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배터리도 내 몸도 ‘방전’된 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by 김상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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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지미르 말레비치 (Kazimir Malevich, 1879–1935)/검은 원 (Black Circle / Chyorny krug) 1915년 (1920년대 중반 재제작 판본 존재)/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약 106 x 106 cm (버전에 따라 상이, 주립 러시아 미술관 (State Russian Museum, St. Petersburg)소장


카지미르 말레비치(Kazimir Malevich)의 ‘검은 원(Black Circle)’. 캔버스의 흰 바탕 위에 덩그러니 놓인 육중한 검은 형체. 아무것도 설명하려 들지 않기에 세상의 모든 무게가 느껴진다. 며칠, 근육통을 동반한 지독한 몸살과 가래가 끓어 숨쉬기조차 버거웠다. 내게 주어진 모든 시간이 ‘검은 원’의 형상을 닮아있었다. 비워낸 줄 알았으나 지독하게 꽉 차 있는 무거운 상태.


아이에게서 시작된 감기가 내 몸으로 옮겨오고, 신랑에게 옮겨가 세 사람 모두 감기와 사투를 벌였다. 첫날 나의 상태는 아침에 눈을 뜨니 기침과 함께 온몸이 으스러질 듯 아파 왔다. 간신히 오전 강의를 마쳤고, 오후에는 어르신들이 계신 마도에서 마스크를 쓰고 말을 이어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운전대를 잡은 손등 위로 피로가 납처럼 내려앉았다. 아이에게 피자를 시켜주고, 아이가 처방받았던 약 한 봉지를 털어 넣은 채 그대로 깊은 잠속에 빠져들었다.


말레비치가 처음부터 이렇게 극단적인 추상을 추구했던 작가는 아니었다. (로스코처럼) 1879년 우크라이나 키이우 근처에서 태어난 그는 초기에는 인상주의와 야수주의, 입체파의 영향을 받으며 대상의 형태를 탐구했다. 1915년, 그는 회화에서 모든 재현적 요소를 제거한 '절대주의(Suprematism)'를 선언하며 미술사에 거대한 자욱을 남겼다. 그에게 ‘검은 원’은 세상의 모든 복잡한 감정과 구구절절한 설명을 다 지워내고 남은 '순수한 것‘ 자체였으며 마치 우주의 모든 무게를 눌러 담은 거대한 에너지 덩어리였다.


다음 날 아침, 상태는 더 좋지 않았다. 숨을 쉴 때마다 가래 낀 폐부에서 쌕쌕거리는 금속성 소리가 났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말레비치가 모든 구상성을 배제하고 그려 넣은 검은 형체처럼, 나의 세계에서도 일상의 색채는 모두 사라지고 오직 ‘통증’이라는 거대하고 검은 덩어리만이 존재감을 드러냈다. 아이에게 핫케이크를 겨우 구워주고, 입안에 무엇을 넣을 기력도 없이 다시 누웠다. 간간이 터져 나오는 기침 끝에 뱉어내는 묵직한 가래는 그간 누적된 피로의 증거처럼 느껴졌다.


문득 아버지가 떠올랐다. 임종 직전, 가래가 가득 차 제대로 눕지도 못한 채 밤새 앉아 계셔야 했던 아버지. 숨이 막혀 죽을 것 같다는 공포를 느끼는데 아버지는 그 긴 시간 얼마나 고독하고 괴로웠을까. 아픈 몸은 이토록 이기적이어서, 타인의 고통을 나의 통증을 통해서만 온전히 감각하게 된다. 아이 밥을 차려주고 겨우 한 숟가락을 삼키며 약 기운에 의존해 잠들기를 반복했다. 병원까지 갈 엄두조차 나지 않는, 철저히 고립된 ‘검은 원’의 시간 속에 갇혀 있었다.


말레비치의 삶은 굴곡이 깊었다. 러시아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는 새로운 예술의 꿈을 펼쳤지만, 스탈린이 집권하면서 위기를 맞았다. 자유로운 예술보다는 국가의 입맛에 맞는 그림만을 강요하던 시대였다. 그의 추상화는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한 그림'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말년에는 그가 거부했던 옛날 방식의 그림으로 되돌아가야 하는 아픔도 겪었다. 그는 죽음을 앞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이 믿었던 예술의 세계를 포기하지 않았다. 스스로 자신의 장례식을 기획하며 관에 '검은 사각형'을 그려 넣고 묘비에도 단순한 기하학 문양을 새겨달라고 유언했다. 죽음마저도 자신이 추구했던 간결하고 강렬한 예술로 완성하고자 했던 것이다.

감기 사흘째 되는 날, 신랑이 주문해 준 여수산 냉이와 소고기를 넣고 된장국을 끓였다. 제철의 감각이 희미해진 시대라지만 봄을 머금은 냉이의 향은 어쩐지 건강해지는 기분을 만들었다. 아이에게 든든한 아침을 차려주고 딸기를 반으로 갈라 내어주었다. 아이는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내 양손을 만지며 등교했다. 작은 온기가 검은 원의 테두리에 마알간 빛을 둘러 주었다.


아이를 등교시킨 후 드디어 병원으로 향했다. 며칠간 방치된 차도 내 몸처럼 기운을 잃었는지 배터리가 방전되어 있었다. 보험사 긴급출동 서비스로 배터리를 충전한 후, 상태가 심각할 때만 마지막 보루처럼 찾는 병원으로 차를 몰았다. 진료실에서 의사는 폐 소리가 심상치 않다며 곧장 엑스레이 촬영을 권했다. 천식이나 폐렴일지도 모른다는 말에도 그리 겁나지 않았던 건, 고양이를 키우며 이미 여러 번 비슷한 경험을 했던 터라 생긴 일종의 담담함이었다.


엑스레이 결과는 다행히 정상이었다. 하지만 왼쪽 폐소리가 좋지 않다며 폐렴 전 단계에 준하는 강한 약과 함께 수액을 처방했다. 수액실에 누워 두 종류의 수액이 내 혈관을 타고 천천히 스며드는 것을 지켜보았다. 차가운 액체가 몸속으로 들어오는 동안, 나는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며 비로소 통증 너머의 정적을 마주했다.


수액의 힘이었을까, 센터로 돌아오는 발걸음은 한결 가벼웠다. 내가 아팠던 사람이 맞는가 싶은 컨디션이 되었다. 센터 아래 새로 생긴 편의점에서 산 전복죽을 데우기 위해 공동주방의 전자레인지 앞에 섰다. 배가 고파서라기보다 약을 견뎌낼 위를 채우기 위한 행위였다. 따뜻한 죽을 한 그릇 비우고 약을 털어 넣은 뒤, 센터 창문을 활짝 열었다.


창밖으로는 봄이 오면 푸릇한 잔디가 돋아날 뒤뜰이 보이고,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사람들과 다정한 노부부의 모습이 평화롭게 펼쳐졌다. 말레비치의 ‘검은 원’은 정지된 상태가 아니라, 무한한 공간 속에서 회전하고 움직이는 에너지의 응축이다. 나의 며칠 또한 고통이라는 검은 심연 속에 머물렀지만, 그것은 다시 일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필연적인 멈춤이었을지도 모른다. 지독한 통증이 지나간 자리에 다시 맑은 공기가 들어찬다. 캔버스의 흰 바탕이 다시 보이기 시작하는 것처럼 나의 일상도 이제 막막했던 검은 원을 뚫고 다시 시작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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