 형태의 수업이 가능했다. 그러나 항시 복병이 존재했다. 우리 학교 학생들 중에도 예외 없이 확진자가 있었다. 원격으로는 이론 강의를 대면 수업에서는 이론과 실기를 병행했다.
요즈음 학생들은 꽤 솔직한 편이다. 재미없는 경우 즉석에서 불만을 토로한다.
이번 해, 우리 학생들은 수업 시간에 불평이 없었다. 심지어 즐거워했다. 지난해, 몇 학생들의 불평으로 마음의 상처를 입었는데 올해 모두 치유되었다. 그렇게 해에 따라서 학생들의 성향이 달랐다.
패션 드로잉
복식(머리에서 발끝까지 착용하는 모든 것) 드로잉 수업이다. 원격수업 시에는 복식사 이론 강의를 한다. 대면 수업 때는 드로잉 실습을 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복식 일러스트 작가는 흑요석(우나영) 작가다. 단지 일러스트뿐 아니라 복식에 대한 이해가 풍부한 작가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에게 복식을 설명하고 구글 클래스룸에 미리 수업 시간에 실습할 이미지를 업로드한다.
수업 시간에 일일이 개별 지도하고 사인을 해 준다. 사인받은 것을 사진 찍어서 구글 클래스룸에 올리게 한다. 학생들은 그림을 그리다 보면 복식에 대해 정확히 알게 된다.
잘못 그린 부분을 수정해주면서 이유를 설명한다. 전체를 보는 안목을 키우고자 노력했다. 마지막에 각자의 디테일 역시 중요하다. 실력의 차이로 점수를 깍지 않았다. 최선을 다하지 않는 불성실함 정도로 평가했다. (예를 들면 대충하고 엎드리는 아이) 학생들은 처음엔 어렵다고 하다가 두 번째 것에 접어들면 벌써 잘하기 시작한다.
바느질
바느질 수업에 대해서는 많이 망설였다. 우리
과목의 특성상 교과서대로 수업하지 않아도 된다.
교사의 창의적 재량이 중요하다. 기본 역량을 수행하도록 하면서(틀을 벗어나지 않으면서)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다.
동 교과 교사의 제안으로 고양이 패턴 커트지를 이용했다. 박고, 가위 집 넣고, 뒤집는 과정을 재밌게 했다.
아마도 모양이 귀여운 고양이라서 목표에 도달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던 것 같다. (어서 만들어서 선물하거나 가방에 매달고 싶어 했다.)
요리 일화 쓰기(한식을 중심으로)
주제 :나의 식탁
부제: 내 인생의 허기를 채운 요리
1. 일화, 2. 레시피, 3. 일러스트
식생활 분야를 가르칠 때 한 수행평가다. 선생님의 일화 하나를 간단히 들려주고 자신의 영혼에 영향을 준 요리 이야기를 쓰게 했다. 내가 브런치를 시작한 후, 브런치에서도 한식 공모전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 학생들의 일화 중에는 마음을 울리는 감동 스토리도 많았다. 역시 요리는 상처를 어루만지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이해했다.
진로와 직업
기본 자소서 형식의 문서를 제공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진 후 정리하여 발표하게 했다. 이번 해에는 이과 성향 아이들을 지도했다. 지난해에는 문과 성향 아이들을 지도했다. 문과 성향 아이들 발표 방식과 PPT가 더 마음에 들었다. 억지로 하기보다 각자의 미래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접근하기를 원했고 발표가 싫은 경우 하지 않아도 되는 수업이었다. 시험 평가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친구들의 발표를 경청한 후, 칭찬하기 또는 돌발 질문 등을 한다. 학생들은 교사의 수업보다 더 즐겁게 친구들의 진로이야기를 들었다. 학기가 끝난 후에는 교사가 학생들의 개별 과세특을 기록한다.
지난해 학생들 중에 몇 명이 친구들의 발표를 듣고 격려의 일러스트를 남겼다.
https://brunch.co.kr/magazine/dream-character
청출어람
푸른색은 쪽에서 나왔지만 쪽빛보다 푸르다. 이는 쪽 염색을 해 본 이는 잘 알 것이다. 녹색잎을 짓이겨서 그 물로 염색을 한다. 산화와 환원 과정을 통해 색이 점점 진해진다. 다름 아닌 염색 후에 공기 중에 털면 녹색이 푸르게 되는 것이다.
과거에 염색을 직접 해 봤기 때문에 그 신기한 경험을 했던지라 의미가 더욱 깊게 다가오는 단어다.
우리 학생들의 그림과 글 그리고 다른 작품들을 보면 '청출어람'이란 단어가 곧 떠오른다. 모두들 한 해 수고가 많았다.
올 해로 나는 기나긴 교직 생활을 끝내기로 마음먹었다.
예쁜 우리 학생들을 이제 그만 만날 생각을 하니 그 점은 조금 아쉽다. 언젠가 사회에서 만날 날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들이 꿈을 그리고 그 꿈을 닮아가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