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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상래 Jun 27. 2021

<서평>_그림 그리는 할머니 김두엽입니다.

83세에 그림 그리기 시작한 한국의 '모지스 할머니'


<그림 그리는 할머니 김두엽입니다.>_김두엽

모지스 할머니의 책을 읽으며 힘든 시절을 어떻게 살아오셨을까? 그 세월을 이기고 예전의 기억을 더듬어 그리신 그림을 보며 감동의 깊이가 컸었는데요. 한국에도 모지스 할머니 같은 분이 또 계십니다.

바로 김두엽 할머니이신데요. 가난과 싸우며 살아온 세월 후에 83세에 그림을 시작하셨어요.

89세에 첫 번째 전시회를 여셨고요.

한글도 70세에 배우셨다고 하니 답답한 세상을 어떻게 헤쳐오셨을까 싶더라고요.

그림이란 어찌 보면 삶의 힘듦을 치유하기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싶어요.


얼마 전에 썼던 '위트릴로' 글에서도 그런 얘길 했었지만 그림을 그리는 일은 치유의 힘이 있어요.

저처럼 그저 끄적이며 글을 쓰는 일도 치유의 힘이 크다고 믿고 있고요. 적다 보면 힘든 것보단 아름다운 것들을 더 생각하게 되고 어느새 닫혔던 마음도 하나둘씩 열리게 되는 걸 느끼게 되죠.

김두엽 할머니에게 그림이란 게 그런 게 아니었나 싶습니다.


아들 이영현 님은 그림을 전공하셨고 화가로의 삶을 살고 있지만 'Be 정상'전에서 처럼 전업 작가로 사는 건 여전히 힘들죠. 택배 기사를 하며 겸업 작가로 살고 계셨어요.

2019년에 '인간 극장'에 두 분의 이야기가 방영돼 화재가 되었더라고요.

저는 방송을 보진 못했지만 책을 읽으며 할머니가 효자 아들을 낳아 신랑에게 받지 못한 사랑을 아들로 인해 보상받게 된 건 아닌가 싶더라고요. 한편으론 엄마를 모셔야 하는 상황에 화가로만 살 수 없는 아들 이영현 씨가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했고요. 하지만 지금은 괜찮아요.

50이 넘어 이영현 작가님도 엄마가 그토록 원하는 좋은 짝을 만났고 현재는 광양에 두 모자 분이 '갤러리 M' 이란 곳도 운영하고 계시더라고요. 저도 언젠가 그곳에 놀러 갈 일이 생기면 꼭 들러보고 싶어요.


이 책은 두 파트로 나뉩니다. 1장. 그림을 그리며 행복해진 일상과 2장. 아팠던 날을 한 폭의 그림으로 회상하는 두 번째 파트로요. 금세 읽을 수 있는 책이지만 오래도록 기억이 날 것 같은 책이에요.

색연필로 그림 그리기 시작해 손가락에 힘을 덜 줘도 되는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셨고요.

물감에 종이가 젖어 모서리가 둥글게 말리자 아들이 건네준 고급스러운 스케치북에 수채화를 하시다 다음엔 아크릴 물감으로 그림을 계속 그리고 계세요. 김두엽 할머니의 현재 연세는 94세입니다.

83세에 배워본 적도 없는 그림을 94세가 되는 현재까지 그리고 계신 거예요.

인생에 역시 늦은 때란 없습니다. 책을 읽는 내내 제게도 좋은 자극제가 되더라고요.


어머니 닭 그리셨어요? 허허."
"어떠냐? 이 놈이 장닭인데, 여기에 지렁이가 있다고 암닭하고 병아리를 불러 알려주는 모습이야. 시골에 살면서 닭을 자세히 보니 닭들도 자기 가족을 챙기며 살더라."
P.45
닭을 그린 그림의 제목은 모두 '가족'입니다.

1928년 오사카에서 태어나신 할머니는 해방이 되면서 1946년 가족과 함께 귀국하게 됩니다. 한국에서 온갖 힘든 일들을 하고 사셨고 얼굴도 모르는 사람과 어느 날 갑자기 결혼해 살면서 남편의 사랑이란 걸 받아본 적 없이 사셨다고 해요. 그래서 그런지 할머니 그림엔 '닭'의 그림이 많이 나와요. 닭들도 가족 챙기며 행복하게 사는데 할머니는 그런 기억이 없으시니 지난날을 아쉽게 회상하고 계시더라고요. 할머니의 닭 그림에 마음이 갔습니다. 사랑 없이 사는 부부 관계란 생각만 해도 끔찍할 텐데 자식들을 키우느라 그 시름을 다 잊고 사셨겠죠. 아마 아들인 이영현 작가도 그걸 아셨을 것 같고요. 그림을 그리며 행복해하시는 할머니의 노년이 더 오래도록 지속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믿어도 되나요~~당신의 마음을
흘러가는 구름은 아니겠지요
사랑한단 그 말 너무 정다워
영원히 잊지를 못해
P.68

아들을 대신해 며느리 될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얼마나 좋으셨으면 최헌의 노래 '앵두'를 직접 불러 주셨대요. 그 며느리 되실 분은 얼마나 놀라셨을까? 김두엽 할머니는 50 넘은 아들이 장가들기를 얼마나 원하셨을까? 인연이 되려고 하면 안 하던 행동도 하게 되고 훗날 생각해 보면 그게 인연이 되려고 그랬나 싶고. 그렇잖아요.




어머니, 이 그림 참 좋네요. 나는 어머니가 그린 그림을 보는 게 제일 행복해요. 제 소원이 뭔지 알아요? 서울 예술의 전당 같은 큰 장소에서 어머니 전시회를 열어드리는 거예요. 뉴욕이나 런던, 파리에서도 글로벌하게 열고요. 그러니까 어머니, 건강하게 오래오래 예쁜 그림 그리세요.
P.112

신랑의 사랑은 없었어도 막내아들의 지극한 사랑이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이렇게 효자가 또 있을까요? 신랑복은 없어도 자식복 만은 있으신 할머니네요. 저도 건강하게 오래오래 예쁜 그림 그리셨음 하고 바라봅니다.




그때는 다시 못 만나게 될 줄 정말 몰랐는데,
그게 그 사람과 나의 마지막이 되었답니다.
P.150

해방 전, 가족이 모두 일본에 살 때는 살림이 괜찮았다고 해요. 가족이 모두 벌이가 있었고 김두엽 할머니도 한국 사장님이 운영하는 단추공장엘 다니셨다고 합니다. 그곳 사장님께서 예쁘게 보셨고 사장님 아들과 달콤한 데이트도 하셨다는데 해방이 되고 서로 얘기도 주고받지 못하고 급하게 한국으로 오셨다고 해요. 얼굴도 모르는 사람과 결혼해 서로 사랑도 주고받지 못하고 사셨다는데 오사카의 그 남자 얼마나 보고 싶고 만나고 싶으셨을까요?



가족


다정하고 가정적인 사람과 살았다면 어땠을까?
남편과 지내면서도 가끔 이런 생각을 했더랍니다.
나는 그저 아이를 남편에게 안겨주며 '여보, 아이 좀 안아보시오. 나는 저녁을 지으러 가야 해요.'라고 대화하며 살고 싶은 것이 바람이었어요.

하지만 내 결혼생활은 정말 힘들었어요.
P.171

큰 바람도 아니고 그저 평범했을 가정을 꿈꿨던 할머니의 마음이 엿보이던  페이지예요. 그렇게 마음 둘 곳 없을 때 김두엽 할머니의 마음을 다독여 주시던 분이 시어머님 이셨다고 합니다. 저는 못 살았겠지만 그 시절엔 또 많은 분들이 그리 사셨을 거예요. 자식 생각하면 어쩔 수 없이 말이죠. 참 서글픈 세월이 아니었나 싶어요. 이런 삶을 보면 저는 그래도, 그래서 행복하게 살고 있구나 하고 느끼게 된답니다. 사소한 것까지 대화하는 제 신랑과 아이가 있어 참 복 받았구나 싶어요.

이영현 작가님의  '오월의 숲'
아들이 어머님께 드리는 편지

십여 년 전 어머니께서 연필로 그린 작은 사과 하나로
엄니에겐 사각형의 새로운 세상이 생겨났지요.

기적 같은 일이었습니다.

늘 심심해하시고 기력도 없던 어머니는
사각형의 새로운 세상에서 콧노래를 부르며
산도 가고 물도 건너고 꽃밭도 거닐었습니다.



저도 언젠가 다시 그림을 그려야지 막연하게 생각만 하고 있습니다. 다시 그릴 땐 뭘 그려야 할까? 잘 그릴 수 있을까?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꼭 대단한 무언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보다 끈기 있게 집중할 것을 찾고 싶고 그걸로 인해 밥벌이가 된다면 정말 좋겠다 생각하고 있어요. 힘들게 인생을 살아오셨을 김두엽 할머니의 이야기를 읽으며 두 모자의 그림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늦었다고 자책하지 말 것. 행복은 스스로 만드는 것. 그림은 답이 없다는 것. 열심히 살다 보면 하늘도 그걸 인정하고 운이라고 생각될 기회를 내려주시겠죠. 주말 오전을 김두엽 할머니의 이야기로 기분 좋게 보내며 짧은 서평을 올려봅니다. 많은 분들이 읽어주셨으면 하고 이 분들의 그림에도 큰 관심이 갔으면 합니다. 광양에 가게 되면 꼭 들러보려고요. '갤러리 M' 잊지 않고 기억할게요.




이런 분께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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