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부산, 겨울 바다에 모네의 모래알이 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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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상래
트루빌의 나무 산책로에서 Sur les planches de Trouville 1870/ 클로드 모네/개인소장

네 번째 부산,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겨울 바다의 기억

부산은 내게 늘 시린 계절의 얼굴로 찾아왔다. 이번이 벌써 네 번째, 공교롭게도 매번 한겨울이다. 첫 번째 부산은 프랑스로 공부하러 가기 전인 2002년 1월이었다. 영양사 시험 준비 중인 둘째 동생을 제외한 부모님과 막냇동생, 그리고 나까지 넷이 함께했던 가족 여행. KTX도 없던 시절이라 부산까지 기차를 타면 한세월이 걸렸고, 2002년의 부산은 추웠다는 감각만 또렷하게 남았다. 모든 일정은 아빠의 진두지휘 아래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태종대를 걷고, 새벽 바다를 산책하며 저녁이면 다시 바닷가 앞을 걸으며 온종일 바다를 곁에 두었다. 그로부터 한 달 뒤, 프랑스 낭시로 출국했다.


두 번째 부산은 프랑스에서 1년 남짓 머물다 학생비자가 만료되어 한국에 들어오게 되면서, 30년 지기들과 떠난 여행이었다. 그때도 역시 한겨울이었는데, 영상을 전공한답시고 유학 전 200만 원 넘게 주고 산 귀한 캠코더를 늘 한 손에 보물처럼 들고 다녔다. 친구들, 언니들과 추운 바닷가 앞 플라스틱 테이블에 앉아 회를 시켜 먹었던 어렴풋한 장면 외에는 어디를 갔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뭐가 그렇게 좋았는지 기록된 동영상 속에는 ‘외계인’이라 불리던 나의 깔깔거림과 친구들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가득 채워져 있다. 두 번째 부산 역시 추운 겨울이었지만, 그 소리만큼은 참으로 따뜻했다.


세 번째 부산은 우리 아이가 여섯 살 되던 2017년의 겨울이다. 결혼 전부터 다니던 회사에 출산휴가를 냈지만, 나는 휴가 중에도 회사 업무를 받아 재택근무 형식으로 일을 이어가며 커리어의 끈을 놓지 않으려 애썼다. 정작 복직 시점이 다가오자, 아이를 두고는 도저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결국 퇴사를 선택했다. 프리랜서로 디자인 일을 받으며 아이 곁을 지키던 중, 아이가 조금 크자 회사에서 다시 복귀 의사를 물어왔다. 부모님이 등하원을 맡아주시기로 하면서 예전 직장으로 다시 돌아갔고, 복귀 후 직원들과 업무 여행으로 온 곳이 바로 부산이었다. 두 명이 한 숙소에 머물며 감천문화마을에서 어린 왕자와 사진을 찍고, 자갈치 시장에서 상무님이 구워주던 곰장어의 기억. 그렇게 세 번의 부산은 모두 차가운 겨울의 조각들로 내 안에 쌓였다.


모네가 포착한 찰나의 해변, 트루빌의 기억

그리고 지금, 가족과 함께하는 네 번째 부산 역시 한겨울이다. 해운대 앞바다가 펼쳐진 숙소에서 시간 맞춰 일어날 필요 없이 눈뜬 사람이 먼저 씻고 냉장고에서 ABC 주스를 꺼내 마신다. 해운대의 유명한 빵집 OPS에는 수원에서 이따금 찾던 에그조띠끄는 아쉽게도 없었다. 대신 작은 레몬케이크를 사 왔다. 꼭 정갈하게 밥을 차려 먹지 않아도 좋은 것, 아무 때나 일어나 주스와 케이크를 꺼내 먹어도 되는 것. 그것이 여행의 묘미 아니겠는가.


해운대 백사장을 보며 걷다 보니 클로드 모네의 <트루빌의 해변(The Beach at Trouville, 1870)>이 떠올랐다. 이 그림은 모네가 까미유와 결혼 직후의 트루빌 해변의 찰나를 포착한 작품이다. 모네는 빛의 변화에 따른 공기의 질감과 색채를 담기 위해 캔버스를 들고 직접 해변으로 나갔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그림에는 바닷바람에 날린 모래 알갱이가 젖은 물감에 박힌 채 남아 있다는 것. 바닷바람에 날려온 모래가 물감 위에 앉아 작품의 일부가 된 것이다. 마치 나의 네 번째 부산 여행의 기억 속에 율리역 금정산의 거친 돌길과 해운대의 바닷바람이 섞여드는 것처럼 말이다. 모네가 그날의 바람과 햇살을 모래알과 함께 캔버스에 박제했듯, 나 역시 틈틈이 개인 톡에 단어를 남기며 자칫 희미해지기 쉬운 기억의 뿌리를 심어둔다.


기록으로 엮어가는 삶의 풍경

이번 여행에서 나는 내 체력의 민낯을 확인했다. 율리역에 내려 국립공원으로 새로 지정된 금정산에 오르다 길을 잘못 드는 바람에 여간 돌산이 아닌 곳을 헤매야 했다. 글 쓰고 수업 준비하느라 종일 앉아 있기를 반복한 몸은 다람쥐 같던 예전의 나를 산에 오르게 두지 않았다. 7km 산의 3km 지점에서 중도 하차하며, 돌아가면 무조건 헬스장으로 가리라 다짐했다. 건강검진보다 명쾌하게 내 몸의 구석구석을 감지했으니 차라리 잘된 일이다.


부산은 생각보다 거대하고 다양함이 공존하는 도시다. 어쩐지 굉장히 싸나이다운 기운이 느껴진다. 남편이 속초에 살지 않았다면 결혼하지 않았을 거라 말하곤 하는데, 그건 바다가 있었기 때문이다. 속초의 바다가 맑고 청량하며 얌전하고 여성스러운 정취를 간직했다면, 부산의 바다는 광활하고 고운 백사장을 품었으면서도 거대한 빌딩 숲과 이국적인 활기 속에 당당한 위용을 뽐낸다. 부산역에서 해운대로 오며 건넌 세 개의 다리는 저마다 다른 풍광을 보여주었다. 먼저 부산항대교를 건너며 마르세유의 요트 항구 같은 이국적인 정취에 취했고, 이어지는 거대한 물류 항구와 끝도 없이 늘어선 크레인들을 지나며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부산의 역동성을 마주했다. 그리고 마침내 광안대교 너머로 펼쳐진 해운대는 내게 니스의 해변을 연상시켰다. 겨울에 한국에서 온 대학 동기들과 니스 바다를 걷고 호텔 사이를 거닐던 그날의 기억이 해운대의 화려한 빌딩 숲 위로 겹쳐졌다. 부산은 그 자체로 거대한 바다를 품은, 수만 가지 표정의 도시였다.


출간 계약 후 쉼 없이 이어지는 강의와 강연, 수업들 사이에서 좀처럼 원고에 몰입할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게 마음을 졸이며 3년을 보냈는데, 외부 일정들을 하나둘 정리하고 오직 글 쓰는 데만 집중하는 시간을 가진 끝에 드디어 첫 번째 원고의 출간 일정이 대략적으로 잡혔다. 마침 가르치는 아이들의 초등학교 방학이 시작되었고, 중학교 방학을 맞이한 우리 아이의 일정까지 맞물렸다. 여기에 연말연초 가장 바빴던 남편의 업무까지 일단락되면서, 우리 가족은 비로소 모든 급한 일정을 해결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부산행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돌아가면 해야 할 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 쉴 수 있을 때 실컷 놀고 먹으려 하지만, 부지런히 쓰고 있는 다음 원고를 정성껏 갈무리하고 싶은 욕심에 자꾸만 일과 여행의 경계를 넘나든다. 그래도 매사 빈틈없는 완벽주의 기질을 가진 신랑 덕분에, 구멍 많은 나조차 어느새 자극을 받아 '뭐라도' 계속하게 되니 참 다행이다. 항상 중요한 건 뭐라도 하는 것이니까!


사실 우리 세 식구가 이렇게 온전히 붙어 있는 시간은 생각보다 자주 주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붙어 있을 수 있을 때 최대한 딱 붙어서, 손바닥 안의 화면보다는 서로의 눈을 더 자주 보고 대화하려 한다. 물론 틈틈이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고, 영상을 촬영하고, 앱에 기록하며 이 순간을 글로 적어두는 일도 잊지 않는다. 저장할 곳이 많아진 덕분에 이 소중한 기억들은 결코 흩어지지 않고 내 안에 차곡차곡 쌓일 것이다.


모네의 캔버스에 박힌 모래알이 그날의 바람을 증명하듯, 내가 남긴 이 단어와 기록들이 훗날 나의 덧없는 기억을 지탱해 줄 단단한 뿌리가 되길 소망한다.



최백호의 '부산에 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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