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안미로
해마다 찾아오는 나만의 시험지
해마다 마지막 달이 되면 내가 걸어온 궤적들을 조용히 되짚어 본다. 아이의 기말고사 일정에 맞춰 나 또한 자신을 시험대 위에 올려두곤 한다. 올해 내게 주어진 시험지는 몇 년 전 고배를 마셨던 도전에 다시 한번 몸을 던지는 일이었다. 하루를 꼬박 새워 글을 썼다. 하얗게 밤을 지새웠음에도 정신은 도리어 맑아졌다. 가슴 한구석에서 멈추지 않고 기분 좋게 일렁이는 미세한 떨림 덕분이었다.
꾸준히 다져온 루틴 덕에, 글쓰기는 이제 두려움을 무릅쓰고 덤벼들어야 하는 힘겨운 숙제가 아니다. 오히려 “내가 지금 살아 있다”는 걸 확인하는 쪽에 가깝다. 하얀 여백 위로 한 줄 한 줄 마음을 채우고 나면, 그날의 하루는 결코 허투루 지나가지 않는다. 자칫 흩어져 사라졌을 오늘이 비로소 내 삶의 한 장, 기록된 역사가 된다.
아이에게 중간·기말·수행평가가 있듯, 나에게도 주기적인 긴장감이 필요하다. 혼자 앞서가지도, 뒤처지지도 않기 위해 나는 스스로 마감이라는 이정표를 세운다. 아이가 자기만의 속도로 자라듯, 나 또한 나만의 속도로 성실히 존재하고 싶어서다. 아이와 신랑이 각자의 자리에서 보내는 시간을 그저 멀리서 지켜보기만 하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아이가 시험 공부에 몰두할 때, 남편이 회사 마감에 쫓기며 고군분투할 때, 나 또한 내 몫의 하루를 정성껏 빚어 안고 걷는다. 각자의 짐을 나누어 지고 갈 때, ‘함께’라는 말은 비로소 단단한 무게를 갖게 된다.
덕분에 나는 잔소리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 되었다. 아이를 이래라저래라 몰아붙이는 대신,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나 더 찾아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는 쪽을 택한다. 남편에게 무언가를 더 바라기보다, 이미 그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을 책임과 시간의 무게를 먼저 헤아려 본다.
강연을 준비하고 먼 길을 달려가 두어 시간 마음을 쏟아내고 돌아와도, 사실 손에 쥐는 보상은 그리 크지 않다. 그럼에도 나는 기꺼이 길을 나선다. 누군가 나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 그리고 내 서툰 이야기에 기꺼이 귀를 내어준다는 것. 그 작은 연결의 기적이 나를 다시 세상 밖으로 이끄는 힘이 된다.
돌아오는 길, 도로 위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내 삶이 고단한 줄 알아야, 내 가족의 고단함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몸은 조금 고단해도 괜찮다. 내가 기꺼이 수고로운 만큼, 아이를 바라보는 내 마음에는 그만큼의 빈자리가 생겨 아이의 자유를 넉넉히 품어줄 수 있게 된다. 아침 식사를 마치자마자 집을 나서 수업을 듣고, 점심을 서둘러 해치운 뒤 기타 학원에서 시간을 보내고 돌아온 아이. 그렇게 하루의 기운을 다 쏟고 돌아온 아이에게 차마 ‘이제 공부해야지’라는 말은 꺼내지 못하겠다. 나에게 휴식이 간절한 것처럼, 아이에게도 오롯이 숨을 고를 시간이 절실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노란 들판 앞에서 배우는 시선의 거리
호안 미로를 좋아하게 된 건 초등학생 때였다. 아이가 낙서한 듯 단순한 그림인데 이상하게 잔상이 길게 남았다. 삐뚤빼뚤한 선과 커다란 점,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제목들. 그 난해함 덕분에 나는 더 오래 상상할 수 있었다. 어쩌면 그 막막한 상상의 시간이 내가 미로와 맺은 첫 인연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번에 다시 마주한 작품은 제목부터 숨이 찰 만큼 길다. 〈황금빛 푸른색 날개에 싸여 다이아몬드 들판 위 양귀비꽃의 심장으로 돌아온 종달새〉 화면 위쪽에는 짙은 초록의 하늘 같은 면이 있고, 그 아래로 검은 띠가 가로지른다. 아래쪽 넓은 공간은 강렬한 노랑으로 채워져 있다. 노란 들판 한가운데 푸른 타원형이 떠 있고, 그 안에 검은 씨앗 같은 점 하나. 초록 부분 오른쪽에는 작은 붉은 점이 홀로 찍혀 있다.
하늘과 들판, 새와 꽃. 미로는 이 모든 것을 구체적인 형상이 아니라 몇 개의 색면과 점, 타원으로만 보여준다.
김환기의 미국 시기 초반, 푸른 바탕 위로 점들이 번져나가는 작업을 마주할 때마다 미로의 그림이 겹쳐진다. 화면을 가로지르는 보이지 않는 연결선과 색의 층위 속에는 가까운 곳과 먼 곳을 동시에 조망하는 시선이 담겨 있다. 가까운 것에 함몰되지 않으면서, 너무 멀어져 길을 잃지도 않는 절묘한 거리감. 나는 그 사이에서 미로와 환기를 동시에 만난다.
나이가 들수록 시야가 흐릿해지는 노안이 찾아온다. 코앞의 글자는 침침한데, 되레 멀리 있는 간판은 또렷이 읽힌다. 서글프고 불편한 변화 같지만, 어쩌면 삶이 건네는 다정한 조언일지도 모른다. 가까운 것은 조금 거리를 두고 바라보고, 너무 멀리 있는 것들은 굳이 애써 들여다보지 않아도 된다고 눈이 먼저 일러주는 것이다.
어쩌면 불안을 꼭 껴안고 살지 않아도 된다는 뜻 아닐까. 세상을 보는 눈은 넓게 가지되, 마음 쓰지 않아도 될 일들은 차츰 멀리 두라는 신호 말이다. 노란 들판 한가운데 놓인 커다란 점 하나를 멀찍이서 관조하듯, 나의 중심 또한 한 걸음 떨어져 가만히 지켜보라는 말 같다.
내가 서 있는 자리를 정확히 알게 되면, 설령 불안이 곁에 머물지라도 결코 나를 휘두르지는 못할 것이다.
비워낼수록 선명해지는 진짜 언어
작가들의 생애를 훑어 내려가다 보면 눈에 띄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젊은 날의 작품들은 선과 점, 색채가 빈틈없이 뒤엉켜 있다. 세상에 토해내고 싶은 말이 어찌나 많은지, 캔버스가 금방이라도 터져 나갈 듯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다. 그러다 어느 지점을 통과하면 작품의 결이 몰라보게 달라진다. 복잡하던 색은 몇 가지로 정돈되고, 화면 위에는 큼직한 색면과 상징적인 형상 몇 가지만이 고요하게 남는다.
미로의 이 그림 역시 그렇다. 어린아이의 낙서처럼 보이는 단순한 형태 안에는, 한 예술가가 평생을 붙들고 씨름해 온 세계가 고스란히 압축되어 있다. 김환기의 전면점화 또한 얼핏 보면 그저 푸른 점들의 반복 같지만, 그 속에는 바다와 밤하늘, 고향을 향한 그리움과 삶의 마지막 숨결이 켜켜이 쌓여 있다.
“예술가의 후기 작품은 기교의 절정이 아니라, 내려놓기의 절정에서 피어난다.”
복잡한 수식과 기교를 다 덜어내고도 끝내 남는 것. 그것이야말로 그 사람만이 가진 진짜 언어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도 이와 닮아 있지 않을까. 젊은 시절엔 해야 할 일과 되고 싶은 모습, 만나야 할 사람들로 마음의 빈틈이 없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그중 상당수는 굳이 붙들지 않아도 되는 일임을 깨닫게 된다. 그런 소란스러운 것들이 빠져나간 자리에도 끝까지 남는 몇 가지가 있다. 가족을 보살피는 일, 나를 찾아준 이들에게 기꺼이 화답하며 다시금 길을 나서는 일, 그리고 마음을 다해 글을 쓰는 일.
미로의 그림 앞에 서 있으면, 내 삶의 후반전을 어떻게 채워가야 할지 자연스레 고민하게 된다. 색을 덧칠하기보다 덜어내는 연습에 익숙해져야 하지 않을까. 해야 할 일을 자꾸 늘리기보다, 정말 하고 싶은 일들만 오롯이 남겨두는 것 말이다.
“채우는 삶에서 남기는 삶으로 옮겨가는 순간, 비로소 나라는 사람의 본연의 형태가 드러난다.”
가벼운 것이 결국 날아오른다.
이 그림을 보고 있으면 화면 전체가 노란 빛으로 환하다. 광활한 들판이자 한낮의 태양 같은 그 빛의 한가운데, 푸른 타원과 검은 점 하나가 떠 있다. 나는 그 점을 내 안의 ‘희망의 씨앗’이라 부르고 싶다. 주변은 여전히 분주하고 소란스럽지만, 내 안에 작고 가벼운 씨앗 하나가 박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하루를 버텨낼 힘을 얻는다.
“희망은 거창한 목표가 아니라, 오늘을 견디게 하는 작고 가벼운 점 하나일지도 모른다.”
무거워서 단단해 보이는 돌덩이는 제자리에 머물 뿐이지만, 가벼운 씨앗은 바람을 타고 어디로든 멀리 나아간다. 우리는 흔히 ‘무게감 있는 삶’이 정답이라 믿지만, 정작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오는 가벼움일 때가 많다. 가벼운 존재만이 결국 날개를 달고 하늘로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아직은 날개가 충분히 자라지 않았다고 느낄 때가 있다. 계획한 만큼 다 이루지 못하는 날도 있고, 예상치 못한 벽에 부딪혀 다시 시작해야 하는 자리로 돌아가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그 속에서 길을 잃는 대신, 그날이 건네준 또 다른 선물은 무엇인지 가만히 찾아내곤 한다. 날개가 부족하다면, 언젠가 바람이 불어 나를 가볍게 들어 올려 줄 것임을 믿기 때문이다.
나는 그 바람을 기다리며 오늘도 내 자리에서 정성껏 점 하나를 찍는다. 글을 쓰고, 강연을 준비하고, 가족과 함께 숨 쉬는 이 가벼운 일상의 행위들이 모여 언젠가 나를 날아오르게 할 것이다.
“언젠가 불어올 바람을 믿는 사람만이, 오늘의 무거운 몸으로도 가벼이 살아갈 수 있다.”
미로의 노란 들판 앞에 서면 내년의 계획도 조금은 결을 달리하게 된다. 더 많이 해내겠다는 무거운 각오 대신, 덜 하더라도 더 깊게 머물고 싶다는 가벼운 마음. 누군가의 기준에 맞춘 성적표가 아니라, 나와 내 가족이 함께 웃으며 채울 수 있는 우리만의 시험지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차오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한 해의 끝은 더 이상 아쉬움이 고이는 계절이 아니다. 눈이 조금씩 흐릿해지는 대신 마음의 시야는 오히려 더 멀리까지 열리고 있다. 노란 들판 위에 선명히 찍힌 점 하나처럼, 내 안의 가벼운 희망도 여전히 또렷하게 살아 숨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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