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내려온 딸의 먹방 코스
소제목의 '상상플러스'는 초등학교와 우리 아파트 사이에 위치한 아이들의 참새방앗간이다. 상상플러스를 설명하기 전에 서울에서 내려온 딸의 행적과 일박 이일의 먹거리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코로나가 창궐하기 시작해서 걱정이지만 아이들의 아버지이자 나의 남편의 인도 사진전이 열리는 것을 꼭 보겠다고 둘째가 내려왔다. 그런데 전시회가 주목적인지 먹거리가 주목적인지 알 수가 없다. 서울에서부터 지속적으로 '배두둑 감자탕'을 노래했기 때문에 딸이 오는 날 저녁, 즉 어젯밤에 긴급 공수해서 늦은 밤 도착한 딸에게 대령했다. 뜨끈한 김이 모락모락 할 때 찍었어야 하는데 아쉽다. '배두둑 감자탕'은 고깃살 붙어 있는 것을 떼어먹는 재미도 있지만 시래기가 별미다. 딸 덕분에 맛있게 먹었다.
오늘 오후는 학생들이 원격 수업에 들어가게 되어, 원격 강의를 한 후 오후 늦게 조퇴를 냈다. 딸과 조금 늦은 점심을 했다. 딸은 서울에서 자기 용돈으로 사 먹기 어렵다면서 초밥이 먹고 싶다고 한다. 집 주변에 맛있는 초밥집이 없다. 코로나로 어디에 가서 먹는 것이 두려워 포장 주문했다. 차로 30 분가서 받아와서 아파트에서 먹는다. 바쁜 엄마에게 요리해 달라고 하지 않으니 그것만 해도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또 딸 덕분에 맛있게 먹었다.
딸과 함께 전시회장으로 향했다. 전시회장은 텅 비어있다. 코로나가 극성이니 당연한 현상이다.
http://www.jeonjucinecomplex.kr/dataroom/view04.php?exhibit_num=70
사진들도 사진들이지만 카메라에 담지 못한 영상을 보는데, '이 남자들은 인도에서 태어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유롭고 또 자유로운 모습들이다.
가야지 또다시 그곳으로
인도에서 생활했던 영상을 보니 모두들 행복에 넘친다. 아마 대부분 남자들이 이 영상을 보면 가정은 내팽개치고 얼른 인도로 떠나고 싶어 질 것 같다.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강조하는 의미에서는 금지 영상일까? 자유로운 영혼이 바로 여기 있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가 생각난다. 떠나야 사는 사람이 있다. 그들이 그런 것 같다. 사진전을 돌아보는 내내 둘째는 "아빠가 자랑스러워! 우리 아빠 최고!"를 연발한다. 그래서 나는 "그래, 너는 좋겠다. 멋있는 아빠 있어서." 하고 말했다.
사진과 영상을 보고 시내의 가볍게 먹는 음식점에 들렸다. 대패삼겹살과 불판 볶음이다. 삼겹보다 묵은 김치 볶음이 정말 맛있었다. 지글지글 소리가 요란하게 고프지도 않은 뱃속을 부추긴다.
"엄마, 아까 배 안 고프다면서 왜 이렇게 잘 먹어?" "엄마가 원래 조금 먹어도 잘 먹는 것 같이 보여. 얼른 먹어."
나는 이렇게 포일에 깔린 밥은 별로다. 맛은 있지만 불안하다. 포일 껍질이 목구멍에 들어갈 것 같아서다. 그래서 살살 떠먹었다.
하지만 대패 삼겹 1인분에 6천 원이니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은 곳이라 한다. 시내에 있는 '돼지 박사'라는 곳이다.
아파트 주차장에 오니, 딸이 아파트 옆의 '상상 플러스' 이야기를 한다. 군것질을 싫어하는 나의 둘째도 이 곳을 지나치기 어려워했다. 먹고 싶으면 가자고 하니 배부르다고 한다. 망설임 끝에 하는 말이 명언이다.
엄마, 거긴 사실 몸에 그렇게 좋은 음식은 아닌데 꼭 한 번씩 생각이 난다니까?
히히.
에잇, 그냥 먹고 나서 매실 액기스 먹어야겠다.
"그래, 원래 몸에 안 좋아도 때로는 어린날 추억을 위해 먹게 되지." 하고 딸아이와 상상플러스에 갔다. 매실 진액은 어젯밤에도 먹었다. 어젯밤에도 과식했고, 오늘도 과식하는 중이다. 딸아이는 몸이 아주 마른 편으로 무엇을 잘 먹지 않는다. 그런 그 아이가 이것저것 먹고 싶다고 하니 나는 이것저것 대령하고 싶어 진다.
'상상플러스' 그곳은 스토리가 있는 곳이다. 이름도 잘 지은 곳이다. 처음에 아주머니께서 혼자 방앗간 앞에서 아주 작은 호떡 가판대를 놓고 포장마차 길거리 장사를 시작하셨다. 아저씨는 택시기사셨다고 들었다. 그래도 틈틈이 아주머니를 도우셨고, 어느 날부터 그들은 함께 컵볶이를 팔기 시작했다. 또 어느 날부터는 닭꼬치를 팔기 시작했다. 아저씨와 아주머니는 늘 함께 하셨고, 언제나 밝게 웃으셨다. 초등학교 아이들이 오면 한결같이 응대하셨다.
그러다가 방앗간 자리를 인수하셔서 가게를 차리셨던 것이다. 분식집의 형태인 가게는 계속 번창해서 나의 둘째가 초등학교 저학년이었을 때부터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번창의 비결은 부드러운 인사말과 웃는 얼굴이었다. 아이가 500원짜리 하나를 사도 "아들, 딸, 맛있게 먹어요. 고마워요!"라는 멘트로 응대하셨다. 어머니들은 적립금을 낸 후, 아이가 먹으면 수첩에 적으면서 제하는 방식으로 그곳을 신뢰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 그곳을 찾는다. 추억의 맛을 소환하기 위해서다.
닭꼬치 하나 사 들고 집에 왔다. "그거 맛있니? 엄마 딱 한입만 먹어볼게."
이제 내일 점심을 먹고 서울로 갈 아이는 저녁 늦게 닭꼬치를 뜯고 있다. 곧 매실 진액도 먹을 것 같다. 사실 내가 매실 진액을 먹어야 할 것 같다. 딸 덕분에 이틀 사이에 1킬로는 거뜬히 는 것 같다. 딸은 내일 또 무엇이 먹고 싶을까.
2주에 한 번이라도 내려와서 맛있는 것 실컷 먹고 가면 되지
'따뜻한 식탁' 매거진은 그림 에세이를 올리는 것을 주 테마로 하고 있다. 하지만 그림이라는 것이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므로 글을 올리는 적기를 놓치게 된다. 따라서 다급할 때는 우선 글을 올리고 천천히 그림을 추가하고자 한다.
*액기스: 액기스는 일본어에서 비롯되었다 한다. 이후로 액기스는 진액 또는 매실청이라 해야겠다.
<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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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자고, 입는 것에 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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