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그림이야기

<사랑의 불시착>_훈데르트바서 Friedensreic Hundertwas

by 김상래

평일엔 TV를 안 보니까 주말에 몰아서 보게 되는데 요샌 주말마다 '사랑의 불시착'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번 주에도 내 레이다망에 걸린 한 장면.

이 장면으로 훈데르트바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2017년 아이가 7살 때 TV광고에서 훈데르트 바서전에 대한 전시 이야기를 보더니 전시회를 가자고 졸라댔다.
생전 처음 듣는 사람이라 검색부터 시작했더니 익히 알고 있는 스페인에 건축가는 누구? 하면 가우디가 떠오르듯.
오스트리아의 가우디는 누구? 하면 딱 떠오를 만큼 유명한 건축가이자 화자이자 환경운동가였다.


그 이후로 전시회도 다니고 그림들도 보면서 아이와 함께 자연스레 훈데르트바서의 팬이 되어버렸다.



프리덴슈라이히 훈데르트바서 (Friedensreich Hundertwasser) 화가, 건축가


이름을 하나씩 살펴보면 Friedens 풍요로운 reich 곳에 Hundert 백개의 wasser 물
풍요로운 곳에 흐르는 백개의 물
한자로는 '백수百水'(일본 여성과의 결혼이 있었기에 한문 인장도 그림에 자주 등장한다)


1928년 12월 15일, 오스트리아 빈- 2000년 2월 19일
https://www.hundertwasser.com/


우리는 자연이 우리 위에 존재하는 그런 집을 지어야 합니다.
집을 짓느라 파괴한 자연을 지붕 위에 올려놓아야 합니다.
지붕 위에 자연은 집을 올려놓느라 짓밟은 지구의
일부입니다.
_훈데르트바서
수직정원의 창시자 훈데르트바서

색과 선에 마법을 건 행동하는 화가, 토털 아티스트, 건축가, 오스트리아의 3대 화가 중 한 사람.
구스타프 클림트, 에곤 쉴레, 훈데르트바서
오늘날 수직정원, 옥상정원, 게릴라 가드닝 Guerrilla Gardening의 시초를 만든 사람.
(게릴라(기습적인 행동)와 가드닝(정원 가꾸기)의 합성어로, 도심 속 방치된 공간에 게릴라처럼 몰래 꽃과 나무를 심어 가꾸는 환경 개선 운동을 말한다.)

1928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나 12살 때 세계 2차 대전을 겪고 유태인 어머니와 친척집에서 유년기를 보내게 된다.

전쟁의 포탄 속에서 전쟁에 물들지 않은 풍경을 보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고 전쟁이 끝나는 20살 무렵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일생을 통틀어 3개월 하고 하루만 미술수업을 받아 보고 정규 교육은 받아본 적이 없다. 이것은 그의 그림에 커다란 장점을 안겨주는데 자신감 있는 보색을 배치.
여러 나라를 두루 다니면서 그곳의 흙들을 안료에 섞어 직접 물감을 만들어 사용했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자신의 색으로 그림을 완성한 사람.(다른 그림들보다 지속력이 좋다.)
그는 자신의 색을 아무 가치의 색이라 표현한다.

영화 건축학개론-남주가 제주도의 여주 집을 건축할때 옥상정원을 만들어준다. 이것의 시초!
조각에는 빛이 필요하고 그림에는 색채가 필요하다.
그림은 색채 없이 존재할 수 없으며 비가 오면 색은 생명을 가지고 살아난다.

1949년 한 번은 밀라노 여행 때 비에 젖어 빛나는 회당을 바라보며 태양은 사라지고 빛이 사라지고 물들이 살아나는 것을 보았다. 비, 물이 지니는 생명력, 물은 항상 변화한다.
자신의 이름을 한자로 百水라 짓고 한문 인장을 만들어 그림에 찍는다. 4년간 일본에서 살 때 일본인 여성과 결혼을 했었고 일본 판화계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또 한 번은 범선을 개조할 일이 있었는데 그 범선에 'Regentag'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뜻은 독일어로 '비가 내리는 날'

지금은 흔히 볼 수 있는 게릴라 가드닝

훈데르트 바서는 신이 만든 것엔 직선이 없다고 생각했다.
나선은 생명의 시초, 불규칙한 나선들은 삶과 죽음을 의미하는데 사실, 그것은 순환되는 하나라 보았다.
나무들이 자라고 숨 쉬는 것처럼 자신의 작품도 마치 식물 같다고 생각했다.
콘셉트 없이 계획 없이 작업을 하고 마시던 커피가 캔버스를 적시면 지우지 않고 그 자국을 시작으로 마치 식물이 자라듯 그림이 자라도록 작업하였다.

행복한 죽은 이들의 정원 1953 유화

<꿈으로부터 추수한 수확물, 꿈의 열매>


그의 작품엔 사물을 사람의 형상으로 의인화한 것이 많은데 그중 집이 대다수다.
몸, 의복, 집(나의 감정)으로 사람에겐 3개의 피부가 있다고 생각한 훈데르트 바서.

노란 집들 1966 혼합매체
30일간의 팩스 페인팅 1994 혼합매체

그는 '그린 유토피아'를 꿈꾸며 건축물도 많이 디자인했는데 진정한 건축이란 사람들이 이사 온 순간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늘 있던 곳처럼 자연스러운 장소.

훈데르트바서 하우스-자연스러운 건물
'반지의 제왕' 호빗마을은 훈데르트바서의 '로그너 바우 블루마우'를 보고 착안해냈다고 한다.

훈데르트바서는 빠른 성공가도를 달렸지만 늘 검소했고(옷, 신발, 변기 등 집안 물건들 마저도 친환경적으로 만들어 사용했다.) 자연을 아끼며 대중들과 소통하기를 바랐다.

직접 변기 만든 훈데르트바서
이렇게 받아진 배설물들은 자연으로 보내준다
집안에서도 식물들이 자랄수 있도록 설계
직접 만들어 신는 신발

작품의 인기가 많아지다 보니 원하는 수요가 늘어나고 그러면서 자연적으로 그림의 가격이 높아지다 보니 판화작업도 하게 되었는데 기계적인 작업을 싫어해 판화가 나오면 일일이 다른 느낌으로 완성해 각각의 개성을 살렸다.
그렇게 각기 다른 개성의 작품들이 총 98점이다.

훈데르트바서는 이젤을 사용하지 않고 평생 탁자에 그림을 눕혀 놓고 그렸는데 이것은 그림을 상. 하가 없이 그리고 싶어서였다고 한다.
권위나 가식이 없었던 소탈한 그의 삶은 그림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완성된 작품들은 야외에 걸어 놓고 확인해 주변의 자연만큼 훌륭해 보일 때야 작품에 만족하곤 했다.

자연이 곧 스승이다.

훈데르트바서

관 없이 나체인 자신을 자신의 농장 안 나무 밑에 묻어줄 것을 유언으로 남기고 자신의 몸이 나무의 일부가 되어 순환하며 살아가기를 희망했다.
실제로 2000.2.19
태평양 항해 도중 사망한 훈데르트바서는 뉴질랜드 자신의 정원 나무 아래에 묻혀 자연과 하나가 되었다.

나무와 사람들을 위한 고층 빌딩 1984. 수채화

훈데르트바서는 창문의 권리, 녹색지붕들을 그림에 그려 넣어 간신히 살만하지만 애착을 가지기 힘든 집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화가이기도 하다.

왼쪽은 자신의 정원에서 살아 있을때 오른쪽은 자신의 정원 나무아래 뭍힌 곳
나는 그림들을 상상하며
눈을 반쯤 감습니다.
흉측한 크림색 대신
둔켈분트의 집들이 보입니다.
그리고 골함석 지붕 대신
옥상에는 녹색 풀들이 가득합니다.
나는 부식토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관 없이, 나의 땅 'Ao Tea Roa' 위
내가 심은 비치 나무 밑에 묻히기를 바랍니다.
나무들은 자라납니다.
둔켈분트는 "순수하게 강렬하고,
비 오는 날에 볼 수 있는 것처럼
약간은 슬픈,
어두운 색깔로 빛나는"이라는 뜻입니다.

훈데르트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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