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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캠퍼스씨네이십일 Sep 09. 2016

[내 인생의 영화] 홍석재 감독이 만난

<소녀혁명 우테나>

1996년 여름방학, 나는 <에반게리온>을 만났다.

<에반게리온> 이후 애니에 대해 TV에서 틀어주는 걸 챙겨보는 이상의 흥미가 생겨버린 나는 플레이스테이션1을 판 돈으로 PC통신에서 불법복제비디오를 대량 구매했다. 그 때 산 비디오테이프 중에 “영화를 찍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한 작품이 있었다. 그게 바로 <소녀혁명 우테나>라는 애니다.

잠깐 내용소개를 해보자. 중•고등학교가 같이 붙어있는 거대학원인 사립 오오토리 학원이 이야기의 배경이다. 이곳의 학생회 임원들은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듀얼리스트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각자 자신들이 원하는 소원을 이루기 위해 결투를 벌인다. 그리고 이야기는 남장여인 ‘우테나’라는 여자애가 이 학원에 전학 오면서 시작된다.

쉽게 비유해보면 일진들이 주인공인 학원물인 셈이다. 지들끼리 싸우면서 누가 최고인지를 가린다. 그리고 최고의 옆엔 트로피처럼 승리를 빛내줄 여자가 있어야하는 법이다. 이렇게 싸우고 싸워서 학교짱이 되었을 때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지만 모두들 그 명성을 얻고 싶어한다. 그래서 거기엔 무언가 힘이 있게 된다.

여기서 순정만화의 원형적인 구도 – 왕자와 공주 – 를 전복시켜 사용한다. 주인공 우테나는 여자이지만 구출되는 공주가 아니라 구하는 쪽인 왕자가 되려고 갈망하는 캐릭터이다. 그리고 공주 역할인 안시는 가부장적 사고에 속박되어있는 수동적인 캐릭터이다. 이야기는 남자(왕자)가 없더라도 이 둘, 여자애와 여자애가 서로를 구해줄 수 있는지를 묻는다.

사실 <소녀혁명 우테나>는 진입장벽이 높은 걸로 악명이 높다. 우선 눈이 얼굴의 반을 차지하는 순정만화 그림체에 튕겨져 나가기 쉽다. 다행히 난 순정만화 애독가였다. 그런 나도 6화에서 나온 동성애 심리묘사에 깜짝 놀란 기억이 있다. <소녀혁명 우테나>는 여러 층위의 성담론을 끌어와 자기 맘대로 갖고 노는데 10대 남자애에겐 하나하나가 도발의 연속이었다. 그 중에서도 극 중 최종보스 악역인 어른남자 캐릭터와 주인공 우테나가 섹스를 하는 장면이 연출된 33화는 내가 보고 있는 저 장면이 실은 그게 맞는 걸까? 맞으면 어떡하지 라는 불안과 충격으로 관람한 기억이 난다. 그 어른남자 캐릭터는 표면상 왕자의 위치에 서있고 우테나는 왕자가 되고 싶어 하지만 그녀의 몸은 여자아이이다. 악취미로 점철된 그 관계에서 둘의 섹스는 오로지 우테나의 얼굴 클로즈업만 잡은 채 암시적인 대화가 흘러나오면서 보여 진다. 내가 볼 수 있는 건 프레임 안쪽 우테나의 얼굴 표정 뿐이지만 나는 그려지지 않은 프레임 밖을, 그곳에 분명히 있을 우테나의 나체를 불편과 아찔함을 가지고 상상하게 된다. 그런 긴장이 <소녀혁명 우테나>에는 그득했다.

영상을 보면서 그 때 처음으로 프레임을 의식하게 되었다. 한번 의식하게 되자 계속해서 보이는 것 투성이가 되었다. 그런 자의식이 조금씩 자라나며 내가 아무 생각 없이 봐왔던 무대의 뒤에서 이것을 조작하고 있는 누군가의 존재를 깨닫고 자연스럽게 나 역시 그런 쾌감을 느끼고 싶다는 열망을 품게 되었다.

무엇보다 날 가장 매혹시켰던 건 학원이라는 폐쇄세계를 그보다 더 커다란 바깥의 세계에 상징적으로 대입시키는 구조에 있다. 흡사 연극무대처럼 소도구나 상징들을 활용해 작은 것을 보여주면서 더 커다란 것에 대한 이야기를 연상하게 만든다. 시스템과 그 시스템의 핵심에 들어가려고 경쟁하는 사람들 그리고 시스템의 유지를 위해서 필요한 희생양적 존재 그리고 이런 시스템 자체를 부정하고 깨부수고 싶어하는 혁명자. 이같은 구도 안에서 나와 너의 관계나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전체를 지배하는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의식하게 된다. <에반게리온>과 닮은 듯 다른 맥락으로 ‘나’라는 개인보다 훨씬 거대한 세계라는 감각을 깨우치게 만들었다. <에반게리온>의 경우 개인과 세계 사이의 크기 차이가 도무지 넘을 수 없는 수준으로 격차가 벌어지는 바람에 이야기의 결말을 전통적인 서사틀로 해결하지 못해 폭주했지만 <소녀혁명 우테나>는 모든 사람들이 공감하고 또 그 이상으로 감동하는 결말을 선사해낸다. 이건 정말이지 보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결국에 세계는 혁명되고 한 여자아이는 다른 여자아이를 구하는데 성공한다. 물론 아주 많이 다치고 고통 받지만.

애니메이션 안에서 한 여자아이가 구해져봤자 무엇이 바뀌겠나? 그냥 그건 애니일 뿐이다. 과시적인 스타일과 관념적인 설정 그리고 상징에 기대어 세계를 혁명하니 어쩌니 하지만 여전히 2차원 안의 이야기다. 하지만 마지막 결말까지 다 봐버린 17살의 난 잠에 쉬이 들지 못하고 뒤척였다. 적어도 그 날 밤 내 몸 안을 휘젓던 열기는 진짜였고 살아가면서 그런 기분을 다시 만나기란 아주 어렵다는 걸 모를 정도로 난 멍청하지 않았다. 그렇게 <소녀혁명 우테나>는 내 인생의 영화가, 아니 애니가 되었다.

홍석재 감독이 이십대에게 당신과 당신 세대가 공유하는 문화를 기억하고 그것을 더 풍성하게 만드세요!


profile 1983년생. 중앙대 영화학과 졸업. 한국영화아카데미 28기. <필름>(2010, 단편), <소셜포비아>(2014)


글 홍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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