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햇살
아는 선생님이 도서관 강연 듣고 가는 길에 만났다는 나의 글. 코로나 기간은 나에게 집중과 몰입을 선물했던 시절이다. 아이와 늘 붙어 있으며 이 작은 생명이 내게 주는 기쁨이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크다는 걸 가슴 깊숙하게 느끼던 시절이었다. 그때의 나는 매일 같이 글을 썼고 아이와 함께 자주 도서관엘 갔다. 우리 둘은 매일 책을 읽었고 내가 100일 글쓰기를 하고 있을 때 아이는 옆에서 주제 글을 쓰거나 무언가를 끄적이고 있었다.
나의 하루가 소중하듯 나와 함께 한 아이의 하루하루가 내게 와서 빛이 되어주고 더없이 소중한 또 다른 나를 만들어 주었던 시간, 동네를 거닐거나 차로 이동할 때마다 만나는 나의 글에서 그때의 우리가 떠오른다. 오래오래 그 자리에서 더 많은 사람들과 만나 햇살이 되어 주기를.
내게 힘이 되는 가족
세상에서 제일 편하게 실컷 웃을 수 있는 시간은 엄마와 동생들과 있을 때다. 서로 어떤 가면도 쓰지 않고 그저 별것 아닌 일에도 배꼽을 잡고 웃는다. 일주일에 한 번 만나고 힘든 일이 있을 때, 전화를 걸어 수다를 떤다. 전화를 끊을 땐, 꼭 파이팅!이라고 서로를 일으켜 세우게 한다. 정신줄을 놓고 있다가도 응원을 들을 때면 아차! 싶어 다시 현실을 직시하게 된다. 우리는 어린 시절에도 그 좁은 방에서 서로 살을 맞대고 누워 밤이 새는 줄도 모르게 낄낄 깔깔하다가 잠이 들곤 했다. 고3인 둘째 조카가 대입 시험 끝나면 다 같이 여행을 가자고 벼르고 있다. 요새 우린 우리가 가진 좋은 에너지를 둘째에게 몰아주고 있는 중이다. 열심히 본분을 다 하는 둘째 조카에게 그 기운을 전달 중이다.
아빠를 이해하게 되는 일
잘 가꿔진 조상들의 선산에는 가기 싫다던 아빠. 집 가까운 곳에서 우리들과 자주 만나고 싶다던 아빠. 우리 집에선 누구도 선산을 도맡아 책임질 사람이 없다는 걸 인지한 아빠가 내린 결정. 아빠가 살아온 그 세월이, 그 자리가 참 무겁고 버거웠을 법도 한데 아빠는 그 일을 즐기는 사람처럼 했다. 아마도 그게 자신의 역할이라 생각했을 텐데 나는 그런 것들이 모두 별 부질없는 일처럼 느껴지곤 했다. 죽은 사람을 위해 많은 노력과 시간, 돈을 쏟아붓는 게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자식이 생기고 보니 간절한 마음이 들 때마다 무얼 잡고 빌어야 하나, 어딜 잡아야 무너지지 않을까 고심하게 되면서 아빠를 더 들여다보게 되었다.
우리에게 내비치지 못한 그 심중을 나는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자기 안에 표현할 수 없는 수없이 많은 감정들을 짊어지느라 무거웠을 아빠. 우리에겐 그 짐을 지게 하고 싶지 않았을 거다. 아빠 대에서 끝낼 수 있었던 건 어쩌면 다행인가 싶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 집엔 아들 대신 딸만 셋을 주셨는가 싶다. 어떤 때의 아빠는 가족 안에서보다 조상을 모시는 일로 더 시간을 보냈다. 쓸모없다 생각한 날들을 되짚어 본다. 아빠도 든든한 울타리가 필요했을 거고 붙잡고 살 게 있어야 했을 거다. 나중에 후회하지 말라는 아빠의 말들이 이제야 하나씩 가슴에 들어온다. 그래도 아빠는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세계 곳곳을 실컷 여행하셨고 또 대한민국 구석구석 발 디딜 수 있는 곳을 찾아 엄마와 둘이, 또 친구들과 같이 여행해서 원도 한도 없을 거라고 했다.
그건 그저 산 사람의 생각이고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 발 딛는 곳 모두 놀이터라고 생각하면 신나는 일 투성이니 그리 생각하고 살아보자. 오늘도 아이 밥 차려주고 간식 준비하는 짬짬이 아침 단상을 남겼다. 내 생각을 붙들고 아침을 열어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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