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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상래 Jul 11. 2021

<서평>_<이중섭 편지와 그림들>

비극의 시대에살다 간천재 화가

<이중섭 편지와 그림들>
이중섭 지음


그의 그림을 사랑하기에 앞서 그의 가족에 대한 한없이 그리운 마음을 소중하게 보듬어 주고 싶습니다. 이중섭

너무도 유명한 황소 그림이죠.

아이들과 함께 살았던 힘든 시절의 서귀포 그림들은 눈물 없이 보기 힘들죠. 모든 것이 천국처럼 따뜻하고 평온하게 맞닿아 있어 더욱 슬픈 이중섭의 그림.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처음 만났던 이중섭의 ‘황소’ 그림보다 도화지 가득 채워진 서귀포에서의 아이들 그림이 늦가을 아궁이에 땐 불처럼 따끈하고 노곤하게 살아 있어 참 좋았습니다.


책 표지 앞면과 뒷면

미남에 큰 체격, 고독과 빈곤 속에 자기 예술을 위해 스스로 생을 태웠다고 해서 이탈리아의 모딜리아니와 줄곧 비교되는 화가. 일본이라는 가깝고도 먼 나라에 아내와 아이들을 보내 놓고 이삼일에 한 번씩 보고 싶다는 편지를 쓰고 그림을 그렸던 남자. 늘 가족과 함께 살기만을 바랐던 6년. 끈질기게 잡고 있던 끈을 놓아버린 순간. 먹는 것을 멈춰버리죠. 더는 신세 지며 더부살이 인생으로 살고 싶지 않았던 것일까요. 시대가 앗아간 천재가 어디 이중섭 하나뿐일까요? 하지만 그토록 애절하게 만나고 싶고 함께 살고 싶은 마음으로 수없이 편지를 쓰던 사람은, 그토록 오래 정신을 부여잡고 있었던 사람은 단연코 이중섭뿐이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서귀포의 환상/1951년 나무판에 유채

그저 오래 살아 더 많은 사람에게 좋은 그림을 남기는 것 그것 말고 저는 다른 의미로 그가 아주 오래 살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림을 그리지 않는 그의 일상은 상상할 수 없겠지만 덜 그려도, 늘 그리던 가족들 품에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면 어땠을까요?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남덕과 태현과 태성이를 많이 만져보고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살았으면 어땠을까요? 시대가 만든 비극 속에 사라져 간 순수한 영혼의 이중섭을 그리며 짧은 글을 남겨 봅니다. 

사나이와 아이들/ 종이에 연필과 유채


행복이 어떤 것인지 대향은 분명히 알았소. 그것은 천사와 같이 아름다운 남덕이와 사랑의 결정인 태현이, 태성이 둘과 더 없는 감격으로 호흡을 크게 높게 제작 표현하면서... 화공 대향의 현처 남덕이가 하나로 융합된 생생한 생활 그것이오...
p.58


지금은 초가을. 모든 것이 열매 맺는 소중한 시기요. 우리 성가족聖家族 넷이서 단란하게 손에 손을 잡고, 힘차게 대지를 밟으면서 정확한 눈, 눈, 눈으로 모든 것을 분명하게 응시합시다. 한걸음 한 걸음 확실하게 내디딥시다. 돈 걱정 때문에 너무 노심하다가 소중한 마음을 흐리게 하지 맙시다. 돈은 편리한 것이긴 하지만, 돈이 반드시 사람을 행복하게 해 주지는 못하오.
p.59
도원/ 1954


태성에게

호걸 씨 태성아!
잘 있었니? 아빠도 몸성히 그림을 그리고 있단다. 태성이는 늘 엄마의 어깨를 두르려 드린다고? 정말 착하구나. 
아빠는 태성이의 착한 마음씨를 기특하게 생각하고 있단다.
한 달 후면 아빠가 도쿄 가서 자전거 사주마. 잘 있거라. 엄마와 태현이 형하고 사이좋게 기다려다오.

아빠

p.194


[ 이중섭의 삶과 사랑 그리고 예술 ]/이경성



영악하지 못하고, 남에게 싫은 소리를 못하고 오직 남을 믿는 마음속에서만 살아온 그의 일생은 손실의 연속이었다. 꿈에 살면서 현실을 모르는 그의 성격은 이 거친 세상을 살아가기에는 너무나 순수했다. 순진무구, 그것이 중섭의 인간성이었다. 그러나 예술가로서의 중섭은 그의 천부의 재능과 후천적인 노력으로 남이 도달하지 못한 높은 봉우리에 올라갔다.
p. 223
봄의 어린이 / 종이에 유채


마침내 생의 무관심을 초래하여 실심失心. 실어失語. 실망失望 속에 마지막으로 생에 항거하여 일체의 음식을 거부함으로써 자기와의 세계에서 복수를 하였다. 따라서 그에게 있어 종말의 비극은 중섭 자신의 비극이 아니고, 패배자로서의 중섭이 외부 세계에 감행한 일종의 보복 수단이었다.
p.229
해변의 가족/ 종이에 유채



아고리와 아스파라거스, 발가락 군.

책에는 서로를 이렇게 부르는 애칭이 나옵니다. 마치 저희가 연애 시절에 몽몽아, 꼬꼬야 하고 부르던 것처럼 말이죠. 연애시절 서로 부르던 애칭 한 번씩 떠올려 보세요. 어떻게들 부르셨나요? 더 애틋한 시절이 떠오르지 않으세요?


좌.그리운 제주도 풍경/ 우.아들에게 보낸 편지에 동봉한 그림

한국의 '반 고흐' 라 불리는 화가 '이중섭' 소년 같은 마음을 가졌던 것도 참 비슷하네요. 도서관에서 대출해 놓은 책을 읽고 또 읽었는데 서평을 쓰자니 너무 조심스럽고 어려워서 도서 연체까지 시켰습니다. 저희 아이 대출 카드로 다시 빌려 오늘은 꼭 기록해두자 싶어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신랑과 아이 모두 미용실을 간 틈을 타서 말이죠^^


닭을 그린 그림들은 부부를 나타냅니다/김두엽 할머니의 닭 그림들이 떠오르네요


제 가슴에 남은 따뜻한 화가 이중섭. 시대가 만든 비극으로 일본으로 그림을 그리러 간다는 핑계로 잠시 건너가 2주를 보고는 죽는 날까지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한 가족. 먹을 것을 거부하고 양동이 한 가득 피를 토해내던 그가 너무 가엾습니다.

길 떠나는 가족이 그려진 편지/ 1954년 종이에 연필

그는 세상에 없지만 많은 분들이 더 다양한 그림으로 그를 기억해주었으면 하고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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