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꽃피는 나무

모네 〈양산을 쓴 여인〉 미술에세이

by 김상래
클로드 모네의 1875년 작품 〈양산을 쓴 여인—모네 부인과 아들〉은 바람과 햇빛이 지나가는 찰나를 붙잡은 가족의 초상입니다. 모델은 카미유 모네와 아들 장. 저는 이 그림을 침실에서 매일 마주하며, 사랑을 ‘기록’이라는 방식으로 다시 배웁니다.
클로드 모네/양산을 쓴 여인—모네 부인과 아들/ 1875캔버스에 유채, 100 × 81 cm/워싱턴 D.C. 내셔널 갤러리 오브 아트

그대, 그리고 나: 바람이 얼굴을 건드리는 날의 초상

침실 벽 한쪽을 크게 차지한 레플리카가 한 점 있다.

클로드 모네의 1875년 작품 〈양산을 쓴 여인—모네 부인과 아들〉이다. 모네의 첫 아내 카미유와 아들 장을 모델로, 바람과 햇빛이 동시에 지나가는 순간을 붙잡아 놓았다. 푸른 하늘 아래, 하얀 드레스를 휘날리며 서 있는 카미유와 그 곁에서 수줍게 머리만 내민 아들 장이 있다. 그림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모네가 그토록 붙잡고 싶어 했던 그날의 온도를 느끼곤 한다.


이 작품은 모네의 생애 중 가장 찬란하고도 위태로웠던 ‘아르장퇴유 시절(1870년대 중반)’의 기록이다. 모네는 1871년 말부터 1878년까지 이곳에 머물며, 야외에서 빛을 붙잡는 실험을 거듭했다. 가난은 여전히 그들의 발목을 잡고 있었지만, 모네의 캔버스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풍요로운 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특히 이 그림은 모네가 첫 번째 아내 카미유를 가장 아름답게 기록한 순간으로 남아 있다.


그림 속 카미유의 얼굴은 놀라울 만큼 또렷하게 보인다. 바람에 흩날리는 드레스 자락과 양산 아래에서 튀어 오르는 초록빛 반사는, 내가 언덕 아래에서 그녀를 올려다보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선명한 순간이 오래가지 못했기에, 이 그림은 더욱 아련하게 다가온다. 1879년 9월, 카미유는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1880년대에 모네는 다시 양산을 든 여인들을 그렸다. 모델은 달랐지만, 내 눈에는 그 얼굴들이 더 멀어 보였다. 형체가 흐려졌다기보다 그저, 사람을 잃고 난 뒤의 세계처럼 빛이 먼저 앞서가고 얼굴이 뒤늦게 따라오는 느낌. 기억 속에 박제되지 못한 얼굴이, 바람과 햇빛 사이로 잠깐 비치다 사라져버린 듯했다. 침실에 걸린 이 ‘또렷한 카미유’를 볼 때마다 다짐이 하나 생겼다. 나의 오늘도 이처럼 선명하게 남기겠다고. 기록하겠다고.


2022년, 《실은 엄마도 꿈이 있었어》라는 책을 세상에 내놓은 뒤 삶에는 기적 같은 일들이 이어졌다. 시작은 소박했다. 아이와 함께 미술관을 다니던 평범한 엄마였던 나는, 20여 년 전 루브르에서 보았던 도슨트들의 근사한 뒷모습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 동경은 곧 실천이 되었고, 어느새 나는 현장에서 관람객들에게 그림의 언어를 통역하는 도슨트가 되어 있었다.


책은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다. 북토크는 강의가 되었고, 강의는 다시 강연으로 이어졌다. 도슨트로서 그림을 설명하고, 작가로서 삶을 기록하는 이 이중주가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었던 모양이다. 사람들이 “그 바쁜 와중에 글 쓸 시간이 어디 있느냐”고 묻곤 한다. 그럴 때 나의 대답은, 시간이 남아서 쓴 게 아니라, 글을 쓰고 싶어서 틈틈이 시간을 만들었다고.


글쓰기는 정보를 전달하는 일만은 아니다. 모네의 그림 속 구름처럼 흘러가 버리면 영영 사라질 일상의 소소한 장면들을 붙잡아두는 방식이기도 했다. 언제나 바쁜 남편과 자라나는 아이 사이에서, 우리 둘만의 이야기가 세상에 없던 일이 되어버리는 게 싫었다. 모네가 카미유와 장의 순간을 캔버스에 담아내듯, 나도 우리의 시간을 문장 속에 고스란히 아로새기고 싶었다.


바빠서 글을 쓸 시간이 없다는 말은, 어쩌면 기록보다 더 중요한 무언가에 몰입하고 있다는 뜻일 수도 있다. 분주한 하루 끝에서도 끝내 놓치고 싶지 않은, ‘우리의 오늘’이 있었다.


전원일기: 옥수수차의 김, 감자의 온기

치열하게 밖을 달리던 시기가 지나면, 조금은 여유롭게 집에 머무는 날들이 찾아온다. 나는 그 ‘멈춤’의 시간을 사랑한다. 이런 날엔,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개는 시간이 꼭 싫지는 않다. 아이가 좋아하는 옥수수차를 끓일 수 있는 여유가 그 안에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2리터(2L) 주전자에 옥수수 알갱이를 넣고 팔팔 끓이면, 집안 가득 구수한 냄새가 차오른다. 주전자에서 피어오르는 김이 모네의 그림 속 구름처럼 거실을 채울 때, 나는 비로소 안온함을 느낀다. 알갱이들이 충분히 부풀어 바닥으로 가라앉을 때쯤, 잘 우러난 차를 병에 옮겨 담는다. 차를 끓이지 않을 땐 음료수만 찾던 아이였다. 그런 아이가 이제는 엄마에게 마음의 여유가 생긴 걸 아는지 엄마표 옥수수차를 먼저 찾는다. 찻물을 끓이고 식히는 이 반복적인 일상은, 어느덧 아이를 향한 나의 가장 다정한 수행이자 사랑의 증명이 되었다.


밖에서 일할 때는 그 에너지가 좋고, 집에 있을 때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이 적막함이 좋다. 나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려 노력한다. 남편이 사 온 햇감자로 카레를 만들거나, 채를 썰어 볶고, 때로는 오롯한 맛을 위해 쪄내는 일들은 일과 가정 사이의 조율로 남아 있다. 쫓기듯 하는 일은 내게 맞지 않는다. 양쪽의 저울추를 평온하게 두고, 안과 밖을 다정하게 오가고 싶다.


내일은 사랑: 아이의 문집, 흔적이 길이 되는 신비

이제 중학교 3학년을 앞둔 아이는 여전히 나와 대화하기를 즐긴다. 시험이 끝난 해방감 덕분인지, 요즘 아이는 예전의 장난기 가득한 모습으로 나를 웃기곤 했다. 둘이 마주 앉아 장기를 둘 때면, 아이는 어찌나 다정하게 훈수를 두는지 모를 정도다. 한 수 물러주는 그 맛에, 나는 이기지 못해도 즐겁게 그 뒤를 따라가고 있다.


하루는 아이가 학교에서 문집 한 권을 받아왔다. 내가 어릴 적 만들던 얇은 종이 뭉치와는 차원이 다른 책이 다. ISBN 번호까지 찍힌 두툼한 책. 평소 판타지 소설을 즐겨 읽으며 상상을 키우던 아이는 이야기 창작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고, 그 작품이 실려 있었다.


아이의 글을 소리 내어 읽으며 경이로움을 느낀다. 상상력은 지식보다 중요하다는 말을, 실감하고 있다. 이 글들은 학교의 성적표보다 훨씬 귀하다. 글은 마음의 흔적이다. 그 흔적은 다시 누군가의 길이 되기도 한다. 아이가 만들어낸 상상의 세계가 누군가에게 새로운 길이 되기를 바란다. 나의 기록이 우리 아이에게 단단한 이정표가 되기를 소망한다.


모네의 〈양산을 쓴 여인〉 속 장은 푸른 들판 위에서 엄마와 함께 가장 행복한 시절을 보내고 있다. 모네는 그 맑은 하늘과 눈부신 찰나를 놓치지 않고 남겨두었다. 내가 매일 문장을 다듬고 글을 쓰는 이유도 그와 다르지 않다.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을 때 그 얼굴을 또렷이 남기지 않으면, 훗날 그리움만으로는 그 형체를 복원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습관처럼 자판 앞에 앉는다. 아이의 웃음소리, 주전자에서 피어오르는 김, 장기판 위의 다정한 대화 같은 것들이 사라지기 전에 문장 속에 옮겨 둔다.


일과 가정, 밖과 안의 경계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붙잡아준 것도 결국 이 습관이었다. 지나가는 모든 것들을 아쉬워하기보다, 단 한 줄로 오늘을 다독이는 일, 그리하여 기억 속에 흐릿해질 오늘에 또렷한 색채를 입히는 일.

나는 사랑을, 기록이라는 방식으로 배운다.

출판사에서 영문 오타를 냈다. Starlight from the Holy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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