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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캠퍼스씨네이십일 Oct 31. 2016

그러니까 그 여자는 누구예요?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 이유영 인터뷰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에서 이유영이 연기한 민정이 자주 하는 말이 “저 아세요?”다. “민정씨 맞죠? 저랑 전날 술 마셨잖아요.” 알은체하는 남자들에게 민정은 정색하고 묻는다. 나를 아느냐고. 그 표정이 너무나 진심이라 확신했던 이쪽이 머쓱해진다. ‘저 민정이 아니’라고 도리질을 치는 그녀는 누구일까. 영화를 다 봐도 민정이 누구인지 아리송한데, 그보다 모르겠는 건 그걸 연기하는 배우 이유영이다. 내가 보고 있는 배우 이유영이 <봄> <간신> <그놈이다>의 이유영이 맞을까. 저 배우는 누구인가.


“내 영화를 보러 가도 관객이 나를 몰라본다”고, 예능에서 에피소드 삼아 말했지만 정말이지
이유영은 출연작마다 얼굴 생김이 달라 보인다. 다음 영화로 옮겨갈 때마다 전작에서의 얼굴
을 완전히 지워버리고 다른 얼굴로 갈아탄다. 가정폭력을 당하면서도 애를 들쳐업고 일하러
나가는 생활력 강한 민경(<봄>), 왕의 눈에 들기 위해 방중술을 펼치는 조선 기생 설중매(<간
신>), 귀신을 보는 덕분에 살인 사건을 예견하는 시은(<그놈이다>). 역할이 처한 상황이 명확
했기에 연기도 뚜렷했다. 하지만 어디 홍상수 감독 영화가 그렇던가.
홍상수 감독이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의 민정 역에 대해 이유영에게 설명한 것은 딱 두 가지
였다. 영수(김주혁)와 민정은 연인이다. 민정은 옷 만드는 걸 배우는 여자다. 이 두 가지에 근
거해 민정을 상상해야 했다.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당일 대사를 외우는 것이었다. “그날 대
본을 받아서 한두 시간 안에 찍어야 하니 대사 외우는 게 가장 힘들었어요. 처음엔 너무 신이
났어요. 대본이 너무 재미있어서. 이 재미있는 걸 잘 살려서 연기하고 싶은데 시간이 너무 부
족한 거예요. 왜 시험 보기 직전에 시간이 조금만 더 있으면 좋겠다 싶잖아요. 매일 그런 마음
이었어요. (웃음)”


이제야 알 것 같은
<우리 선희>의 선희(정유미)가 세명의 남자를 며칠에 걸쳐 만나듯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의
민정 역시 세명의 남자를 며칠 사이에 만난다. 동시에 마주치기도 하고, 시간 차를 두고 엇갈리
기도 한다. 어떤 남자 앞에서는 너무나 민정이면서, 또 다른 남자 앞에서는 까맣게도 민정이 아
닌 여자. 이 여자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걸까? “촬영할 때에는 내가 누군지 알아야 하니까 계속
감독님한테 물었어요. 감독님, 이 여자는 누구고 아까 그 여자는 누구예요? 정말 닮은 여자예
요? 아니면 한 사람이 거짓말하는 거예요? 우리 영화는 무슨 영화예요?” 답답해하는 이유영에
게 홍상수 감독은 이렇게 답했다. “글쎄요, 나도 모르겠네. 시사 때 보고 유영씨가 얘기해줄래
요?” 인물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연기를 해야 하니 확신을 가질 수 없어 힘들었지만 완성된 영
화를 보고 생각했다. 완벽히 알았다면 저렇게 마법과 같은 순간들이 온전히 담기지 못했을 거
라고. “촬영 후에도 우리 영화가 무슨 내용인지 잘 몰랐어요. (웃음) 완성된 영화를 스페인에서
처음 봤어요(<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은 스페인 산세바스티안국제영화제에 초청받았다).

처음 보는데 한명의 관객으로서 이 영화가 너무 좋은 거예요. 감독님한테 이제야 민정이가

누군지 알 것 같다고 했어요.”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은 연남동에서 찍었다. 주로 북촌이 배경이었던 홍상수 감독의 카메
라가 낯선 동네를 찾으면서 이유영도 난생처음 해본 것들이 많았다. 연남동도 처음 가봤고, 술
마시며 연기한 것도 처음이었다. 민정은 술을 좋아하고, 좋아하는 것을 왜 참아야 하는지 모르
겠다고 말하는 여자다. 민정과 그녀의 남자들은 술을 마시다 만나고, 민정이 하는 말들은 주사
인지 진짜인지 모를 때가 있다. 스페인의 한 관객은 지나가다 이유영을 알아보고는 “술 많이 마
시지 말라”고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그때 그녀는 감독, 선배 배우들과 술을 마시고 있었다.
불우하거나 사랑받지 못하는 역할을 해왔던 이유영은 로맨틱 코미디를 하고 싶단 말을 종종 했
다. 그렇다면 세명의 남자(영수, 재영(권해효), 상원(유준상))의 애정을 받는 민정을 연기하는

일은 해갈의 시간이었으리라. “영화 찍는 내내 너무 행복해서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
했어요. 이런 일상 연기를 해보고 싶었거든요. 평소 제 모습이 묻어나오기도 해요.”


그 순간만큼은 완전한 진짜
영화에서 이유영의 목소리는 오붓하다. 영수와 말다툼을 하거나, 술자리에서 추파를 받아넘
길 때 일정한 높이의 목소리는 잠시 쉼표를 찍었다가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 서로 할 말만 하는
것 같은데 결국 통하고 마는 민정과 영수의 대화는 너무 당연해 연기를 하는 것 같지 않다. 평
소의 이유영도 그렇게 말하고 답할 것 같았다. “제가 감독님한테 했던 말 중에 대사로 나온 게
하나 있어요. 남자는 애기 같아요, 라는 대사요. 나이가 아주 많거나 설령 아빠라고 해도 남자
들은 가끔 어린애 같거든요.” 민정은 그 뒤에 이렇게 덧붙이지만 그 말을 이유영 본인이 한 것
인지는 확실치 않다고 한다. “남자들은 늑대 같거나, 애기 같아요. 근데 왜 이렇게 괜찮은 남
자가 없죠?”

이유영은 2015년에 신인상을 6개나 수상했다. 대종영화제에서 <봄>으로 신인상을 수상하고
일주일 후에 <간신>으로 청룡영화제에서 또 수상하는 식이었다. 올해에는 개봉작이 없었지만
집에 있는 시간이 거의 없이 유랑했다. “강원도에서 단편영화 <토끼와 곰>을 찍고, 스페인도
다녀오고 얼마 전까지 충남 홍성에서 <원더풀 라이프>를 촬영했어요. 마동석, 김영광 배우와
함께 나와요. 지방 촬영이 많아서 서울에 거의 없었던 것 같아요. 사실 딱 맞는 역할, 이게 정말
하고 싶다 하는 역할을 기다리는 시간이 올해는 길었어요.” <원더풀 라이프>에서 이유영이 맡
은 현지 역은 생선 장사를 하는 스물일곱살의 여자고, 김영광이 연기하는 태진과 연인 사이이
다. “쉴 틈 없이 연기를 하고 싶은 마음도 크지만 그냥 이유영으로 행복하고 싶은 마음도 있어서,
그게 괴로운 것 같아요. 데이트하는 장면을 찍는 데 너무 행복한 거예요. 아무 걱정 없이 사랑하
는 사람과 소소한 행복을 느끼면서, 나도 누군가와 이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진짜 사
랑을 찾고 싶다. 끊임없이 사랑을 하고 그를 완벽히 믿어주고 싶다. 이 강렬한 열망은 <당신 자
신과 당신의 것>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


“있는 그대로의 그 사람을 사랑하고, 그를 다 믿어주는게 사랑이라고 말하는 영화 같았어요.

영화를 보고 진짜 사랑을 찾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남들이 뭐라 하든 그 사람을 믿어주는

진짜 사랑이요.” 다시 민정의 눈빛으로 정면을 직시하며 이유영이 말했다.

“우리 진짜 사랑을 해요. (웃음) 너무 좋잖아요.” 그 순간만큼은 언제나 진짜가 돼버리는

이유영이 조만간 영화에서 진짜를 또 보여줄 것만 같았다. 그녀는 연기가 아닌 진
짜를 해낼 것이고, 우리는 그때도 이유영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할지도 모른다.


글 김송희  사진 최성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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