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러나지 않아도 깊어지는 것들

샤르댕의 책상에서 배운 삶의 질서

by 김상래
새해를 시작하며 문득 여러분께 꼭 소개하고 싶은 화가가 있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화가, 장 바티스트 시메옹 샤르댕입니다. 화려한 수식어보다 소박한 사물의 진실을 믿었던 그의 그림은, 오십이라는 나이에 접어든 제 삶에 가장 단단한 위로가 되어줍니다.
강연 때도 늘 소개하는 화가입니다.
장 바티스트 시메옹 샤르댕, <예술의 도구들과 그 보상들> 1766년/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

1월 1일의 브리핑: 색색의 펜으로 그리는 항로

매년 1월 1일 아침, 아침 식사후에는 새로운 백지와 색색의 펜들이 놓인다. 우리 가족의 루틴이다. 식사를 마친 뒤 우리는 작년의 계획표를 꺼내 든다. 이루어낸 것들에 대한 자축과 실행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담백한 브리핑이 돌아가며 이어진다.


이어지는 순서는 올해의 지도 그리기다. A4 도화지에 1번부터 5번까지, 한 해의 항로를 적어 내려간다. 중요한 대목엔 알록달록한 펜으로 덧칠을 한다. 시각화된 간절함은 눈에 더 잘 들어오기 마련이다. 언제나 1순위는 건강, 그리고 가족과 함께할 시간들이다. 나머지는 그저 오늘이라는 하루를 성실히 채우다 보면 자연스레 맺힐 열매라 믿으며, 우리는 새해의 계획표를 잘 보이는 곳에 나란히 붙여둔다.


지난 1년은 '느슨한 미술책 읽기 모임'을 통해 타인과 연결되는 감사함을 배운 시간이었다. 강의를 듣고 그림을 보며 글을 쓰고 계시는 분들에게 무엇이라도 더 나누고 싶은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었다. 그것은 지식을 뽐내거나 밖을 향해 ‘나를 봐달라’고 외치는 소란스러운 회합이 아니었다. 오히려 숨을 고르며 서로의 문장이 지닌 고유한 온기를 소리로 확인하는 시간, 미술이라는 공통의 언어로 각자의 내면을 조용히 포개어보는 지극히 사적인 연대의 자리였다. 오히려 아주 조용하게, 서로가 정성껏 고른 문장을 소리로 내어 읽으며 서로의 내면을 응시하는 시간이었다. 우리가 마주한 그림과 그 위로 겹쳐지는 글들에 한껏 빠져드는 시간, 그리하여 서로의 생이 예술의 문장들로 충분히 젖어 드는 우물 같은 시간이 되기를 바랐다.


미술관에서 도슨트를 하던 시절부터 내가 바랐던 것은 단 하나, 미술이 사람들의 삶 속에 더 깊숙이 스며드는 것이었다. 글쓰기를 통해 그 예술적 감각들이 몸 한가운데로 들어와 모두의 삶이 조금 더 건강해지기를 원했다. 특히 ‘마더로그’라는 이름 아래, 2년이라는 시간 동안 미술과 글쓰기로 동행해 주신 분들이 있다. 때로는 정해진 그림을 보고 글을 쓰는 일이 버겁게 느껴지는 날도 있었겠지만, 함께였기에 우리는 끝까지 펜을 놓지 않을 수 있었다. 아주 조용하게 서로의 내공을 쌓아가는 이 시간 속에서, 나는 미술이 사람과 사람을 가장 건강하게 잇는 단단한 매개임을 다시금 확인한다. 시시콜콜한 일상을 나누고 다정한 마음이 담긴 선물을 주고받던 그 연대가 없었다면 결코 불가능했을 일이다. 서로의 내실을 묵묵히 쌓아간 그 시간이 누군가에게 허비가 아닌, 삶을 정성껏 채우는 소중한 밑거름이 되었기를 바란다.

50이라는 숫자가 건네는 온기: 사람이 남는 계절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기억의 지층이 두꺼워지는 일이다. 20대에 만나 30대의 치열함을 함께 건너온 30년 지기 친구들. 이제 50을 바라보거나 이미 넘긴 이들과의 연말 모임은 그 자체로 애틋한 위로다. 젊은 날의 사소한 오해나 뾰족했던 서운함은 이제 온데간데없다. 그저 '모두 아프지 말고 건강하자'며 서로의 안녕을 진심으로 빌어주는 마음들. 존재만으로 힘이 되는 그 따스한 눈빛들 속에서 나는 나이 듦이 건네는 서로의 온기를 발견한다. 침대 맡에 앉아 친구들과 마지막 사진을 찍으며 눈물짓던 아빠의 마음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늘 곁에 있던 것들이 얼마나 사무치게 소중한지를 비로소 깨닫는 나이가 50인 모양이다.


특히 바쁜 일상을 쪼개고 쪼개어 함께했던 ‘나른한 미술관 나들이’ 멤버들과의 시간은 내게 각별한 선물이었다. 전시장 곳곳을 거닐며 나눈 미술 이야기는 어느새 서로의 안부를 묻는 다정한 목소리로 이어졌고, 그림 앞에 나란히 서 있던 그 시간만큼 우리의 마음도 조용히 포개어졌다. 멀리서도 마음을 나눠주는 오랜 친구부터 아빠의 추억을 함께 반추해 준 친척 오빠, 그리고 무엇보다 강의를 통해 맺어진 인연들이 건네온 고백이 마음을 울린다. 당신의 강의 덕분에 비로소 더 넓은 세상을 알아가고 있다는 그 담백한 새해 인사를 마주하며, 내가 내민 작은 손길이 누군가의 지평을 넓히는 통로가 되었음을 깨닫는다. 생일과 크리스마스마다 과일과 케이크, 꽃을 아낌없이 나누어주는 친구까지, 인사를 나누고 나니 결국 바쁜 삶의 끝에 남은 것은 ‘사람’이었다.

샤르댕의 책상: 드러나지 않는 성실함에 대하여

장 바티스트 시메옹 샤르댕(Jean-Baptiste-Siméon Chardin)의 〈예술의 속성들 그리고 그들에게 주어지는 보상들〉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화면 중앙에는 지성과 메신저의 상징인 메르쿠리(헤르메스) 조각상이 놓여 있다. 그 주변으로 팔레트와 붓, 낡은 설계도와 훈장들이 흩어져 있다. 이 그림은 단번에 얻어지는 우연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매일 책상 앞에 앉았던 화가의 숭고한 반복과 성실한 일상을 보여준다.


샤르댕은 당대 화가들이 선망하던 화려한 역사화나 종교화 대신, 주방의 냄비와 구겨진 식탁보, 이름 없는 정물들에 평생을 바쳤다.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화려한 배경 하나 없던 샤르댕. 그는 남들이 지나치던 낡은 솥이나 투박한 식재료 같은 소박한 사물들에 주목했다. 그는 깨달았다. 보잘것없는 일상도 집요하게 응시하면 그 안에 고귀한 질서가 깃들어 있음을. 그 평범한 사물들 속에서 그는 무엇보다 귀한 생명력을 길어 올렸다. 샤르댕은 동시대 화가들에 비해 유독 작업 속도가 느린 화가였다. 그는 같은 정물을 빛의 미세한 떨림과 구도에 따라 수없이 반복해서 관찰하고 다시 그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화단에서는 이를 두고 지독히도 성실하다고 말했다. 정작 그에게 그것은 사물의 진실에 닿기 위한 유일한 수행(修行)이었다. 이 고단하고 정직한 반복이 쌓여 비로소 샤르댕 특유의 단단하고도 깊은 질감이 완성되었다.


성공의 화려함보다 과정의 정직함을 믿었던 그의 삶은, 이제 막 50이라는 숫자를 통과하는 내게 커다란 울림으로 다가온다. 샤르댕의 정물이 소박하지만 흔들림 없이 단단한 이유는 그가 보낸 무수한 ‘어제의 시간’들이 캔버스 밑바닥을 겹겹이 지탱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올해도 그런 삶을 살고 싶다. 밖으로 드러나는 화려한 수식어보다, 나를 지탱하는 내면의 문장들을 묵묵히 다지는 해로 말이다.


이른 새벽 남편을 위해 정성껏 젓는 인삼꿀물 한 잔, 아이의 활기찬 하루를 위해 깎아둔 과일과 아침 식사. 비록 각자의 시간에 맞춰 조용히 흘러가는 아침일지라도, 그 빈틈을 채우는 나의 작은 손길들이 모여 우리 가족의 오늘을 단단하게 지탱한다. 여기에 가족과 나누는 나직한 대화, 책상 앞에 앉아 정성껏 써 내려가는 문장들까지 보태지면 더할 나위 없다. 이렇듯 사소하고도 소중한 일상의 마디들이 촘촘히 엮여 결국 한 사람의 생을 완성하는 법이다. 인생에 뭐 그리 대단하고 특별한 것이 필요하겠는가. 건강한 몸으로 사랑하는 이들과 보폭을 맞춰 꾸준히 걷는 것, 그것만으로도 내 삶은 이미 충분히 넉넉하다.


샤르댕의 붓이 매일 캔버스 위를 묵묵히 오가며 일상의 기적을 길어 올렸듯, 나 또한 나의 하루를 다정한 움직임들로 꾸준히 채워가려 한다. 결국 삶이란 얼마나 높이 올랐느냐가 아니라, 본연의 자리에 얼마나 깊이 머물렀느냐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화려한 금박 액자에 갇힌 그림보다, 매일 아침 마주하는 낡은 책상 위의 질서가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든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밖으로 드러나지 않아도 안으로 깊어지는 그 고요한 힘을 믿으며, 나는 오늘 나의 책상 앞에 다시 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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