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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씨Luce Nov 27. 2021

급식에서 병원식으로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죽을병이 아니라면 극심한 통증도 아니라면 병원식을 며칠 먹어보는 것도 휴식이 된다.


머리의 통증이  달여간 지속 되어 결국 병가를 냈다. 특히 머리 한쪽을 타고 , 어깨 그리고 허리까지 너무 아프고 머리는 전체가 전기자극을 받고 있는  찌릿거리면서 아팠다. 게다가 앉았다 일어나면 현기증이 심하고 혈압이 올랐다 내렸다 했다. 평생 마음 편하게 병가를   적이 없다. 만약 담임이라도 맡은 해에는 아파도 출근해야 했다.


명퇴와 더불어 병가를  받아냈다. 2 정도만 쉬면 좋겠는데 강사를 구하려면 한 달이 되어야 강사에게도 경력이 더해져서 구하기가 수월하다고 했다. 너무나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다 보니 강사를 못 했다고 나에게 알아보라는 말을 듣자마자 눈물이 펑펑 났다. 백방으로 알아보았다.  강사가 구해지지 않아 무척 힘들었지만 어찌어찌하여 구원투수 강사가 나타났다.


한방병원에 입원했다. 양방과 한방을 모두 본다. 소규모의 목욕탕과 맥반석 찜질방이 있는 병원이다. 원래 찜질방을 운영하다가 한방병원으로 거듭난 곳이다. 맥반석 찜질방과 작은 목욕탕은 입원 환자들에게 제공된다. 일반 외래 환자의 경우 찜질방이 무료라서 어깨와 허리 등의 통증이 있는 나이  여성 환자들이 많이 온다. 사혈(한방치료로 죽은 피를 뽑는 )  날은 탕에 들어가지 못한다.


병원에 있다 보니 하루가 정말 빨리 간다. 식사는 8시, 12시, 5시다. 새벽에 일어나면 먼저 침치료실의 대기인 명단에 사인을 하는 순서대로 치료를 받게 되기 때문에 항상 새벽 6시에 일어나서 사인하러 간다.(어디나 경쟁사회다.) 빨리 해야 하는 이유는 외래 환자와 섞이면 붐비기 때문이다.

침, 전기치료, 왕뜸, 물리치료, 도수치료 등등을 하고 나면 점심밥을 먹을 시간이 된다. 점심을 먹고 책을 조금 읽어볼까 했다. 그런데 학교에서 일처리 할 것이 있다고 전화가 와서 잠시 외출을 했다. 대부분의 경우, 오후는 입원실 위 층의 목욕탕에 갔다가 맥반석 찜질방에 간다. 그럼 저녁밥이 나온다. 학교급식을 먹다가 매일 병원식을 먹는 것이다. 그것도 세끼 식사를 해 주는 것을 먹으니 이리 편할 수가 없다.


병원에서 환자복을 입는 순간 진짜 환자가 된다. 몸도 더 아픈 것 같고 생기도 잃게 된다. 책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아 짧은 문장의 글이 있는 <미술에 관한 모든 것>을 선택했다. 아무 페이지나 읽으면 된다. 드로잉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하는 책이다.

병원식은 대체적으로 맛있다. 몇 번의 식사만 사진으로 남긴 이유는 딸들이 문자로 걱정을 하기 때문이다. 엄마가 별스런 병도 아닌데 호캉스 대신 병 캉스 중이라고 했다.

왼편으로 몸이 조금 삐뚤어져 있어서 왼쪽 전체가 아프다고 한다. 자랄 때 습관이나 하고 있는 일들이 전부 몸에 그렇게 좋은 자세가 아니라서 그런단다.

며칠 치료받으니 점점 머리 아픈 것도 사라졌다. 머리 아픈 기간이 지속되었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불안하여 MRI MRA를 찍게 되었다. 두 가지 종류를 해야 하니 약 40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별거 아닌 줄 알았다.


그런데 통 안에 들어가니 어찌나 무섭던지 심장이 팔딱거렸다. 눈을 꼭 감고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을 몇십 번 불렀다. 가사가 끝부분까지 생각이 나지 않아서 두 구절만 불렀기 때문에 더 진땀이 났다. 시간이 정말 가지 않았다.


후에 맥반석 찜질방에서 이 말을 꺼내니 어떤 환자분께서 그거 힘들 거 같아서 자기는 절대 안 찍는다고 하셨다. 그런데 그 옆에 다른 분께서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셨다. 알고 보니 암 환자셨다.


나의 MRI 촬영 결과는 모두 정상이었다. 나의 병은 모두 스트레스로 인한 것이었다. 혈액 검사도 정상이다. 콜레스테롤 수치도 경계선이지만 정상 범주에 있단다. 정상이란 말을 듣자마자 맛있는 병원밥도, 맥반석 찜질방도, 도수치료도 불필요하게 느껴졌다.


당장 퇴원수속을 했다. 무엇보다 허리 치료를 열심히 해도 밤마다 침대가 불편해서 허리가 더 아팠다. 옆 환자가 창가를 차지해서 둘 사이에 있는 커튼을 내 맘대로 제칠 수도 없다. 그래도 조용한 분이어서 그 점은 아주 대만족이었다.


살아생전에 다시는 촬영하는 통 속에 갇히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만약 다음에 검사를 해야 한다면 수면으로 하든지 노래를 처음부터 마지막 구절까지 잘 외우고 받아야겠다. 아니다. 건강하게 살아야 한다. 제발 그런 통에 다시 들어가는 일이 없기를 기도한다. 감사한 마음으로 퇴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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