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입시 상담을 하며
그 이유로 첫째는, 보고 나면 느낌이 개운하지 않은 점이다. 남들 다 쉬는 휴일에도 일을 한 나는 스트레스를 조금 털어내려 요즘 영화 1위인 조커를 봤다. 그런데 잘못 봤다. 좀 더 순간의 웃음을 주는 영화를 봤어야 하는데... 악당이 되어가는 과정, 조커가 되어가는 과정, 미쳐가는 과정이 정당하게 보이는 불편한 점이 있다. 나에게 힐링이 되는 영화는 절대 아니다.
둘째로는 그런 불편함과 더불어 영화가 계속 생각이 나는 점이다. 잠을 설치게 한다. 웃기를 강요하는 사회 속에서 남들과 다른 웃음 코드를 지닌 자는 왕따가 되고 도태된다. 영어를 배울 때 어려웠던 점은 외국인 친구들과 어울리다 보면 그들이 웃을 때 대체 왜 웃는지 모를 때였다. 아마 외국인들도 우리나라에서 살면서 이런 웃음코드가 달라 힘들 것이다. 그런데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만 도무지 알아듣기 힘든 말을 하고 강요하면서 웃으라 하는 경우를 떠 올리며 혼자 씁쓸해한다.
그럼에도 한 번쯤 우리 사회를 돌아보게 하는 영화에 관심이 있다면 강력 추천하고 싶다.
영화 속에서 나온 계단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본다.
신분 상승의 사다리
영화의 계단은 상류층과 하류층을 나누는 신분의 계단 같다. '신분 상승의 사다리'라는 표현이 있다. 직장에 다니고, 승진을 위해 노력하는 모든 것들은 무엇을 위한 행동인가. 자아 성취감이라는 거창한 명분 뒤, 마음속을 들여다본다. 나는 신분 상승을 위한 사다리를 타고 열심히 올라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보다 나은 미래의 나에 도달하는 것. 지금보다 낫다는 것이 물질적인 도달점인 것이 분명하다. 그도 아니면 먹고살기 위해서 직장에 다닌다. 이리 말하면 삶이 참 모질게 느껴진다.
오르고 또 올라서 도달하는 곳에 직장과 집이 있는 경우를 상상해 보기 바란다. 또 그 안에서 다시 엘리베이터가 없이 오르고 또 올라가야 한다면 어깨춤이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고속 엘리베이터가 아니더라도 다급하거나 몸이 좋지 않을 때는 엘리베이터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본다. 엘리베이터 없는 직장에서 매일 두 개의 동을 오가며 하루에도 10번 이상 4층까지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요즘은 조금 자기 연민에 빠지곤 한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무릎이 아프고 숨이 차다. 올 해는 쉬는 시간에도 상담을 하다 보니 지친다. 제일 지치게 하는 것은 바쁜 가운데에 실컷 상담을 해 놓고, 마지막에 원서를 자기 마음대로 쓰는 것이다. 그 많은 원서 중 한 두 개쯤은 상담한 대로 대학에 갈 수 있게 써야 하는데, 눈높이와 자신의 성적이 맞지 않아도 끝내 고집을 피울 때는 안타깝기만 하다. 나는 결국 이렇게 말한다.
그래, 결국은 네가 정해야 해. 네 인생이니까. 부모님도 선생님도 네 인생을 살아주는 것은 아니지
힘들게 수업으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면서 운동한다는 생각으로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오를 때는 직선 계단을, 내려올 때는 완만한 사선 계단을 이용하려고 노력한다. 중력을 받으면서 내려오는 직선 계단은 무릎에 무리가 간다고 한다. 내 다리가 거의 30년 동안 이 많은 계단을 뛰어다니다시피 했으니 아프지 않은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학교를 처음 지을 때부터 우리 학교는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을 위한 사선 계단을 만들어 두었다. 덕분에 내가 요즘 잘 이용한다. 이렇게 말하니 노인이 다 된 기분이다.
영화 후반부에 그 계단을 마지막으로 보여줄 때는 올라가는 모습이 아니라 내려오는 모습이다. 춤추면서. 우리 삶도 힘든 오르막의 여정보다는 편한 내리막이 좋을지도 모른다. 등산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오르막을 향해 걸으면서 희망이 있다. 더 많은 햇빛과 더 넓은, 세상을 다 들여다보는 것 같은 정상에 오른다는 생각을 품는 동안 행복하다. 게다가 힘든 중에 마시는 물 한 모금의 단 맛과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의 아름다움은 덤이다. 직장의 계단과 등산의 계단이 다른 점은 자유의지와 의무의 차이다. 칼퇴도, 방학도 공휴일도 반납하고 지내는 고3 담임의 업무로 인해 스트레스가 심한 편이다.
영화에서 생각나는 대사가 있다. 아서에게 웃음을 강요한다.
Don't forget to smile
그러나 어느 날 아서가 forget to를 지운다.
Don't smile
그리고 아서는 변하기 시작한다. 집단 속의 밑바닥 인생을 사는 개인이 미치광이 슈퍼 쥐로 탈바꿈한다. 슈퍼 고양이는 떼로 대항하는 슈퍼 쥐들에게 잡아먹힌다.
주인공 연기를 소름 끼치게 잘 한 호아킨 피닉스에게 진정 박수를 보낸다. 내가 미친 쥐가 되지 않도록 정신을 다잡아 본다.
지난해 한참 대입 수험생들의 면담과 정규수업으로 힘들던 시기에 봤던 영화였습니다. 공휴일조차 학교에 나가 자율학습을 희망하는 아이들의 자율감독을 위해 교대근무를 하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제 반 학생들의 입시 결과가 원하는 대로 대부분 이루어져서 마지막에는 조금 위안이 되었습니다. 올 해는 비담임이 되니 마스크를 쓰고도 계단을 오르기가 훨씬 수월합니다.
담임이란 직분은 아이들의 숫자만큼 어깨에 돌덩이를 얹고 사는 느낌입니다. 때로 그 돌덩이가 깃털이 됩니다.
아이들의 웃는 얼굴, 다정한 인사, 부모님들의 격려의 말씀 등은 돌덩이를 깃털로 둔갑시키는 엄청난 마법입니다.
이제 곧 12.3일. 목요일. 대입 수능 시험일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수시 원서기간이 끝났습니다. 정시 및 수시의 최저 등급이 결정되는 대입 수능에서 학생들이 최고의 컨디션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도 코로나 확진자 수는 583명이 되었다고 나옵니다. 문제는 요즘 갑자기 늘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수능 시험 실시에 대해 여러 방역대책을 세우면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지만 마음 한편 걱정이 쌓입니다. 모두 무사히 시험 잘 치르기를 빌어봅니다. 지난해 재수한 두 명의 저희 반 아이들, 이번에는 꼭 원하는 곳에 진학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