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아킨 소로야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보편적인 예술이 된다
#호아킨소로야
차가운 겨울 바다에서 만난 눈부신 여름
가족과 함께한 파리에서의 나날을 회상해 본다. 보름의 유럽 여행 중 허락된 나흘이라는 시간, 이층 버스 창가에 앉아 학창 시절의 아스라한 추억이 머문 거리들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기억력이 그리 좋지 못한 내게, 차창 밖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들은 좀처럼 마음의 자리를 잡지 못했다. 오히려 내 기억의 앨범을 채우고 있는 것은 비 내리는 저녁 우산 아래 비친 우리들의 긴 그림자, 마트에서 고심 끝에 고른 납작 복숭아의 달콤함, 그리고 몽마르뜨 언덕의 어느 작은 카페에서 맛보았던 크림브륄레의 바삭한 설탕 막 같은 것들이다.
나는 전형적인 ‘대문자 F’의 감성을 지녔다. 유명한 명소를 빠짐없이 도장 깨기 하듯 다니는 것보다, 주요 관광지를 덜 가더라도 좁은 골목길을 걷고 눈으로 충분히 들여다보며, 숙소에서 챙겨온 사과 한 입의 상큼함에 행복해하는 그런 여행이 내게 맞는다. 반면 남편은 나와는 정반대의 사람이다. 그 사이에서 우리 아이는 다행히 나와 신랑을 적절히 닮으며 자라고 있다.
그런 우리 가족이 다시 길을 나선 것은 1월 중순, 찬 바람이 부는 해운대 바다 앞이었다. 며칠은 수도권 못지않은 추위가 이어졌다. 그러다 남은 절반의 시간은, 겨울이라는 사실이 무색할 만큼 볕이 참 따사로웠다. 저 멀리 대여섯 살 난 아이들과 바지를 걷어붙이고 바다에 발을 담근 어느 가족의 모습이 보였다. 30대만 같았으면 나도 겉옷을 모래 위에 던져두고 당장이라도 뛰어들었겠지만, 이제는 차가운 물살이 발목에 닿을 때의 시린 감각이 먼저 걱정되는 나이가 되었다. 한여름 계곡에 몸을 담그는 일은 이제 실로 불가능에 가까워졌다. 차가운 물에 닿는 순간, 손목과 발목의 마디마디가 얼어붙어 끊어질 듯 시려 오기 때문이다. 망설이던 그때, 의외의 상황이 펼쳐졌다. 바다가 있는 곳에서 자랐지만, 바다보다는 산을 좋아하고, 뒷처리가 번거로운 일은 좀처럼 나서지 않는 '현실적인' 남편이 먼저 신발을 벗고 바지를 걷어 올리는 것이 아닌가.
그 모습에 나도, 아이도 양말을 벗어 던지고 파도가 밀려오는 차가운 바닷물 속으로 발을 내디뎠다. "악!" 소리가 절로 나오는 얼얼한 추위였지만, 우리는 대여섯 살 난 아이들처럼 웃으며 가는 모래 위에 금세 씻겨 나갈 하트를 새기고 발자국을 남겼다. 부산 여행의 숱한 풍경 중 가장 형형하게 각인된 장면이다. 평생 잊히지 않을 기억으로 남으리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스페인의 화가 호아킨 소로야가 포착한 해변의 그 찬란한 빛처럼, 내 앞의 풍경도 그렇게 빛나고 있었다.
빛과 생동감의 화가, 호아킨 소로야
호아킨 소로야의 작품을 마주하고 있으면, 캔버스의 경계를 허물고 쏟아지는 지중해의 햇살이 피부에 따스하게 와닿는다. 뒤이어 밀려온 바다 내음이 콧속을 알싸하게 파고들 때면, 어느새 내 발밑에도 짭조름한 윤슬이 일렁이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1908년에 그려진 그의 대표작 <해변을 따라 달리기>는 발렌시아 해변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림 속 아이들은 거침없이, 오직 질주하는 즐거움에 몸을 맡긴 채 물보라를 일으키며 달린다. 젖은 아이들의 피부 위로 반사되는 햇빛, 파도의 포말 속에 숨어 있는 보라색과 푸른색의 그림자, 그리고 역동적인 붓 터치는 찰나의 순간을 영원 속으로 박제해 놓았다. 그의 그림이 이토록 생동감 넘치는 이유는 거대한 캔버스를 들고 직접 해변으로 나가 바람과 햇살을 맞으며 그렸기 때문이다. 호아킨 소로야는 ‘외광파(En plein air)’ 화가였다.
"나는 검은색을 쓰지 않는다.
자연에는 순수한 검은색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림 속 그림자는 모두 색깔을 가지고 있다.“
_호아킨 소로야
고난을 빛으로 승화시킨 인생
소로야의 그림은 이토록 눈부시게 행복을 노래하지만, 정작 그의 유년은 그 빛을 시샘하듯 어둡고 적막했다. 어쩌면 삶의 비루함을 가리기 위해 필사적으로 행복을 포장하며 사는 우리네 모습처럼, 그의 눈부신 캔버스는 사실 사무치게 외로웠던 어린 날의 결핍이 일궈낸 간절한 빛이었는지 모른다. 1863년 스페인 발렌시아에서 태어난 그는 불행히도 두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전염병으로 부모님을 한꺼번에 여의었다. 이모 부부의 손에 자라난 소로야에게 바다는 어쩌면 상실의 아픔을 달래주는 유일한 안식처였을지도 모른다.
그는 일찍이 발현된 재능을 바탕으로 로마와 파리에서 유학하며 당대 유럽을 휩쓴 인상주의의 세례를 받았다. 하지만 그가 결국 도달하고자 한 종착지는 화려한 도시가 아닌, 고향 발렌시아의 눈부신 '빛'을 포착하는 일이었다.
소로야는 아내 클로틸데를 평생토록 깊이 사랑한 애처가였고, 아이들에게는 한없이 다정한 아버지였다. 그의 캔버스 속에 자주 등장하는 우아한 여인과 천진난만한 아이들은 바로 그가 세상에서 가장 아끼던 가족들이다. 그는 자신의 가장 사적이고 행복한 찰나를, 시공간을 초월해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예술로 승화시킨 화가였다.
그는 생전에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유럽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그의 전시는 구름 관중을 불러 모았다. 그는 명성에 안주하지 않고 스페인 전역의 민속과 풍경을 기록하는 거대한 연작 프로젝트에 매진했다. 뇌졸중으로 쓰러져 붓을 놓기 전까지, 태양 아래 존재하는 모든 생명력을 캔버스에 담아내고자 했다.
일상의 캔버스 위에 새기는 행복
해운대의 차가운 바닷물을 밟으며 나는 소로야의 그림 속 아이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어른이라는 외투를 잠시 모래 위에 벗어두고, 시린 발목의 통각마저 즐거움으로 승화시키던 그 순간. 그것은 효율을 따지는 'T'의 사고도, 동선을 고민하는 여행자의 계산도 끼어들 틈이 없는 순수한 ‘현존’의 시간이었다.
소로야는 화가는 결코 자연보다 우월할 수 없고 오직 자연의 빛에 다가가려 노력할 뿐이라고 말했다. 우리의 삶 역시 거창한 계획이나 화려한 관광지보다는, 예기치 않게 마주한 따스한 햇살 한 줌, 가족과 함께 소리를 지르며 뛰어든 차가운 파도 같은 ‘빛나는 찰나’들로 완성되는 것이 아닐까. 비록 우리의 발자국은 다음 파도에 씻겨 내려가겠지만, 그날의 해운대 바다에 새긴 웃음소리는 소로야의 캔버스처럼 내 마음속에 지워지지 않는 색채로 남을 것이다.
결국 여행이란, 그리고 인생이란, 완벽한 풍경을 멀리서 보는 것이 아니라 그 풍경 속으로 기꺼이 발을 담가 온몸으로 젖어드는 과정임을 새삼 깨닫는다.
그 젖어드는 과정에서 인생의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 또한 짙어지겠지만, 그 그림자조차 검은색이 아닌 아름다운 보랏빛과 푸른빛으로 빛나고 있음을 믿는다. 우리는 그저 각자의 색을 품은 채, 밀려오는 파도를 향해 기꺼이 다시 뛰어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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