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씨Luce Nov 24. 2020

기억 전달자

힐링, 아름다운 일탈 2화

'힐링, 아름다운 일탈 1화'에서 언급 한 바와 같이 지난 시절의 글을 정리해 본다. 이번에는 나의 의견이 다수 들어가게 되어 조금 젊은 내가 쓴 이야기를 네모 틀 안에 넣기로 한다.


일탈이라는 단어보다 윗단계의 언어는 힐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힐링은 아름다운 일탈이다. 힐링을 통해 행복을 맛볼 수 있다. 최근에 든 생각이므로 텍스트의 네모 틀 안에 들어가지 않는다.


[ 2008/10/18 ]  행복을 찾는 일 - 정열, 평화, 행복


플로르의 <보봐리 부인>은 일상을 탈출하기 위한 대안으로 ‘사랑’을 찾아 나서지만 결국 그 누구도 구원해 주지 않아 무너지고 만다. 안톤 체호프의 <귀여운 여인> 올렌카는 주어진 사랑에만 충실하여, 어떤 경우라도 사랑이란 굴레가 있을 때 빛나며, 인생이 의미 있다 여긴다.


사랑은 고통을 줄지언정 아름답다. 첫사랑의 설렘, 오래된 사랑, 사랑......

두근거림으로 출발하는 사랑의 문을 여는 순간 눈이 멀게 된다는 것이 문제다. 거짓 사랑을 사랑이라 믿는 것에 함정이 있다. 그런데 진실과 거짓은 사랑의 열병에 휩싸인 경우 본인이 알아채기가 어렵다. 살면서 현명한 이가 주변에 있다면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사랑에 빠지면 눈이 멀게 되고, 결혼은 콩깍지가 씐 일이다.

    

외국인 친구 말이 앞 문장은 영어로도 그런 표현이 있지만, 뒷문장은 영어로는 없다고 한다. 이런 말이 영어로 있든 없든 사랑과 결혼에 대해 이보다 더 적절한 표현이 있을까. 정략결혼이네 뭐네 하는 부류와 과거 부모님들이 혼례를 정했던 시절을 제외하고 하는 말이다. 결혼생활에서 콩깍지가 벗겨지면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그러나 벗겨진 콩깍지를 주워 다시 쓰는 것보다, 현실을 직시하고 그 범주 안에서 대안을 찾는 것이 어떨까 생각해본다. 그것을 그 당시 '일탈'이라는 단어로 압축했던 것 같다.


우리는 왜 사는 것일까?
여름밤의 상쾌한 공기를 마시기 위해.
순간의 짜릿함을 즐기기 위해.
살아있기 때문에.
나의 딸 생각처럼 또 다른 인생의 경험을 하기 위해.
행복하기 위해.
사랑하기 위해.
공감을 얻기 위해.
우리가 사는 이유를 세 가지 이상 댈 수 있다면 충분히 살 가치가 있지 않을까?

세 가지 이상을 댈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것이다. 한 가지 이유만 있다 해도 인생은 충분히 살 가치가 있다고 여긴다.     

책 <The Giver(기억 전달자)>를 마쳤다. 영어 소설책을 끝까지 읽은 경우가 처음이라서 스스로 장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 권의 소설을 한 해가 지나서 마쳤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요즘의 나 같으면 당장 며칠 만에 다 읽어야 잠자리에 들었을 텐데, 아마 그때 나는 여러 가지의 책을 한 번에 읽었던 것 같다. 한때, 나의 독서 습관은 한 번에 여러 권의 책을 읽었다. 이 모임의 책 여기까지, 저 모임의 책 여기까지, 또 나 스스로의 책 여기까지 식이었다. 한편, 원서가 지금이라면 조금 쉽게 읽힐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원서를 읽는 것은 진중한 인내심이 필요하다. 그래서 독서 모임을 통해 꾸준히, 그리고 천천히 읽었던 것 같다.   

소설의 내용은 모든 것이 완벽하나 모두에게 ‘감정(느낌)’이 없는 특정 사회에서 주인공 조나스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조나스의 희생으로 그 사회의 구성원은 모두에게 ‘감정(느낌)’이 되돌려진다. 자신의 사회를 떠나게 된 조나스의 마지막 말이 가슴에 찡하게 남는다. 영어의 feeling은 emotion과는 다르다. feeling은 종합적으로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라면,  emotion은 순간의 정서를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소설 <The Giver 주는 자>에서는 emotion 보다는 주로 feeling을 언급한다.


조나스가 살던 사회는 먹을 것이 풍족했다. 의식주가 풍족하게 해결되던 사회를 뒤로 하고 떠나는 조나스의 심정을 집약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한  일탈이 아닌 완전한 벗어남이자 그가 살던 사회에 인간애를 환원시키는 행동이었다.



Then, when he had had a choice, he had made the wrong one : the choice to leave. 그렇다, 그에게 선택권이 있던 순간, 그는 잘못된 선택을 했다: 떠나는 쪽을 선택한 것

And now he was starving. If he had stayed in the community, he would not be.

But if he had stayed... 그래서 지금 그는 굶주리고 있다. 만약 그가 속한 사회에 계속 머물렀다면 굶주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가 계속 남아있었더라면...

If he had stayed, he would have starved in other ways. 만약 그가 머물렀더라면, 그는 다른 것들로 굶주렸을 것이다.

He would have lived a life hungry for feelings, for color, for love. 그는 그 어떤 느낌을, 색채를, 그리고 사랑을 갈망하며 살았을 것이다.    



나는 항상 꿈꾼다. 사랑과 행복과 기쁨을. 하지만 내가 머문 곳에서 그 답을 찾아야만 한다. 일탈을 꿈꾸는 것은 느낌에 대한 굶주림, 진정한 행복에 대한 끝없는 갈망 때문이리라. 조나스처럼.   

행복을 맛보는 수단으로 반복되는 일상을 탈출할 수 있는 것은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소설가 알렝드 보통은 그의 책 <여행의 기술>에서 ‘행복을 찾는 일이 우리 삶을 지배한다면, 여행은 그 일의 역동성을 그 열의에서부터 역설에 이르기까지 그 어떤 활동보다 풍부하게 드러내 준다.’ 알렝드 보통은 철학자라서 쉬운 말을 주절주절 어렵게 늘어놓기는 하지만, 나는 사실 그의 주절거림을 광적으로 좋아한다.   

알렝드 보통을 아주 좋아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그의 윗 문장은 쉽게 해석해보려고 해도 어렵다. 그래서 어떤 때는 애먼 번역가를 탓하기도 한다. 실제로 번역이 기막히게 잘 된 경우에는 독자로서 정말 고맙다. 그러나 대부분 번역서가 어려운 경우 원서도 비슷하다. 작가의 문체가 그러하기 때문이다.


과거에 내가 현학적인 느낌의 글을 좋아했다면, 최근에는 쉽고 간결하게 쓴 글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알렝드보통의 글은 '행복을 찾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생각한다면, 여행만 한 것이 없다’는 뜻으로 내 식대로 해석해본다. 여행을 시작하는 흥분으로부터 떠돌다가 돌아오기까지 한바탕 인생 여정이 지속되기 때문이다.  여행을 통해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행복을 찾는 것을 인생 목표로 생각한다면 여행길, 그 길 위에 행복이 펼쳐질 수도 있지만 온갖 고난이 닥칠 수도 있다.            

   

나는 그 시절 왜 그렇게 행복 타령이었을까. 젊은 탓이었던 것 같다. 자유를 박탈당한 채, 삶이란 밧줄에 꽁꽁 묶여 산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늘 일탈을 언급했던 것 같다. 나의 주변은 모두 평범하게 살아가는데 ' 외로운 조나스처럼' 나 역시 혼자만 생각으로 가득해서 힘들다고 느꼈다.


지금 생각하면 후회스러운 일 천지다. 참으로 어리석다.

    

나는 예전에 아주 짧게 인도에 다녀왔다. 한번 가 본 곳이기에 관심을 가지고 그 후 여러 소식을 접하게 된다. 남들이 보기에 아무리 가난하고 처지가 불행해 보여도 그들은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멈추지 않는다. 그 부분이 정말 신비스럽기까지 했다. 돌아보면 그들은 마음이 평안하게 보였고, 해탈한 자들 같다. 종교적인 영향이기도 할 것이다. 그것이 잘못되었네, 어쩌네 하는 논의를 하고 싶지 않다. 카스트 제도의 부정적인 면도 시시콜콜 언급하지 않겠다. 그저 그들의 삶을 존중한다.  

   

최근에 든 생각인데, 이 세상에서 가장 부러운 이는 마음의 평안을 얻은 이다.


과거에는 정열을 지닌 사람은 마음의 평안을 구하기

어려우며 결코 행복하긴 어렵다고 생각했다. 정열의 패키지가 고통이라 여겼다.


그러나 정열의 방향성과 수위조절이 행복의 변수라고 생각한다. 행복하고자 할 때, 반작용으로 따라오는 온갖 감정의 패키지 또한 인간이니 누리는 온갖 정서다. 아무런 느낌이 없이 사는 조나스의 사회가 비정상인 것이다.


그림자 같은 행복의 반대 이미지가 등장했을 때, 어떻게 그것을 이겨낼 것인가를 생각하면 된다. 마음의 평안은 여러 가지의 힐링을 통해 얻는다.


아름다운 일탈을 꿈꾸는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것이 독서와 글쓰기이다. 혼자 하는 독서가 어려운 경우 삶을 조금 나눌 좋은 사람들과 독서모임을 하면 책 읽기에 훨씬 도움이 된다.


최근 나의 힐링법은 다음과 같다.


공감의 글. 딸의 목소리 듣기, 그림 그리기, 음악, 여행, 친구와 이야기, 독서모임, 잠, 다양한 캐릭터가 등장하는 소설, 드라마, 영화, 식물, 유튜브, 먹방...... 힐링을 얻을 요소가 참 많다.     


책 '더 기버' 한국어 번역서 제목, 기억 전달자를 영화화 한 예고편이다.

https://youtu.be/fMUli947oIE



아래 유튜브 링크는 한 편의 영화를 모두 올려놓은 것이다. 책으로 읽은 후 영화를 보면 더 좋을 것 같다. 일반적으로 책을 나중에 읽으면 꼭 후회를 하게 된다. 인물에 대한 선입견이 생기기 때문인 듯하다.


https://youtu.be/F-Dc2D3-420

http://m.yes24.com/Goods/Detail/2593734

번역서의 제목은 '기억 전달자'다.




사진 이미지: 원서 소설 <The Giver>를 교보문고에서 현재 5,400원에 판매하고 있다. 50%나 할인을 하다니...... 집에 책이 있는데, 또 사서 누구에게 선물하고 싶어 진다.

   

매거진의 이전글 조나스의 사과 'The Giver'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