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_프리다 칼로와 나혜석, 그리고 까미유 끌로델

나혜석

by 김상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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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의 여류화가

세계여행을 통해 견문을 넓히고 야수파의 영향으로 다양한 그림들을 남겼지만 유럽에 머무는 동안 최린과의 밀애담으로 가정 불화가 지속되다 남편 김우영이 생활비를 보내주지 않자 생활고로 최린에게 보낸 편지가 친구 남편에 의해 알려지면서 35세 나이에 이혼을 하게 된다.

경제적으로 어려워진 나혜석이 최린을 찾아갔으나 차가운 냉대와 권력의 위압만 있어 최린을 상대로 위자료 청구소송을 제기한다. 하지만 최린의 사전 협의로 무마되고 그녀는 세상으로부터 부도덕하고 부정하다며 손가락질을 받는다. 시대는 그녀를 다시 조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1932년부터 1936년까지 다양한 글들을 기고했지만 1937년 좌절 속에서 김일엽을 찾아 다시 수덕사로 갔다. 그때는 이미 그녀의 육체와 정신이 예전 같지 않을 때다. 나혜석에 대한 글은 관심이 있어 길게 적어 놓은 적이 있으니 아래의 링크에서 참고하면 좋을 듯싶고 오늘은 수원 출신 나혜석의 수원 그림에 대해 몇 점 올려볼까 한다. <그녀 불꽃 같은 생애를 그리다.나혜석>_이구열.서해문집을 통해 연대기를 중심으로 글을 올린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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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지금의 서호/ 우 <수원 서호>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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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화령전
20210105_182802.jpg <화영전 작약> 1934
화령전(華寧殿)
사적 제115호(1963.1.21)
화령전은 1801년(순조 원년) 정조대왕의 뜻을 받들어 화성행궁 옆에 세운 건물로 정조의 초상화를 모셔놓은 영전(影殿)이다. 영전은 보통 제사를 지내기 위해 신위를 모신 사당과는 구별되는 건물로, 선왕의 초상화를 모셔놓고 살아있을 때와 같이 추모하던 곳이다.
화성에서 ‘화’ 자와 『시경』의 ‘돌아가 부모에게 문안하리라 [歸寧父母]’라는 구절에서 ‘령’ 자를 따서 이름 붙인 것이다. 화령전은 정조대왕의 뜻을 받들어 검소하면서도 품격 있게 만든 조선시대의 대표적 영전이다.

경기 수원시 팔달구 신풍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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