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지루아르
비가 내리면, 레만호는 비 자체가 된다
몽트뢰의 숙소 창을 열자 레만호(Lac Léman)가 정면으로 들어왔다. 그것은 호수라기보다 창밖에 드리운 거대한 은빛 커튼에 가까웠다. 거세게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서 레만호는 순식간에 낯선 얼굴을 드러냈다. 수면은 더 이상 잔잔한 은빛이 아니었다. 쉼 없이 박히는 빗방울들로 인해 호수는 검푸른 금속판처럼 단단해 보였다. 수면 위로 겹치고 깨지는 무수한 동심원들 속에서 호수는 ‘비 오는 풍경’을 넘어 비 자체가 되었다. 물 위가 아니라 억겁의 시간 위로 비가 내려앉는 듯한 환영이 일었다. 비는 풍경을 적시는 데 그치지 않고, 흐르는 시간의 결을 한 겹 더 두껍게 만든다.
비가 소강상태에 접어들자, 가족들과 눈이 마주쳤다. 재촉하지 않아도 우리는 자연스럽게 한 방향으로 움직였다. 우산을 들고 14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면, 문이 열리자마자 눅눅한 공기와 함께 레만호가 마중을 나온다. 길은 젖어 있었고, 신발 밑창이 물기를 얇게 밀어내는 소리가 발끝을 타고 올라왔다. 아이는 일부러 물웅덩이를 밟으며 장난을 쳤다. 비가 빚어낸 하루는 이렇듯 평소보다 느릿하게, 한결 촘촘하게 스며들었다.
기억은 대개 ‘좋은 날’이 아니라 ‘함께 웃은 날’로 각인된다. 가까이서 마주한 호수는 여전히 커튼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빗줄기가 새겨놓은 주름은 이전보다 한층 더 깊고 선명했다. 안개는 산허리를 끊어 놓았지만, 역설적으로 호수는 더 넓게 시야를 열어주었다. 동영상 카메라를 들고 가족들과 보폭을 맞추었다. 이름으로만 알던 호수를 마주하고 보폭을 맞추는 사이, 우리 가족 사이의 거리도 그제야 한 뼘 더 가까워진 듯했다.
거대한 풍경은 인간을 작게 만들고, 그 작은 마음들은 서로를 가깝게 만든다. 몽트뢰의 해안 산책로는 발끝부터 마음을 무장해제 시켰다. 젖은 공기를 밟으며 걷다 마주한 프레디 머큐리의 동상. 굳이 유명인의 이름을 빌려 설명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이미 충만했다. 몽트뢰가 휴양지로 사랑받는 이유는 느긋하게 찾아오는 평온에 있다. 호수는 걸음을 늦추고, 뒤편의 산은 마음속 소음을 걷어낸다. 퀸의 프레디 머큐리, 찰리 채플린, 오드리 햅번이 화려함 대신 이곳의 평온을 택한 이유도 같았을 거다. 쉼이란 그저 비어 있는 공백이 아니라, 흩어졌던 마음을 모아 다시 나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시간이라는 것을.
소르본에서 뤽상부르로
스위스의 마지막 날들이 물처럼 흘러가고, 우리는 TGV Lyria에 몸을 실었다. 비는 파리 리옹역까지 우리를 따라왔다. 파리의 비는 도시의 색감을 바꾸는 대신 표면을 매끈하게 닦아냈다. 젖은 돌바닥은 거울처럼 빛을 반사했고, 우산 끝에서 떨어지는 물방울과 차륜이 남기는 얇은 물결은 파리가 왜 디테일에 강한 도시인지를 증명했다. 도시는 맑을 때보다 젖었을 때 더 솔직해진다.
택시를 타고 도착한 숙소는 팡테옹과 센 강 사이, 소르본 근처의 라탱 지구였다. 골목마다 학생들이 오가고 작은 서점들이 발길을 붙잡는 곳. 비 내린 라탱 지구의 보도블록은 반짝였고, 서점 앞 비닐 씌운 책 더미에서는 종이 냄새와 젖은 공기가 뒤섞인 묘한 향기가 났다. 그곳은 거창한 ‘파리’라기보다 친근한 ‘우리 동네’로 기억에 남았다.
라탱 지구의 젖은 밤이 지나고, 우리는 파리의 일상을 조금 더 깊숙이 느껴보고자 길을 나섰다. 루브르의 숨통이라 불리는 튈르리 공원 벤치에 앉아, 지퍼백에 담아온 사과를 꺼냈다. 봉투를 열자 백설공주의 사과처럼 형광빛이 도는 붉은 색감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한국에서는 좀체 보기 힘든, 비현실적으로 선명하고 진한 붉은색이었다. 손바닥에 닿는 차가운 감촉이 먼저 상큼했다. 사과를 한입 베어 물자 산뜻한 신맛이 입안을 깨웠다. 비에 젖은 공기 속에서 그 맛은 유난히 또렷했다. 햇빛이 구름 사이로 얇게 내려오자, 선글라스를 낀 아이의 표정 위로 과거 이 도시에서 머물던 나의 나날들이 겹쳐졌다. 햇빛은 위에서 내리쬐지만, 따뜻함은 기억이 되살아나는 자리에서 비로소 깊어진다.
루이지 루아르와 튈르리의 루브르
루이지 루아르(Luigi Loir)의 화폭을 마주하면 몽트뢰와 파리의 시간이 교차한다. 흔히 사람들은 파리의 화려한 건축물에 매료되곤 한다. 그는 파리를 그저 딱딱한 건물의 집합으로만 보지 않았다. 대신 건물을 감싸고 흐르는 날씨와 공기를 주인공으로 삼았다. 비가 오고, 구름이 깔리고, 찰나의 햇살이 젖은 보도블록 위로 산란하는 그 미묘한 습도의 변화를 그는 집요하게 관찰했다.
그의 작품 <튈르리 정원에서 본 루브르>를 보면, 화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것은 거대한 궁전이 아니라 낮게 내려앉은 회백색의 하늘이다. 미술사적으로 루아르는 야외에서 빛을 포착하는 ‘외광파’의 정신을 이어받으면서도, 차가운 도시 풍경을 따뜻하고 부드러운 감성으로 다시 그려냈다. 화면 중앙의 카루젤 개선문과 저 멀리 루브르의 모습은 안개 낀 공기 층에 감싸여 부드럽고 흐릿하게 녹아들어 있다. 웅장한 건축물의 형체를 강조하기보다, 도시를 포근하게 감싸 안은 대기의 질감과 공기의 밀도를 주인공으로 삼았다.
어떤 화가는 대상을 그리지만, 루아르는 대상 사이를 떠도는 여백을 그린다. 화면을 가득 채운 은은한 진주빛 공기는 파리의 위엄을 배경으로 밀어내고, 그 앞을 지나는 마차와 흩어지는 사람들의 생동감을 전면으로 끌어올린다. 특히 화면 하단, 지면 위로 늘어진 인물들의 그림자는 루아르 특유의 섬세한 필치를 보여준다. 낮게 깔린 구름과 대기를 머금은 습기만으로도 지면은 충분히 눅눅한 생동감을 머금고 있다. 그는 캔버스 위에 파리의 서늘한 공기와 그 속을 거니는 사람들의 체온, 보이지 않는 대기의 층을 겹겹이 쌓아 올렸다. 덕분에 우리는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날의 습도와 계절의 무게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루아르가 포착한 파리는 대개 흐릿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 덕분에 우리는 비로소 더 많은 것을 보게 된다. 강렬한 빛은 사물의 겉모습을 도드라지게 만들지만, 빛이 한풀 꺾이면 사물과 사물 사이의 관계가 보인다. 그는 날카로운 경계선 대신, 공기를 타고 서로의 색이 섞이는 ‘스며듦’의 순간을 포착했다. 눈부신 태양 아래서는 놓치기 쉬운 도시의 진짜 온도가 그 흐린 공기 층 사이에서 비로소 나온다.
몽트뢰의 레만호와 파리의 튈르리는 결국 하나의 선으로 이어진다. 비 내린 레만호가 사물의 윤곽을 지워 우리를 내면으로 이끌었듯이, 루아르의 흐린 공기는 눈부신 빛을 거두어내고 우리 삶의 민낯을 투명하게 비춰준다.
여행이 끝난 뒤 가장 오래 곁에 남는 것은 거대한 랜드마크의 위용이 아니다. 루아르의 그림이 그러하듯, 풍경 속에 녹아든 사람들의 온기와 나를 감싸던 그날의 공기다. 루아르는 파리의 하루를 과장 없이 펼쳐 두었다. 그가 켜켜이 쌓아 올린 얇은 대기의 층은, 열 마디 설명보다 깊은 ‘이곳에 머물렀다’는 감각을 우리 마음에 선명하게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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