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품격은 미역국이 넘치는 순간 사라졌다

#얀 스테인 '즐거운 가족'

by 김상래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

즐거운가족.png 즐거운 가족(1668) / Het vrolijke huisgezin / 얀 스텐 / Jan Havicksz. Steen(1625/1626–1679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글을 쓰는 작가의 일상이란 멀리서 보면 고요한 호수 같을지 모르나 그 수면 아래에서는 쉼 없이 발버둥을 친다. 새벽녘, 아직 모두가 잠든 시간. 한글문서 위를 유영하던 문장들이 채 마침표를 찍기도 전에 나는 부엌으로 향한다. 가족들이 깨기 전 아침을 준비하는 일은 작가라는 자아를 잠시 내려놓고 엄마이자 아내라는 옷으로 갈아입는 의식과도 같다.


오늘은 미역국이다. 홍합을 진하게 우려낸 국물에 다진 마늘을 듬뿍 넣고 끓인다. 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노트북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눈을 굴리다 보면, 어김없이 국물이 인덕션 위로 허옇게 넘쳐흐른다. 키친 타월로 흥건한 국물을 닦아내고, 찬물에 손을 헹구며 다시 원고 앞에 앉는다. 밥통에서는 친정엄마가 준 서리태와 시어머님이 보내주신 쌀이 섞여 김을 내뿜고, 그 위로 콩나물 한 움큼을 얹어 멀티태스킹의 정점을 찍어본다. 밥과 글을 동시다발적으로 돌리는 날이면 국은 넘치고 문장은 툭툭 끊기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이 번잡함이 내 삶의 연료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이 소란스럽고도 따뜻한 부엌의 풍경을 만들고 있자면, 17세기 네덜란드의 풍속화가 얀 스테인(Jan Steen)의 그림 <즐거운 가족(The Merry Family)>이 떠오른다. 스테인은 당시 도덕적인 교훈을 담으면서도 해학적이고 북적이는 가정의 모습을 그리는 데 탁월했다.


그림 속 풍경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다. 화면 중앙의 가장처럼 보이는 나이 든 남자는 술잔을 높이 치켜들고 목청 높여 노래를 부르고, 여성들이 종이를 들고 합창하듯 노래한다. 식탁 위에는 먹다 남은 빵과 고기, 아무렇게나 놓인 식기들이 흩어져 있으며, 아이들은 어른들의 행동을 그대로 모방한다. 아이들이 술과 흡연까지 따라 하는 장면이 있다. 앞쪽에서는 아이에게 술을 건네는 모습이 보인다.


벽난로 쪽에 붙은 쪽지에 “어른이 노래하면 아이들은 따라 부른다(Soo de ouden songen, pijpen de jongen)”는 속담이 적혀 있다. 이는 부모의 행동이 자녀에게 그대로 투영된다는 경고의 메시지이기도 하지만, 스테인 특유의 유머러스한 붓 터치는 이 정신없음을 비난하기보다 생동감 넘치는 삶의 한 조각으로 예찬하는 듯 보인다. 정돈되지 않은 거실, 쏟아질 듯한 술잔, 제멋대로 악기를 연주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마치 국물이 넘쳐 흐르는 나의 인덕션 앞 풍경과 묘하게 닮아있다.


가족들과의 여행을 앞두고 고양이 케어를 부탁하기 위해 친정엄마가 오시기로 했다. 평소 글 쓴답시고 집안 꼴을 엉망으로 해둔 딸의 모습에 엄마가 한숨지으실까 봐 부랴부랴 집안을 정리한다. 특히 신경 쓰이는 곳은 냉장고다. 묵은 것들을 비워내고 그 빈자리를 다시 먹을 것들로 채운다. 귤 한 박스와 싱싱한 딸기 한 팩을 사다 넣고, 엄마가 드실 미역국에는 평소보다 소고기를 훨씬 듬뿍 넣었다. 비우고 채우는 이 단순한 반복 속에 엄마를 향한 나의 미안함과 애정이 담긴다.


밥을 한 가득 먹고도 돌아서면 배고프다는 아이는 "엄마, 간식 먹을 게 없네. 육포랑 단백질 칩 좀 사 줘"라며 냉장고 옆 수납장을 열었다 닫았다 한다. "내일은 아침은 뭐야?"라고 묻는 아이를 보면, 내가 만드는 건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가족의 허기이자 사랑이라는 실감이 든다.

어느 날 문득 아이에게 물었다. "나중에 네 여자친구가 떡볶이 해달라고 하면 어떡할 거야?" 아이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그 정도는 내가 당연히 해줄 수 있지!" 내가 아이에게 해주었던 수많은 요리와 그 시간의 온기가 아이의 마음속에 고스란히 저장되어 있었나 보다. 얀 스테인의 그림 속 아이들이 부모의 노래를 따라 부르듯, 나의 아이 역시 내가 차려준 식탁의 온기를 기억하며 누군가에게 그 온기를 나누어주는 어른으로 자라나고 있는 거다.


작가로서의 삶은 늘 정적이고 고귀한 고독을 꿈꾸지만, 현실의 나는 넘친 국물을 닦아내고 콩나물을 삶고 밑 간장을 만들며 문장을 길어 올린다. 보기만 해도 혼이 쏙 빠질듯한 얀 스테인의 그림이 4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이유는 우리 곁에 살아 숨 쉬는 무질서한 생명력이 있기 때문일 거다.

어질러진 거실, 왁자지껄한 식탁, 넘쳐흐르는 미역국. 이 모든 번잡함은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이자, 내가 지켜내야 할 즐거운 가족의 초상이다. 부모가 부르는 노래가 아이의 피리가 되듯, 나의 이 소란스러운 아침 식탁이 아이의 생애에 따뜻한 배경음악이 되기를 바라며 다시 자판을 두드린다.

3-10 금방울새.jpeg 황금방울새(1654) / 카렐 파브리티우스 / Carel Fabritius(1622–1654)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

비록 내 삶이 렘브란트의 제자였던 카렐 파브리티우스의 <금방울새>처럼 독보적이고 정갈하며 품위 있는 그림은 아닐지라도, 얀 스테인의 그림처럼 북적이고 사람 냄새 나는 풍속화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아이가 크는 동안은 당연한 일이니까. 그럼에도 나는 꾸준히 글을 쓰고 있으니까. 글을 쓰는 손끝에 밴 마늘 향을 맡으며, 이 소란스러운 풍경 속에 다시 나의 문장을 심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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