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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캠퍼스씨네이십일 Sep 08. 2016

영화제 프로그래머가 되고 싶다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유지선 프로그래머

             

영화제 프로그래머

Programmer(명사)

- 영화제의 방향설정, 출품작 선정, 각종 이벤트 계획 등 영화제 개최 전반에 대하여 총괄한다.

현재 국내에는 60여명 정도가 프로그래머로 활동 중이다.         



올해로 스무살을 맞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 이하 부천국제영화제)가 역대 최다 320편의 다양한 장르적 쾌감을 선사하고 7월 막을 내렸다. 영화가 안겨준 판타스틱한 순간들, 그 뒤에는 영화제 프로그래머의 손길이 곳곳에 묻어 있다. 영화제 특성에 맞게 영화를 선정하고, 섹션을 나누고, 영화제에 올 감독과 배우를 섭외하고, 상영시간표를 짜고, 영화제 책자에 들어갈 영화 설명을 쓰고…. 6년째 부천국제영화제에서 프로그래머로 활동 중인 유지선을 만나 영화제 프로그래머에 대해 물었다.         


대학에서 일본문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는 영화이론을 전공했다. 영화 그리고 영화제에 대한 호기심을 갖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사실 대학교를 졸업했을 때만 해도, 기자나 출판 관련 일을 하고 싶었다. 그러다 우연히 2003년에 부천영화제에서 자막 담당 스탭으로 일을 하게 되었다. 자막 작업을 하면서 단기간에 많은 영화들을 보다 보니 영화를 보는 것에 대한 즐거움이 생기더라. 또 자막팀의 업무 자체가 사람들과의 협업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과 팀 안에 영화에 대한 열정이 공존한다는 것이 너무 좋았다. 그때의 경험들을 기반으로, 대학원에 진학하여 영화 공부를 하게 되었다. 대학원을 다니면서도 부천영화제 단기 스탭 일은 계속했었다.   

 

부천국제영화제에 프로그래머로 합류하게 된 때는 언제인가.

부천국제영화제에서 기술팀 스탭으로 몇년간 일을 하다가 2006년에 프로그램팀으로 옮겼다. 팀원으로 시작해서 프로그램 팀장까지 맡았다. 이후 2011년에 프로그래머로 합류하게 되어 지금까지 일하고 있다.     

현재 부천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는 총 세명이다. 프로그래머들 사이에서 역할 분담은 어떻게 이루어져 있나. 

김영덕, 김세윤 프로그래머가 미주와 유럽 지역의 영화를 담당하고 있다. 김세윤 프로그래머는 올해 한국의 단편영화까지 맡아 업무를 진행했다. 그리고 내가 아시아영화를 맡고 있다. 외부에 조력자도 있다. 올해의 경우 3명의 객원 프로그래머가 도와주었다. 김철수, 주정현 객원 프로그래머가 중화권 작품들을, 파올로 베르톨린 객원 프로그래머가 동남아시아와 인도 작품들을 담당했다. 나는 일본 작품들을 중점적으로 맡아 진행하고 있다.     

영화제 일이라는 것이 일년 단위로 반복되는 업무다. 영화제 프로그래머의 일 년은 어떻게 흘러가나.

부천국제영화제가 끝난 직후인 8월에는 영화제 결산과 정리 작업들을 진행한다. 그러고 나서 9월부터 슬슬 영화제들을 다니면서 다음해의 프로그래밍 작업을 시작한다. 10월에는 부산국제영화제와 도쿄국제영화제를, 11월에는 타이베이금마장영화제를 중심으로 출장을 간다. 해가 바뀌면 베를린국제영화제, 홍콩국제영화제, 칸국제영화제 등을 순차적으로 다녀온다. 대략 7개의 영화제들을 방문해 상영작을 보고, 마켓이나 미팅을 통해 작품 수급을 진행한다. 이처럼 작품을 선정하는 작업을 일년간 진행하게 된다. 그리고 6월 초가 되면 그해의 부천국제영화제의 작품 선정을 마치고, 영화제에 관한 기자회견을 진행한다.     


작품을 선정하는 작업은 어떻게 진행되는가. 

전세계 작품들의 흐름을 읽으면서 다음 영화제의 디자인을 구성하는 편이다. 그러기 위해서 최대한 많은 작품들을 보려고 노력한다. 그 과정을 통해 어떻게 섹션들을 묶어서 상영할지를 기획한다. 작품을 선정할 때는 세 가지 조건을 중점으로 둔다. 목적과 경험, 그리고 발견이다. 첫 번째, 작품 선정의 ‘목적’은 늘 관객에게 두는 편이다. 부천국제영화제는 장르 팬들이 만들어주는 영화제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관객에 대한 데이터 분석은 아주 중요하다. 그 분석을 통해 어떤 영화를 관객에게 선사해줄 수 있는지에 대해 늘 고민해야 한다. ‘발견’은 새로운 영화들과 신인들을 발굴해내는 일이다. 이것은 영화제가 꼭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한다. 이 두 가지 지점들을 가지고 가는 방법은 ‘경험’밖에 없다. 작품들을 많이 보아야 좋은 영화를 발견했을 때, 그 영화를 어떤 주제로 가지고 갈 수 있는지도 잘 풀어낼 수 있다.      


선정한 작품들을 토대로 어떻게 섹션을 구성하는지도 궁금하다.

올해의 경우, ‘월드 판타스틱 레드’와 ‘월드 판타스틱 블루’라는 새로운 섹션을 만들었다. 관객이 영화를 보다 쉽게 구분할 수 있도록, ‘월드 판타스틱 레드’에는 호러 및 스릴러의 정통 장르영화들을 배치하고, ‘월드 판타스틱 블루’에는 코미디, 뮤지컬, 로맨스 등 소프트한 장르영화들을 배치하여 섹션 구성을 했다.     

영화제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특별전’은 해마다 어떻게 새롭게 기획되는가.

특별전은 영화제의 정체성을 보여줄 수 있는 중요한 섹션이다. 영화제가 끝나자마자 기획 작업에 돌입한다. 이 작업은 영화제에서 어떤 담론을 형성하느냐에 대한 부분과 맞닿아 있어서 부대행사와 함께 기획하여 특별전을 준비하기도 한다. 이밖에도 감독이나 작가, 배우들의 섭외도 함께 진행되기 때문에 짧게는 1년, 길게는 2~3년 정도의 시간을 들인다.     

영화제 전반적으로 프로그래머의 손이 안 닿는 곳이 없다. 게스트 섭외하는 일에도 참여하고, 상영시간표 구성도 직접 참여한다고 들었다. 

내 경우엔 특히나 가능한 실무를 많이 맡으려고 하는 편이다. 실무를 많이 맡을수록 일이 더 재밌어지는 것 같다. (웃음) 상영시간표는 극장점유율과 맞닿아 있기 때문에 전적으로 프로그래머가 맡아서 상영시간표를 구성한다. 상영시간표를 짤 때 고려해야할 요소나 예기치 못한 변수가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400석 극장을 매진시킬 수 있는 작품이라고 판단되지만, 좌석점유율 1위 탈환을 위해 일부러 작은 극장에 배치하는 경우다. 또 한 극장에서만 상영이 가능한 상영본 형식을 가지고 있는 작품일 경우는 어쩔 수 없이 상영이 가능한 해당 극장에 배치하여 상영하는 경우도 있다.    


영화제 프로그래머로 일하면서 힘든 부분은 무엇인가.

프로그래머는 혼자서 모든 계획을 수립하고, 업무를 진행해야 한다. 이 점이 가장 힘들었던 것 같다. 언뜻 보면 자유로워 보이지만(비상근직 형태로 일한다.- 편집자), 이것이 결코 쉽지 않더라. 또한 영화제 외엔 다른 경험이 많지 않았던 터라 전문성을 키우는 데 노력이 많이 필요했다. 영화제 프로그래머는 전문가적인 영역들을 많이 습득해야 하고, 여러 면에서 성숙해야 한다. 이런 것들은 대부분 경험에 의해 반추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 경험들을 쌓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프로그래머 이전에 경험한 영화제 스탭 활동이 도움이 되었나. 

그 경험들 덕분에 공공기관이 영화제에 원하는 것, 그에 대해 영화제가 중점으로 두어야 할 지점들을 파악하는 것이 조금 더 수월했던 것 같다. 현재 국내의 많은 영화제들은 시나 외부의 지원을 통해 운영되고 있다. 오랜 스탭 활동을 통해 영화제의 공익성 혹은 공공성의 필요성을 체득했다.   

  

영화제 프로그래머는 어떤 절차로 채용되나. 

결원이 생길 경우에 공개 채용을 진행한다. 가장 중요한 절차는 면접과 지원자의 포트폴리오다. 또 영화제에서 어떤 프로그래밍을 할 것인지에 대한 계획서를 작성하여 제출하기도 한다. 프로그래머는 영화제에서 전문가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에, 채용 시 지원자의 경력을 중요히 볼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지원자가 어떤 영화 일을 해왔고, 어떤 경험들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실질적인 경력을 중요하게 보게 되는 것 같다.     

영화제 프로그래머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영화제 단기 스탭 경험이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것 같나.

여러 영화제의 단기 스탭 경험들을 통해 전문성을 터득하는 것도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활동하는 영화제 프로그래머들을 보면 영화 외의 경험이나 경력을 가진 분들도 많다. 그런 부분들이 잘 조응된다면 가장 좋을 것 같다. 무엇보다 어떤 것이든 간에 본인이 전문적인 영역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외국어 실력도 중요한 요소 중 하나겠다.

해외 영화제에서 영화를 보고, 영화를 가져오려면 그들과 의사소통이 되어야 한다. 때문에 언어 능력을 첫 번째로 꼽겠다. 기본이 되는 외국어는 영어지만 제2외국어도 중요하다. 영화제에서는 각 지역의 전문가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제2외국어를 공부할 계획이라면, 본인이 어떤 나라의 영화들을 주력으로 공부하고 싶은 지에 대해 먼저 생각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외에 프로그래머를 꿈꾸는 학생들이 준비해두면 좋은 것들은 뭔가.

물론 영화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아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지식은 아카데미에서 조금씩 배워나가면 된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여러 경험을 통해 본인이 스스로 영화제에 대한 연구를 해야 하고, 어떤 영역이든 간에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영화제에 접근하는가도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다.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자유로운 사고방식을 가진 젊은이들이 영화제 프로그래머가 되면 좋겠다. 그런 분들이 그들만의 창의적인 방식으로 영화제를 이끌어간다면 국내의 영화제들이 정말 재밌게 변화할 수 있을 것 같다.


진행 심은하 / 정리 최지원 / 사진 최성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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