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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캠퍼스씨네이십일 Dec 08. 2016

안투라지, 동주, 그리고 쓸만한 인간 박정민 인터뷰

산문집 낸 배우 박정민 인터뷰


박정민의 산문집 <쓸 만한 인간>은 2013년 6월에 시작해 2016년 8월까지, 시간순으로 정렬돼 있다. 박정민이 지난 3년간 월간지 <톱 클래스>에 ‘언희’라는 이름으로 연재한 글을 모은 책이다. 가끔은 한달간 쉴 새 없이 촬영이 있고, 또 여느 때에는 지나치게 한가해 쓸 소재가 고갈되기도 하는, 생활이 불규칙한 배우가 3년간 매월 연재를 하다니. 게다가 배우의 산문집임에도 어느 귀퉁이에도 얼굴 사진 하나 없다. 배우의 이름을 완전히 지우고 그냥 어느 20대 청년의 기록으로 쉽고 재미있게 읽혔으면 해서다. 그렇다면 성공이라고, 재미있어서 두 시간 만에 다 읽었다고 했더니 박정민은 진심으로 기뻐했다. 하지만 빨리 읽고 재빨리 중고 서점에 내놓지는 말라고 했다. 

<톱 클래스>의 글을 챙겨보는 독자들이 은근히 많더라. 연재는 어떻게 하게 됐나. 
싸이월드 다이어리에 글을 정성껏 쓰는 편이었는데, <파수꾼>의 마케팅팀 과장님이 재미있게 보시고 영화 블로그에 게시판을 하나 열어주셨다. 게시판 이름이 '귀여운 베키의 일기'였다. 박소영 기자님(<톱 클래스> 기자)이 그 글을 보고 칼럼을 제안해서 쓰게 되었다. 물론 책으로 나오게 될 줄은 그때도 몰랐고, 지금도 신기하다. 


책을 읽고 다른 글들도 읽고 싶어서 SNS를 찾아봤는데, 전혀 안 하더라. 하고 싶은 말이 정확히 있는 배우라 당연히 SNS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안 한다. (웃음) 하고 싶은 말 다 하다가 실수할까봐. 쓰고 싶은 글이나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에는 그냥 일기를 쓴다. 다행히 한달에 한번 연재하는 게 나한테는 출구 같다. 쓰고 싶은 주제에 대해 쓸 수 있으니까. 


글을 빨리 쓸 것 같다.
맞다. 빨리 쓴다. 그런데 뭘 쓸지 결정하는 데 오래 걸린다. 정해지고 나서 ‘이거다’ 하면 금방 쓰는데 그걸 결정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소재를 정하는 게 어렵다.


3년 전 연재를 시작할 때에 비해 지금은 스스로 검열하면서 쓰는 부분도 생겼을 것 같다. 그때에 비해 이름도 알려졌고 글을 찾아서 보는 팬들도 많아졌는데. 
맞다. 그런데 내 위상이 달라져서가 아니라 연기를 하면서 그동안 만나는 사람들도 많아졌고 배우는 게 생기면서 내 생각이 달라져서 조심하는 부분이 생겼다. 굳이 드러나지 말아야 할 것도 있다는 걸 알게 됐고, 표현도 지나치게 직설적으로 하지 않으려고 한다. 예전에 비해 다 드러내지 않는다. 


빨리 쓰지만 문장을 잘 읽히게 다듬는 것 같은데.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재미있게 ‘라임’  맞춰서 쓰는 부분은 막 쓸 때 나오는 대로 놔두는 거다. 순간적으로 개그가 나올 때가 있는데 그냥 놔둘 때가 있다. 문장은 아무래도 신경이 쓰인다. 내가 한 문장을 두번 읽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한번 읽었는데 ‘뭔 소리지?’ 하고 다시 돌아가 읽을 때가 있지 않나. 나부터도 독자로 그렇게 읽는 걸 싫어하니까 쓸 때에도 한번에 읽히게 쓰려고 한다. 


평소에 어떤 글 좋아하나. 
재미있는 글을 좋아한다. 내가 읽고 싶은 글을 쓰는 것 같다. 작가 중에서는 김영하, 박민규 작가를 좋아했다. 김영하 작가 초반 작품들이 굉장히 유쾌하다. 예전엔 책을 잘 안 읽었는데, 두분 소설로 독서에 재미를 붙였다. 서점 안에 있는 문구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시간이 너무 안 가니까 서점에 있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특히 <오빠가 돌아왔다>를 진짜 좋아했다. 가장 애정이 가는 건 내가 재미있게 읽은 책인 것 같다. 인터넷으로 내 책 리뷰를 찾아볼 때가 있는데 어떤 분이 “길거리에 걸어가면서 책을 읽은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고 쓰셨더라. 그 리뷰 보고 기분이 좋았다. 내가 김영하 소설을 그렇게 읽었으니까. 길에서 휴대폰 들여다보는 것처럼 걸어가면서 읽었다. 너무 재미있어서 다음 장이 궁금하니까. 내 책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썼다. 


심지어 책에 ‘책’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책책책을 읽읍시다!라고. (웃음) 지금도 책 많이 읽나. 
옛날보다는 많이 못 읽는다. 대본을 봐야 하니까. 대본 외에 다른 걸 읽고 있으면 죄책감이 든다. 얼른 대본보고 연습해야 하는데 독서를 하고 있으면 노는 기분이 든다. 요즘은 연극을 준비 중인데 대사량이 많아서 다른 책 읽을 엄두가 안 난다. ‘로미오’  역할이라 대사가 엄청 많다.


문근영과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을 공연한다. 한창 연습 중이겠다. 
연말에 시작한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고전이라 대사도 길고 어휘도 예스럽다. 고전의 대사를 훼손하지 않고 하오체를 해요체 정도로만 바꿨다. 대사를 아직 다 못 외웠다. 예를 들면 대사들이 “참혹한 청춘의 시간은 너무 길구나” 이런 식이다. (웃음) 오글거리는 대사를 자연스럽게 하는 게 내 미션인 것 같다. 


연극 무대도 오랜만인데 특히 고전이라 어려울 것 같다.
누군가 그런 이야기를 해주셨다. 남자배우의 인생에 로미오가 있는 배우가 얼마 안 된다고. 미소년 로미오는 아니지만 잘해내고 싶다. 참 부끄럽지만,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극으로 본 적이 없다. 그 내용을 다 안다고 생각하지만 원작을 다 읽은 사람도 별로 없을 거다. 400년 넘게 사랑받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 같다. 해보니까 알겠다. 시대를 관통하는 청춘의 정서가 있더라. 안타깝지만 아주 보편적인 사랑이 극대화된 이야기이고, 열여섯이니까 그런 사랑을 할 수 있었을 거다. 지금 되게 좋다. 너무 어렵고 미치겠고, 대사가 안 외워져 머리가 터질 것 같은데 내 인생에 로미오가 생겼다는 게 좋다.  


박정민의 로미오는 어떤 로미오인가. 
아마 장담은 못하겠는데, 만약 쓸 거면 ‘장담 못한다’고 꼭 써달라. (웃음) 적어도 사람들이 기존에 알던 로미오는 아닐 거다. 고정관념 안에 있는 고상한 로미오는 아니다. 


책에 보면 대본 리딩 때 식은땀을 흘릴 정도로 긴장하고, 관심이 본인에게 집중되면 얼굴이 빨개진다고 썼다. 여전히 그런가. 
여전히. 오늘도 그러고 왔다. (웃음) 배우 중에 나 같은 사람도 있고, 리딩을 편하게 하는 사람도 있고 그런 것 같다. 기본적으로 내가 준비가 덜됐을 때 관심이 나에게 집중되는 게 힘든 것 같다. 이 텍스트를 완벽히 숙지하지 못했을 때 사람들이 내 대사를 듣는 게 너무 싫다. 내 최대 능력치가 100이라고 할 때, 스스로 준비가 30밖에 안 되었다고 생각할 때 누가 시키면 10밖에 못한다. (웃음) <동주>도 마찬가지였다. 첫 리딩할 때 내가 너무 못했다. 다들 잘하는데 내가 제일 못해서 이준익 감독님이 걱정을 많이 하셨다. 워낙 긍정적이신 분이라 크게 나무라지 않으셨는데, 나는 알지 않나. 내가 오늘 제일 못했고, 감독님이 실망하셨다는 것을. 그게 느껴지니까 힘들었다. <동주>는 서로 부족한 것을 이해해주고 기다려주는 분위기였다. 감독님이 “결과보다 과정이 소중한 영화”라고 하셨는데, 정말 그랬다.

 

<동주>는 결과도 소중하지 않나. (웃음) 백상에서 신인남우상도 탔다. 영화를 준비하면서 자비로 용정에 있는 송몽규 선생 묘지년에 다녀온 보람이 충분하겠다. 
참, 내가 그렇게까지 했네. (웃음) 지난해 초 촬영을 며칠 남겨두고 급하게 갔다. 그때 얼마나 무서웠는지. 연변은 괜히 무섭다는 편견도 있었고, 중국어도 못하는데 혼자 간 거라 막막했다. 가자마자 택시를 탔는데 옆 택시들이 내가 탄 택시를 발로 찼다. 손님 뺏겼다고. 택시기사에게 택시비도 사기 당하고. (웃음) 부랴부랴 준비 없이 가서 길도 못 찾고 하루 종일 걸었다. 나는 누구이고 여긴 어디인가, 근데 이 길을 송몽규 선생님도 다니셨겠구나. 별별 생각을 다 하면서 걸었던 기억이 난다. 상 타는 무대에서 그때 생각이 나더라. 


며칠 뒤면 청룡영화제가 열린다. 후보에 올랐던데, 왠지 탈 것 같다. 
에이, 기대도 안 한다. 나보다 훨씬 훌륭하신 분들이 후보라. 백상에서도 상을 주셔서, 못 탈 것 같다(기자의 예언이 적중하여 박정민 배우는 청룡영화제 신인남우상을 수상했습니다. 저 무당임. 비선실세 시켜주세요.-편집자). 


<동주>를 보고 “연기 좋다는 이야기 많이 들리더라. 앞으로 잘될 거”라고 덕담하는 선배에게 “이거 다 지나가는 일이고, 다시 생계랑 싸워야죠”라고 문자 보냈다는 인터뷰를 봤다.  <동주>가 잘됐지만, 내 생활에 변화는 그리 많지 않다. 그전에도 다음엔 무슨 작품을 해야 하나, 왜 일이 많이 없을까 고민했는데 지금도 마찬가지다. 운 좋게 드라마에서 주연도 하고 있지만 모르시는 분이 더 많을 거다. 약간 비관주의자인 것 같다. 

책에서는 마지막 문장마다 ‘전부 다 잘될 거다’라고 썼던데. (웃음)
그게 나한테 하는 말이기도 하다. 누구한테 위로가 되고자 시작한 글도 아니었고. 근데 쓰다 보니 그 말에 힘을 얻는다는 분도 계시니까 자주 쓰게 된다. 일종의 주문 같은 거다. 나는 중요한 사람이라고 나 자신을 다독이는 거다. 인생이 다 그런 것 같다. 지금 힘들어도 나중을 바라보고 사는 거니까. 

어떤 사람들을 독자라고 상상하면서 쓰나. 
정확히 누가 볼 거라고 생각 안 하고 쓴다. 아무래도 20, 30대가 많이 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한다. 읽는 분들이 나에게 거리감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다. 내 직업 때문에 ‘다른 세상 사람의 글’이라고 여겨지고 싶지 않아서 배우 활동 이야기는 많이 안 쓴다. 원래 ‘영화, 연기, 촬영’ 주제로 써달라고 연재를 시작했는데 잘 못 쓰겠더라. 나도 잘 모르는 세계에 대해서 쓰는 게 건방져 보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영화에 대해 쓰다 보면 다른 배우들 이름도 언급해야 하는데, 그것도 실례이고. 같이 연기한 동료 배우 이야기도 웬만하면 안 쓰려고 한다. 


첫 주연을 맡은 <안투라지>가 방영 중이다. 기대에 비해 혹평을 받아서 실망하진 않았나. 
음, 1, 2회는 넷이 모여서 같이 봤다. 사전 제작이어서 촬영이 끝난 지 꽤 됐다. 오랜만에 다시 보니까 새록새록하더라. 이미 내 손을 떠난 일에는 크게 실망은 안 한다. 결과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거니까. <안투라지>는 사람들이 크게 남았다. 강준이, 광수 형, 동휘 형, 진웅이 형. 다 나에게 중요한 사람이고 촬영하는 동안에 너무 즐거웠다. 그래서 촬영 끝나고도 같이 모여서 드라마 보는 거다. (웃음)


‘호진’은 네 남자 사이에서 중심을 잡는 역할이다. 다른 역할에 비해 평범한 성격이고 스타인 친구를 옆에서 바라보는 매니저다. 그래서인지 1, 2회에서는 약간 주눅 들어 보이더라. 
너무 튀지 않으려 연기한 것도 있고, 조진웅 선배랑 같이 하는 장면에서는 일부러 긴장한 모습으로 연기했다. 아, 그런데 첫 촬영 때 나도 놀랐는데 카메라 앞에 내가 굉장히 오랜만에 선 거였더라. 영화 끝나고 7개월 만에 연기한 거였다. 첫 촬영 때 기분이 이상하더라. 드라마도 오랜만인데, 카메라도 오랜만이라. 드라마에 적응하는 데 2, 3일 걸린 것 같다. 


책에 부모님 이야기가 많다. 특히 어머니가 코믹하신 것 같다. 백상 시상식에서 아들 수상장면 보면서 너무 우셔서 송중기의 중국 팬이 휴지를 줬다는 부분. (웃음)
우리 어머니가 진짜 웃긴다. 그래서 웃긴 에피소드 다 쓰는데 엄마는 좀 창피해하신다. 읽는 사람도 많으니까 좋은 것만 써달라고 하신다. 아버지가 책을 150권 사셨다. 회사 사람들에게 선물 하신다고. (웃음)

어쩌면 박정민의 20대를 정리하는 책일 수도 있겠다. 돌이켜보면 20대가 어땠나. 
참… 열심히도 살았다. 정신없었다. 아무것도 모르니까 그냥 앞만 보고 달렸다. 19살에 극단 들어가서 지금까지. 연기가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할까.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면서 시간이 갔다. 하다 보니 30살이 돼 있더라. 여행도 많이 하고, 연애도 하고 바빴다. 


2016년도 끝나간다. 배우로서 많은 걸 이룬 해다. 
<동주>도 개봉했고, 드라마도 들어갔고 책도 나왔고, 공연도 내가 했던 것 중에 가장 큰 공연이고. 정말 시간이 빨리 갔다. 벌써 한달 남았다고? 맙소사. 그러면서 놀랐다. 올해 의미 있었던 사건은 개인적으로는 상 받은 것. 사실 그런 날이 오리라고 기대도 안 했고 상상도 안 해봤다. 가끔씩 내가 잘하는 일이 아닌데 좋아한다는 이유로 집착하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될 때가 있는데, 상 받는 날에는 ‘그래도 한동안 연기 더 해도 되겠구나’ 싶었다.
 
연극 이후에 결정된 영화는 없나. 
없다. 계속 불안한 건 안고 가는 것 같다. 조급해지는 마음이랑 계속 싸운다.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자’ 그 마음으로 며칠 버티다가 또 걱정이 훅 올라오고. 그런데 이준익 감독님이 항상 해주시는 말씀이 ‘빨리 가려고 하지 말라’고 ‘너는 천천히 가는 게 맞다’고. 그런 말씀 해주시는 분들이 주변에 많다. 내가 가진 외적 조건이 젊을 때 한방에 인기를 얻을 만한 배우가 아니다. 당장 내가 크게 잘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지금 당장은 그런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마음도 편하고. 계속 싸우는 거다. 조급하지 말자는 생각을 하면서. 


글 김송희·사진 백종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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