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표보다 단단한, 아이만의 영토를 지켜보는 법
아이의 서재에서 ‘세계’가 자라는 순간
티브이가 없는 거실, 벽면을 가득 채운 책장. 우리 집은 어느 문을 열어도, 어떤 모퉁이를 돌아도 책의 향기가 발을 잡는다. 거실에서 시작된 책의 줄기들은 각자의 방으로 뻗어 나가 집 전체를 감싼다. 아이와 우리가 함께 가꿔온 울창한 마음의 정원 같다.
아이의 방이라고 해서 특별히 공기가 달라지진 않는다. 다만, 그 숲의 한가운데서, 아이는 자기 속도로 더 깊은 곳까지 뿌리를 내리고 있을 뿐이다. 침대 머리맡에 켜켜이 쌓인 양장본 시리즈들—《고양이 전사들》부터 《듄》, 그리고 최근에 선물한 《로마제국 쇠망사》까지. 그 두꺼운 책등을 바라보고 있으면, 문득 앙리 루소의 정글이 떠오른다.
화가 앙리 루소는 평생 프랑스를 떠나본 적이 없는 이른바 '일요일의 화가'였다. 관세·통행세 관련 일을 하며 틈틈이 그림을 그렸다. 식물원과 동물원, 그리고 여행 잡지 속 삽화들을 조합해 자신만의 거대한 정글을 창조해 냈다. 실제 정글에는 존재하지 않을 법한 거대한 잎사귀들과 낯선 꽃들, 그 울창한 잎사귀 사이로 눈을 번뜩이는 맹수들. 루소의 정글은 사실의 기록이 아니라, 한 인간의 집요하고도 폭발적인 '상상력의 도서관'이었다.
우리 아이의 세계도 루소의 정글을 닮았다. 일곱 살 무렵 《제로니모》의 모험으로 시작된 작은 발자국은, 《땡땡의 모험》을 따라 더 멀리 굴러갔다. 그러다 판타지의 숲을 지나 《해리포터》라는 거대한 세계관에 가 닿았다. 아이는 여러 권을 수박 겉핥기식으로 읽기보다, 하나를 잡으면 끝을 볼 때까지 읽고 또 읽는다.
해리포터에 나오는 마법 주문을 프린트해 옷장 안에 붙여 두고, 작은 등불을 들고 들어가 혼자서 외우곤 했다. 그 주문들이 라틴어에서 조합된 사실을 알고 나서는, 라틴어 자체에 호기심이 옮겨 붙었다.
마치 루소가 정글의 잎사귀 하나하나를 덧칠하며 자기만의 밀도를 만들었듯이, 아이는 라틴어를 찾아가며 그 세계의 뿌리를 더듬는다. 지도를 벽에 붙여 가며, 자신만의 영토를 천천히 구축한다.
정글의 깊이, 독서의 밀도
루소의 그림 〈사자의 식사〉를 가만히 들여다보자. 화면을 압도하는 이국적인 식물들은 실제보다 훨씬 크고 선명하게 그려져 있다. 루소는 식물원에서 본 이파리들을 상상 속에서 수십 배로 키워 배치했다. 이 울창한 초록의 레이어들은 마치 아이가 읽어 내려간 시리즈물의 권수만큼이나 깊고 단단하다.
중학교 3학년을 앞둔 아이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건넨 《로마제국 쇠망사》. 아이는 책의 표지를 망설임 없이 벗겨냈다. 그 안쪽에 숨겨진 지도를 발견하기 위해서였다. 침대 머리맡에 붙은 지도는 루소의 정글 속에 찍힌 붉은 점처럼, 아이의 세계를 안내하는 이정표가 된다.
가끔은 아이와 소소한 실랑이를 벌이기도 한다. 세수하고 나면 얼굴에 크림을 바르라던가, 한겨울 푸석해진 아이 얼굴이 마음에 걸려 건네는 엄마의 잔소리 같은 것들이다. 하지만 이런 일상의 작은 대화들 너머로, 아침이면 스스로 일어나 샤워를 하고 뚜벅뚜벅 학교로 향하는 아이의 뒷모습을 볼 때면 대견함이 먼저 차오른다. 루소가 세관원이라는 단조로운 일상을 살면서도 마음속에 열대 우림을 품었듯, 아이 또한 주어진 일상을 성실히 수행하며 머릿속에는 로마의 황제들과 우주의 전사들을 유영시킨다.
성적이 아닌, ‘세계관’을 선물한다는 것
신랑과 내가 아이에게 가장 공들였던 부분은 '공부'가 아닌 '독서의 습관'이었다. 우리가 아이에게 바란 것은 전교 1등의 성적표가 아니다. 삶은 때로 무기력하고, 정답이 없는 미로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때 책 속을 뒤적이며 위안을 얻고, 누군가의 삶에서 답을 찾아낼 수 있는 힘을 길러주고 싶었다.
루소의 정글 속에는 이름 모를 생명체들이 뒤엉켜 살아간다. 때로는 포식자가 먹잇감을 덮치는 비정한 순간도 있지만, 화면 전체를 감싸는 것은 기이할 정도의 평온함과 다채로움이다. 독서 또한 그렇다. 책장 사이에는 정글의 알 수 없는 생명체들처럼 수만 가지 인간의 이야기가 숨어 있다.
아이가 싫어하는 수학을 인문학적 관점으로 풀어낸 책으로 접하고, 좋아하는 역사를 통해 인간의 궤적을 쫓는 모습은 루소가 캔버스 위에 한 땀 한 땀 찍어 누른 색점들과 같다. 그 점들이 모여 결국 한 인간의 고유한 세계관이 된다.
이제 나는 아이의 성장을 재촉하는 대신, 루소의 그림을 관조하듯 한 걸음 물러나 아이의 세계를 가만히 지켜본다. 내가 내 몫의 하루를 정성껏 일구며 그 고단함을 기꺼이 감수할 때, 비로소 아이를 향한 욕심보다는 아이가 누려야 할 자유를 응원할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의 빈자리가 생기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마중물이 되고 싶어 스스로를 다잡는다. 내가 삶의 현장에서 정성껏 점 하나를 찍을 때, 비로소 아이에게도 숨 고를 시간이 얼마나 절실한지 이해하게 된다. 아이를 움직이는 힘은 잔소리가 아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제 몫을 다하는 뒷모습, 그것이 비로소 아이의 마음을 건드리는 진짜 언어임을 안다.
건강한 몸으로, 자신만의 흥미로운 세계를 구축하며 자라주는 것. 그것보다 더 큰 축복이 있을까. 앙리 루소가 정글을 직접 가보지 않고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글을 그려냈듯, 우리 아이도 책이라는 창을 통해 세상이 얼마나 다채롭고 흥미로운 곳인지 스스로 깨달아가길 바란다.
오늘도 아이의 방 창문을 열며, 서늘하고 맑은 공기 속에서 자라나는 아이만의 '정글'을 응원한다. 그 숲이 더 깊어지고 무성해질수록, 아이의 영혼은 그 어떤 비바람 속에서도 무기력해지지 않는 단단한 뿌리를 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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