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씨Luce Nov 03. 2021

무주구천동 어사길(백련사)

가을에 물들다

가을이다. 우리 아파트는 30년이 넘어 나무가 모두 아름드리가 되었다. 멀리 갈 것도 없구나 생각한다. 그렇지만 또 계곡 물소리를 들으면서 오로지 자연 속에 빠져보고 싶다.


무주구천동 어사길을 찾아 나섰다. 전남에 지리산이 있다면 전북에는 무진장(무주, 진안, 장수)이 있다. 무진장하게 아름다운 곳들이다.


진안 용담댐


진안 용담댐을 목전에 두었을 때 은근히 기대했던 물오름을 오늘은 볼 수 없었다. 날이 춥고, 구름이 낀 날이다. 자연은 늘 다른 모습이다.(지난해 화창했던 날 찍은 물오름 영상을 첨부한다.)


https://youtu.be/VasRxWlIxi4



무주 구천동 어사길


무주구천동 어사길은 덕유산 국립공원에 있다. 매표를 하지 않는다. 공짜로 이리 좋은 산을 방문할 수 있다니 놀랍다. 아끼고 보듬어야 할 산이다.


많은 이들이 백련사를 지나 향적봉까지 오른다. 백련사까지만 무사히 다녀오는 것도 나는 벅차다. 주차장에서부터 백련사까지 왕복 10킬로미터가 족히 넘기 때문이다.


주차장을 빙 둘러싼 단풍나무들은 주로 홍단풍(적단풍, 본시 검은빛이 섞인 빨간색)이다. 홍단풍이 햇볕을 강하게 받으면 본래 거무스름한 빨강에서 더욱 진하고 예쁜 빨간색을 띤다. 여하튼 결론은 홍단풍나무의 경우 잎들이 계절을 불문하고 일관되게 붉은색 혹은 자줏빛이다.


단풍이 물드는 과정을 즐기는 나는 홍단풍나무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녹색에서 가을을 맞이해 색이 점차 변해가는 초록 단풍나무가 아름답다. 나의 공간, ‘모닝’ 정원에도 녹색 단풍나무를 심었다. 그 전 공간에서 옮겨온 나무다. 봄에 옮겨 온 후, 아주 몸살을 심하게 하는 중이다. 게다가 일교차가 갑자기 너무 심해지는 바람에 잎들이 말라버렸다. 내년에는 무성해지기를 바랄 뿐이다.


주차장의 홍 단풍나무

주차장에서 올라가는 길에 만난 가로수 은행잎들이 노랗게 물들기도 전에 초록 잎이 말라서 떨어졌다. 은행을 따 버리기 위함이었을까. 때로는 푸른색일 때 은행잎을 흔들어 푸른 잎을 약재로 사용하기도 한다고 들었다. 한때 시골마을에서 외지인들이 초록 은행잎을 약재에 쓴다고 털기도 했었다. 지난해는 노란 은행잎이 예뻤는데 이상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걷다가 갑자기 예쁘게 물든 '단풍이 들'을 만났다.

이들은 좀 더 산뜻한 빨강, 주황, 올리브 그린, 갈색빛이 섞여있는 주황, 갈색, 황톳빛 등등이다. 가을이 오면 초록 단풍나무는 총천연색이다.


마치 여러 모습을 지닌 사람들 같다. 생동감 있는 초록, 밝고 화사한 노랑, 에너지를 지닌 주황, 정열의 빨강, 조금은 지친 자주, 차분한 갈색, 마음을 비우고 자신의 고운 색을 내어주는 무채 색, 어둠 속에서 모든 것을 받혀주고 보듬는 검정이나 진한 보라 그리고 검누른 고동색.......


숲 속의 나무들 중에는 키가 더 이상 자라지 못하거나 빛을 전혀 받지 못해서 일찍 사그라드는 것들도 있다. 그러나 모두 아름다운 숲을 이루는 제 역할을 한다. 지금 산은 여러 나무들이 알록달록하다. 나무가 숲이 되고 산이 되어 몽알 몽알 아름답다.


어우렁 더우렁 함께 나누고 즐기는 잔칫집 같다. 아름다운 자연을 두고 탄성을 자아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연신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서로 정담을 나눈다.

살포시 그 길을 걸으면서 함께 흥에 젖어든다. 가을 산행은 우리 모두를 함께 달뜨게 한다.


이러다가 정상까지 갈 수 있겠어? 하하하


계속 사진을 찍는 이들에게 산행하던 무리 중 한 분이 웃으시면서 말씀하신다. 우리는 모두 함께 웃는다.



백련사


백련사에 다 달으니 나무의 잎들이 상당히 떨어져 이미 초겨울의 문턱에 다다른 느낌이다. 흥에 겨워 삼삼오오 걷던 등산객들도 대부분 조용히 걷기 시작한다.


백련사 단풍은 지난해보다 잎이 싱싱하지 않고 조금 말라있었다. 때 이른 강 추위, 또는 가뭄때문인지 알 수가 없다. 천왕문을 지나 만난 단풍도 적단풍이다. 적단풍이 초록을 배경으로 하면 아름답다.


아무리 힘든 산행이라 해도 백련사에 올라 잔디에서 점심을 먹으면 다 사라지고 만다. 넓은 잔디 위에 구절초들이 피었던 흔적만 남아있다.


백련사 흙바닥에 앉아 전경을 보노라면 가슴이 뻥 뚫리는 전경이다. 언제 와도 기분 좋은 곳이다.

가벼운 점심을 먹은 후, 아주 조금 '시주'를 한다. 매표도 하지 않은 값이다. 등산객들은 이곳에서 잠시 머물렀다가 다시 산행을 재촉한다. 나는 하산한다. 이미 발바닥이 아프다. 두툼한 등산 양말을 신었으며 '어사길'이 전혀 힘든 길이 아니다. 그래도 10킬로미터 마라톤을 한다고 생각하면 반을 왔으니 돌아갈 체력을 생각해야 한다. 욕심을 버리고 즐길 만큼만의 산행을 한다.


이제 한 해가 지날 때마다 산을 얼마나 오를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무릎이 신통치 않기 때문이다. 직장생활 30년 동안 4층 계단을 하루에도 열두 번은 오르락내리락하고 살았기 때문인 것 같다. 체력이 단련되어 소위 '깡'은 여전하나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물들고, 물들어가고. 떨어지는 나뭇잎들 사이를 걸으면서 나의 인생의 다음 걸음을 생각해 본 소중한 시간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고산 대아 수목원 가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