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스터블의 구름과 나의 기록
글쓰기는 내 삶에 가장 환한 빛을 선사하는 지독하고도 아름다운 사랑이다.
실타래처럼 흩어지는 아침
아침 하늘이 막 뜯어낸 솜사탕의 단면을 닮았다. 엄지와 검지로 슬쩍 당기면 실타래처럼 가늘게 일어나는 그 섬세한 구름의 결이 나의 시선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예전 같았으면 그저 ‘하늘색’ 물감을 쓱 칠하고 말았을 풍경이다. 어린 시절 내가 그리던 하늘엔 늘 이글거리는 커다란 해와 노란 달만 주인공이었다. 구름을 정성껏 그려본 기억이 그리 많지 않다. 그만큼 세상을 가장 넓게 감싸고 있는 존재인 ‘하늘’에 대해 잘 모르고 살았는지도 모른다.
올해 삶의 계획표 1순위에 ‘건강’을 적어 넣었다. 매년 쓰던 단어지만 올해는 마음가짐이 조금 다르다. 온종일 책상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드리느라 손목이 시큰거리고 손가락 마디가 쑤셔오지만, 내 안의 세계에 깊이 몰입하는 이 황홀한 시간을 지켜내기 위해서라도 더 건강해지기로 다짐한다. 어린 시절 캔버스 앞에 앉아 화가가 되기를 꿈꿨던 그 순수한 열망이 이제는 매일 아침 글을 쓰며 내 일상을 열어주는 즐거움으로 이어지고 있다. 자판 위의 손가락 끝에서 문장이 피어날 때마다 나는 미치도록 행복하다. 글을 쓴다는 건 내 인생에 가장 커다란 빛을 채워 넣는 행위이면서 숨을 쉬듯 거부할 수 없는 지독한 사랑 그 자체다. 몰입의 즐거움은 존 컨스터블이 변해가는 구름을 쫓으며 느꼈던 그 치열함과 닮았을지도 모르겠다.
존 컨스터블은 아무도 주인공이라 생각하지 않았던 풍경을 주인공으로 만든 화가다. 당시 사람들에게 하늘은 그저 인물을 돋보이게 하는 조연에 불과했다. 그는 시골의 평범한 들판과 그 위를 떠다니는 구름이야말로 가장 장엄한 예술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초원에서 본 솔즈베리 대성당〉을 들여다보면 화면을 압도하는 건 거대한 성당 건물보다도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 요동치는 어두운 먹구름이다. 컨스터블은 이 순간을 붙잡기 위해 마치 과학자처럼 하늘을 연구했다. 그가 남긴 수많은 ‘구름 습작’을 보면 구름이 흐르는 방향과 빛의 산란을 기록한 치열한 관찰의 흔적이 역력하다.
무언가를 끈질기게 관찰한다는 것은 대상을 향한 지독한 사랑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이 마음을 잘 알 수 있을 거다. 특별한 것 없는 하루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무수히 많은 사건이 연결되어 있고 그중 단 하나만 깊이 파고들어도 충분한 글감이 되듯 컨스터블에게 하늘은 매일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는 거대한 도서관이었을 거다.
상실의 아픔을 무지개로 건너는 법
이 장엄한 풍경 뒤에는 컨스터블의 아픈 비밀이 숨어 있다. 1832년, 이 그림을 완성해 갈 무렵 그는 인생의 가장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었다. 평생의 사랑이었던 아내 마리아를 결핵으로 먼저 떠나보낸 뒤였다. 그에게 아내는 세상의 빛 그 자체였다. 그 빛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은 거친 폭풍우뿐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이 그림의 완성을 지켜봐 주던 단짝 친구 피셔 주교마저 세상을 떠난다. 그림 속 휘몰아치는 먹구름은 사랑하는 이들을 잇달아 잃은 화가의 찢겨진 마음 그 자체였을지도 모른다.
그는 절망하지 않았다. 화면 한쪽, 어두운 구름을 가르며 선명하게 피어오른 무지개를 보자. 폭풍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수직으로 솟아오른 성당의 첨탑. 그는 슬픔에 잠식되는 대신 그 슬픔을 관찰의 힘으로 승화시켜 희망의 증거를 그려 넣었다. 소중한 것들이 모두 저 하늘로 떠나갔기에 그는 더욱 간절하게 하늘을 올려다보며 색을 채워갔던 것은 아닐까.
흐르는 구름처럼, 우리도 흘러야 한다.
집 안에서 올려다본 아침 하늘은 쨍하게 맑지는 않다. 솜 같은 흰색 아래로 조금 더 진한 푸른빛이 내려앉고 군데군데 붉은 기가 섞여 있어 어쩐지 복잡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다. 컨스터블도 아마 이런 하늘을 보며 붓을 들었을 것이다.
구름은 흐른다. 단 한 순간도 같은 모양으로 머물지 않는다. 사람도 구름처럼 흘러야 한다. 슬픔에, 혹은 과거의 어느 지점에 고여 있으면 그 자리가 움푹 패어 상처가 깊어지고 만다. 바람이 구름을 밀어내 저만치 보내주듯 우리도 시련을 흘려보내고 다음 계절을 맞이해야 한다. 사계절이 순환하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섭리이며 인간의 삶 또한 그 순리를 닮았다.
컨스터블은 매 순간 변하는 하늘을 끈질기게 관찰해 그 찰나의 변화를 마음을 울리는 ‘감정의 언어’로 바꾸어 놓았다.
올해 나는 더 자주 하늘을 보려 한다. 내 세계에 몰입하는 황홀한 시간만큼이나 내 머리 위에서 시시각각 표정을 바꾸는 저 구름의 흐름을 사랑해 보려 한다. 구름이 흘러가듯 나 또한 멈추지 않고 나아가고 싶다. 가족과 틈틈이 여행을 떠나 새로운 풍경을 마주하고 그 여정에서 얻은 영감으로 꾸준히 글을 써 내려갈 것이다. 내가 애써 일구고 가꾼 몰입의 공간에서 정성껏 글을 빚어내고 그 진심이 더 많은 사람과 따뜻하게 맞닿기를 소망한다.
어린 시절 흔히 쓰던 ‘하늘만큼 땅만큼’이라는 말처럼 세상은 참으로 넓다. 그 넓은 세상 속에는 내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수많은 빛깔의 구름과 이야기가 숨어 있을 것이다. 솜사탕처럼 가느다랗게 흩어지는 이 아침의 구름이 저 멀리 흘러가고 나면 또 어떤 새로운 빛깔의 내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나는 기꺼이 그 흐름에 몸을 맡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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