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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상래 Jun 24. 2021

<서평>_프리다 칼로와 나혜석, 그리고 까미유 끌로델

까미유 끌로델


한 세기에 탄생할까 말까 하는 천재적인 예술적 재능을 지녔으나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편견 속에 버려졌다. 또한 로뎅을 진정 사랑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으나 돌아온 것은 배신 뿐인 비극적인 삶의 여인이었다. 그 배신감에 사로잡혀 그녀는 피해망상에 시달리게 되었으며, 결국 스스로를 극복하지 못하고 비참하게 무너져 버린 것이다.
_프리다 칼로와 나혜석, 그리고 까미유 끌로델. 정금희

1864년 프랑스 빌뇌브 쉬르 페르의 작은 시골 마을.

1남 2녀 중 장녀로 태어난 까미유 끌로델의 이름은 원래 생후 2주일 만에 사망한 첫아들을 생각하며 부모님이 양성적인 '까미유'로 지어주며 그녀 인생이 시작된다.


첫아들을 잃은 슬픔에 까미유의 탄생도 달가워하지 않았던 어머니.

까미유 끌로델의 정신적인 고통은 그 어린 시절부터 깊게 뿌리 박혀 훗날 로뎅을 만나고 헤어지면서 발화가 된 게 아닐까 싶다. 반면 까미유를 유독 예뻐했던 아버지 덕분에 까미유는 조각가로 자신의 인생을 시작할 수 있었다.


까미유로 인한 가정 불화로 그들 부부는 이혼하게 되지만 그녀의 동생 '폴 끌로델'은 누이의 푸르고 고혹적인 눈빛과 열정적인 재능을 사랑해 죽기 전까지 많은 편지를 주고받는다. 마치 고흐와 그의 동생 테오처럼...

어려서부터 남다른 개성, 소아마비를 앓아 불편해진 다리, 빼어난 미모, 일에 대한 열정, 자부심과 고집이 강한 성격의 소유자였던 '까미유 끌로델'


내 아이디 '까뮤'는 '까미유 끌로델'을 줄여 만든 아이디로 고등학교 때 그녀에 관한 영화를 보며 막연히 그녀처럼 열정적이기를 원했기에 사용하게 되면서 내 이름 대신으로 굳어졌다.


까미유의 재능을 알았던 아버지는 알프레드 부셰에게 그녀를 소개하고 조각에서 가장 중요한 음영 대조나 생명력이 깃든 작품을 보고 미술학교 교장에게 소개한다.

그곳에서 로뎅의 사사를 받지 않았냐는 질문을 받았지만 까미유는 그 당시 로뎅이라는 이름 조차 들어보지 못했다.


<중년> 1894~1903 브론즈


<로뎅의 흉상> 1888 브론즈

한눈에 사랑에 빠져버린 로뎅.

20년을 함께 산 아내 로즈 뵈레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랑에 빠져 버린 로뎅은 까미유에게 이런 편지를 남긴다.



내가 그대의 손에 입을 맞추노라면
그대는 어느덧 나에게 활활 타오르는 기쁨을 주고 있다오.
비로소 나의 영혼은 힘 있게 존재하기 시작하며
당신을 향한 내 존경의 마음은
사랑의 광란 속에 항상 가까이 머문다오.

_로뎅이 까미유에게 보낸 편지 중

로뎅은 자신이 참석하는 파리의 모든 사교계에 까미유를 동반하면서 미모와 예술을 겸비한 여류 조각가로 거듭난다. 그만큼 까미유에게는 보는 사람을 흡입하는 강한 매력이 있었다.

하지만 까미유는 수많은 관심 속에서도 늘 외롭고 고독해 혼자 책을 읽거나 박물관이나 전시장을 다니기 일쑤였다.

책에서 찍은 <입맞춤> 1886 브론즈

단테와 보들레르로부터 받은 지옥에 대한 영감으로 <지옥의 문>을 위한 작업에 임하던 두 사람은 서로 조언을 구하고 감동을 주는 사이였다.


까미유의 아버지에게도 비밀인 둘만의 호화로운 공간에서 마음껏 사랑을 나누었지만 시간이 흐르며 자리를 비우는 로뎅의 빈자리를 독서와 그림을 그리는 시간으로 보낸다.


까미유와 로즈 뵈레와의 싸움. 그 사이에서 로즈 뵈레를 먼저 챙기는 로뎅.

수차례 임신과 유산으로 힘든 일을 겪고 있는 까미유에게서 점점 멀어지는 로뎅.

로뎅의 뮤즈로 있는 동안 자신의 이름으로 서명할 수 있는 작품들이 극히 소량인 점을 봐서는 아무리 영특했다고는 하나 헛 똑똑이가 아니었을까?(자꾸만 안타까워서 사심이 들어간다.ㅜㅜ)

로뎅의 작품을 도와주고 그의 모델이 되면서 단 한 푼의 모델료도 받지 않았고 정기적인 급여마저도 받았다는 증거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고 한다.



<끌로토> 1893 브론즈 / <사쿤탈라> 1905 대리석 / 로뎅 <영원한 우상> 1889

1893년 그녀 나이 29세.

로뎅과의 사랑은 내연의 관계로 변해 버렸고, 조각가로 아무리 노력을 해도 인정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스승의 그늘 아래에 있던 까미유는 결별을 결심한다.

로뎅이 없는 까미유는 재정적으로 힘든 나날이 되었고 작품의 반응도 미미해 사회에 절망과 환멸을 느낀다.

하지만 폐쇄적 생활을 하던 이 시기가 까미유 끌로델의 많은 걸작들을 만날 수 있던 시기이기도 했다.

<왈츠>, <끌로토>, <어린 소녀 샤틀렌느> 등의 아름답고 힘이 넘치며 섬세한 대표작품들이다.

안타까운 점은 이 시기 제작된 많은 작품들이 분실되었거나 수집가를 통해 박물관에 뿔뿔이 흩어져 제대로 알려지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왈츠> 1895 브론즈

<왈츠>는 까미유의 가장 유명하고 대표적인 작품으로 로뎅과의 행복했던 시절 제작되었다.

실제로 2003년 파리의 '로뎅 박물관'에서 만난 그녀의 작품들을 보며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있다.

로뎅의 힘이 넘치는 작품들과 함께 있던 까미유 끌로델의 슬픈 조각상들이 그때를 떠올리게 한다.


로뎅의 긴장되고 생동감 넘치는 육감적인 인체는 까미유 끌로델을 만나 유연해지고 섬세해지며 예민한 감성을 나타내게 되고 까미유 끌로델 역시 로뎅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로뎅에게 제자 까미유 끌로델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로뎅은 이렇게 대답한다.


나는 금을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를 가르쳤지만 그녀는 자신의 금을 찾아냈다.
_로뎅

까미유의 인생에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사람을 꼽자면 그녀의 동생이자 시인인 '폴 끌로델' 그리고 아버지와 '로뎅'.

로뎅의 앞길에 까미유가 방해가 되는 날이 오고 까미유의 앞길 또한 차후엔 로뎅까지 합세해 작품을 완성하지 못하게 된다. 젊은 날 함께 영향을 주고받고 사랑을 했던 사람들의 훗날이 축복스럽지 않음은 부정한 관계로 이어진 그들의 행보에 사회도 함께 움직였다고 보인다.


뛰어난 미모와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 자신을 버리는 사랑을 하며 결국 스스로 서기 힘들었던 까미유 끌로델. 그녀가 은둔하며 깨부순 작품들을 현실에서 볼 수 없음이 안타깝고 30년이라는 긴 생애를 지독히도 매정한 어머니의 복수로 정신병원에 감금된 채 살다가 다시는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없었던 사람.

자상하고 사랑이 넘치던 아버지의 죽음으로 까미유는 더욱 혼자 남게 되었다.


이자벨 아자니와 제라르 드빠르듀 주연


줄리엣 비노쉬, 브루노 뒤몽 주연

강박증세 이외에 별다른 정신 벽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세상 밖으로 간절히 나오길 바라던 소망들이 묵살되며 남동생 폴 끌로델의 뜸한 방문 외에 그녀를 방문하는 이는 없었다.


까미유의 증세가 호전되어 외출을 해도 된다는 판정에도 그녀의 어머니는 노골적으로 거절하고 1927년 새로 부임한 원장이 까미유의 끔찍한 생활을 동정하여 어머니에게 편지를 보냈으나 온갖 나쁜 행실로 가족을 욕보인 아이의 얼굴을 쳐다보고 싶지도 않다는 답변을 했고 정신병원에서 30년간 잔인하게 수감되어 있는 동안 그녀가 조각가였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단지 시인 폴 끌로델의 누이 정도로만 존재하고 있었다. 나혜석의 무연고 사망처럼 까미유의 말년도 유골 조차 회수하지 못하고 아무것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녀가 한 친구에게 남긴 글을 통해 그녀의 절규를 들을 수 있다.


나는 지옥에 떨어졌다.
나의 삶이었던 꿈으로부터,
그러나 그것은 악몽이었다.
_까미유 끌로델



천재적인 재능을 타고났지만 어머니와의 악연으로 저주스러운 삶을 살다 간 까미유 끌로델.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발휘해 보지도 못한 채 로뎅과 사랑에 빠져 자신을 잃어버렸던 까미유 끌로델.

조금 더 이른 낭만주의 시대에 태어나 살았다면, 아니면 더 늦은 1920년대에 태어났더라면 규범의 틀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텐데...


배신감과 고독감으로 피해망상에 시달렸던 시대를 앞서 살다 간 까미유 끌로델을 현재로 소환해 주고 싶다.

자유로움이라는 게 어떤 건지 마음껏 휘저으며 살 수 있게 프리다 칼로, 나혜석, 까미유 끌로델 모두에게 현재의 날개를 달아주고 싶다.


며칠간 책을 읽으며 시대가 버린 그녀들의 소환을 소망하고 있었다.

자유로운 시대가 코로나로 인해 막혀버려 답답하지만 내실을 다지는 시간으로 나에겐 생각에 날개를 달수 있어 충분히 감사한 시간이다.

배해선, 김명수 주연의 연극

고등학교 때 이자벨 아자니를 좋아해 까미유 끌로델을 봤고 줄리엣 비노쉬가 연기한(연기력으론 줄리엣 비노쉬가 으뜸이지만 이자벨 아자니의 눈물을 잊을 수가 없다) 까미유 끌로델 역시 봤고 대학로에서 하던 까미유 끌로델 연극까지, 고등학교 때 미대 복학생으로 나왔던 김명수를 좋아해서 찾아봤던 연극이었는데 친구들은  나의 취향을 이해 못한다는 반응이었다.


camille claudel

나의 다른 이름 cam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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