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화의 작품에서 발견한 나만의 나무를 돌보는 법

몰입은 집중이 아니라, 버리는 과정

by 김상래
최정화의 작품은 무너질 듯 위태로우면서도 견고하게 서 있는 내 삶의 '안간힘'을 상징한다. 흩어져 있을 땐 하찮은 소모품일 뿐이지만, 수직의 질서를 갖추었을 때 비로소 단단한 '나무'가 된다. 형형색색의 나무에게 빌어야지. 흔들리지 않게 해달라고 말이야.
최정화 (Choi Jeong-hwa, b.1961)/ 알케미(Alchemy)? / 혼합 매체 (플라스틱 소품, 철골 구조물 등)

일상의 평범한 소품들이 쌓여 만들어낸 거대한 질서. 알록달록한 플라스틱 바구니와 대야들이 수직으로 뻗어 올라간 형상은 마치 지금 내 머릿속 같다. 무수한 생각과 일상의 파편들이 시냅스처럼 복잡하게 얽히며 서로를 붙들고 있는 풍경. 이런 혼란 속에서도 나는 나만의 ‘나무’를 떠올린다.


요즘의 나는 어제의 나와 별반 다르지 않다. 매일 다이어리에 할 일을 적어 두고 1번부터 하나씩 지워나간다. 아침에 일어나면 아이를 챙겨 보내고 명상음악을 틀어 놓는다. 그리곤 아침단상을 적는다. 예전엔 공개로 해두었던 것을 비공개로 바꾸었다. 여전히 나는 하나씩 차근차근. 느리지만 나답게 살고 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자꾸만 새로운 연결고리들이 뻗어 나가려 한다. 하나의 생각이 다른 생각의 꼬리를 물고, 그것이 다시 거대한 그물망이 되어 나를 세상의 속도에 발 들여놓게 만든다. 그럴 때마다 나는 스스로를 다독인다. 몰입은 단순히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들을 솎아내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내가 정해놓은 삶의 우선순위가 있다. 크고 작은 일들이 길가에 널브러진 낙엽처럼 흩어져 있을 때, 내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나무의 밑동을 확인하는 것. 뿌리가 어디에 닿아 있는지 기둥이 얼마나 단단히 서 있는지 살피는 일. 밑동이 견고해야 그 위로 뻗어 나가는 가지들이 제 방향을 잡을 수 있다. 그래야만 계절이 바뀌었을 때, 비로소 약속된 잎이 돋고 꽃이 피어날 수 있다.

인간의 삶 또한 나무의 생애와 닮아 있다. 너무 곧기만 한 나무는 거센 바람에 부러지기 쉽지만, 그렇다고 아무 곳에나 몸을 휘감아 무엇이 본체인지 알 수 없게 변해버리는 넝쿨 같은 삶은 지양하고 싶다. 타인의 기대나 세상의 속도에 자신을 맞추느라 정작 ‘자기 자신’이라는 기둥을 잃어버리는 것은 슬픈 일이지 않나. 나는 그저 나만의 무늬를 가진, 나만의 나무가 되고 싶을 뿐.

누군가에게는 이런 나의 태도가 조금은 고집스럽고 유연하지 못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나는 내 마음의 모양대로 마음껏 나답게 살아가고 싶다. 켜켜이 쌓인 최정화의 작품들 사이에서 내가 발견한 것은 세상의 온갖 색상으로 뒤덮인 화려함이 아니라,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수직으로 버티고 선 존재들의 안간힘 같은 것. 그러니까 어떻게든 버텨 보려고 서 있는 모양새. 쓰러지지 않기 위해, 바닥에 널브러지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는 상태. 사진 안에서 나를 만난다.

복잡한 시냅스의 연결을 잠시 멈추고, 나는 다시 나의 밑동을 쓸어본다. 가지 끝에 맺힐 꽃의 빛깔을 고민하기보다 지금 내 발밑의 흙이 얼마나 건강한지 확인한다. 흔들릴지언정 꺾이지 않는 나만의 선을 지키며, 나라는 이름의 나무를 정성껏 돌보기로 한다.

삶을 살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나답게 사는 것. 내가 누구인지 알면서 사는 게 중요한 것 아닌가 말이다. 첫 책을 내며 북토크를 크게 했었다. 준비할 것도 많았고 돈도 많이 썼다. 무엇이 남았는고 보니 기록이 남았다. 네 번째 책이니 소소하게 지인들 몇 명과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는 북토크 자리가 내 결에 맞겠다 싶었다. 신랑과 유한이와 함께 센터에 다녀왔다. 열 명 남짓 사람들이 앉을 수 있게 책상을 일렬로 옮기고 서랍장도 무어라도 올려 둘 수 있도록 자리를 새롭게 만들었다. 나답게, 그래. 꾸밈없이, 담백하게, 소박하게. 그렇게 하면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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